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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 Nov 28. 2023

아들 친구 엄마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MJ는 문센에서 처음 만났다. 문화센터, 줄여서 문센! 영아기 대부분의 엄마들이 거쳐가는 그곳이다. 아이들을 이쁘게 치장하고 수업에 들어와 서로의 눈치를 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DH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그 엄마와 몇 번 인사를 하다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MJ는 빠르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DH가 어버버 말하던 시기에도 어른들과 척척 대화를 해나가는 친구였다. MJ가 있어서 나는 더 일찍 DH의 발달을 걱정했다. 그때마다 MJ의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커서 말 못 하는 애가 어디 있어. 걱정하지 마!". 그녀의 말은 당시 큰 위로이긴 했다. 하지만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더 빨리 MJ와 DH의 다름을 인식했어야 했다.     


아이들이 5살쯤 되자 서로 육아의 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DH는 발달센터를 다니기 시작했고, MJ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의 스케줄을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의 수업으로 채워 갈 때 그녀는 놀이 학교, 영어, 몬테소리, 짐보리, 브레인스쿨 같은 것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난 DH의 어려움을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요즘 DH 뭐 다녀? 같이하자" 난 그녀의 수많은 질문과 제안을 요리조리 피하는 깍쟁이가 되었다.     


그 동네에서 이사를 나오고 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여지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최근에 DH가 보인 문제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DH가 어린이집 친구와 장난감 다툼을 하다가 손가락을 물어버린 사건이었다. 그 무렵 MJ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던 그녀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은 그런 트러블이 없다는 이야기로 받아쳤다. 싸우거나 무는 아이들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생각과 사는 세상이 너무 달랐다.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그 상황에 DH를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난 없었다. 나 자신도 아직 DH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또 그녀를 만났다. SNS 덕에 끊이지 않고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접하고 그녀도 나의 일상을 접한 까닭에 우리는 꽤 오래 연락을 하고 지내기는 했다.

그녀는 체육활동이 되지 않는 MJ와 MJ의 동생 성향이 까탈스러움, MJ의 사회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녀의 아이들 문제로 고민이 많은 듯했다. 우리는 말속에 뼈를 숨기듯이 서로를 다 내비치지는 않은 채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녀가 헤어지는 날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늘 바른 육아의 길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아”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녀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나의 조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편견 어린 시선으로 거리를 유지하던 것은 나였다.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날들 속에서도 언제 문제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육아다. 또 수많은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려 보지만 또 나의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있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성장할 뿐이다. 속도가 빠르다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간과한 포인트였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이야기를 쌓아갈 것이다. 그 이야기가 쌓여 언젠가 나와 그녀가 서로의 진짜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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