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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산 Aug 06. 2021

흙 디딜 시간이 필요해. 아이도, 어른도.

 ‘엄마’라는 단어의 무거움 때문에 임신과 출산을 미루고만 있지만 만약에 아이를 낳는다면 어떻게 키우고 싶다는 상상은 종종 해본다. 머릿속 가상의 내 아이는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가지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자란다. 그 아이가 흙을 디디고 만지며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되도록 많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아이들은 보통 하루 종일 실내에 머물러 있는다. 체육시간이 있지만 그마저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야외활동을   없다. 코로나에 감염될까 착용한 마스크는 체육 시간을  어렵게 만들었다. 잠깐만 뛰어도 마스크에 땀이 가득 차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있다. 점심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바깥에서 노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콘크리트 건물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봉고차를 타고  다른 학원이라는 건물로 옮겨간다. 아이들의 하루는   번도 흙을 밟지 않고 흘러간다.      



 흙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자연을 느낀다는 뜻이다. 공기가 맑고 선선한 날이면 가끔 아이들에게 운동장에서의 자유시간을 준다.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놀라고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흙을 파거나 쌓으며 놀기도 하고, 바람을 느끼며 뛰어다니다가 누워서 하늘의 구름을 관찰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가만히 꽃을 바라보거나 그 위에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을 관찰하며 눈빛이 반짝인다. 그런 아이들의 몸짓에서 ‘자유’, ‘해방’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마음껏 자연과의 시간을 가지고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을 보면 막혔던 무언가 해소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빛이 환해지고 수업에 집중도 더 잘한다. 싸움도 평소보다 눈에 띄게 준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흙을 밟으며 살았다. 그들은 흙 위를 뛰어다니며 먹이를 구하고 흙 위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흙에서 자란 나무의 과실을 먹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흙을 일궈서 곡식을 만들어내는 법을 발견해 흙을 일구며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면 그가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사람은 원래 한 줌의 흙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 유난히 편안한 기분이 든다. 원래 우리도 그의 일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흙과 분리된 아이들은 불안함을 느끼기 쉽다. 자기 자신이 속한 곳에서 동떨어진 아이들은 불안함을 잊기 위해 자신을 집중시킬 것을 찾는다. 게임에 집중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며 빠져든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불안함도 잠시 잊을 수 있다. 점점 바깥활동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연을 느끼는 방법은 퇴화되고 만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와 같은 어른이 된다. 건물에서 건물로, 하루에 단 한 번도 흙을 밟지 않고 스마트폰 속에서 위안을 찾는 어른 말이다.     



 아이가 생긴다면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근처 작은 공원이나 산에 자주 데려가고 싶다. 흙을 밟고 만지고 그 위를 뛰어다니다가 하늘의 구름 모양을 관찰하고 풀잎을 만지게 하고 싶다. 눈을 감고 공기의 온도를 느끼고 새소리를 가만히 들어볼 것이다. 이 나무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말해주고 함께 꽃 이름도 익히고 싶다. 그렇게 자연과 친구가 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자연과 친구가 되는 법을 익히는 기회를 갖는 아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 현대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특별한 권태는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잇다.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삶은 사막을 여행할 때처럼 뜨겁고 답답하고 갈증에 시달린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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