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발화(無發話). 이 세계에 발을 들이며 만나게 되는 낯선 용어들이 있다. 이 단어 역시 그랬다. 낯선 단어의 조합. 그러나 단번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 말을 못 하는구나'
발화를 못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리를 내는 신체 기능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발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자폐 아이들이 겪는 문제는 이런 쪽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전자가 의지가 있으나 신체기능의 한계가 문제라면, 후자는 상호작용이 약한 것이 언어 지연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의 스펙트럼이라는 말처럼 아이들마다 컨디션도 천차만별이다. 어느 아이는 '아'라는 발화 자체를 못하기도 하고, 어느 아이는 단어만 말하기도 한다. 또 어느 아이는 어려운 문장을 구사할 수도 있다.
DH는 발화가 늦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 등의 단어를 또래에 맞게 했었다. 하지만 30개월이 넘어서야 '물 주세요' 같은 두 단어 붙이기가 가능했다. DH의 어려움을 알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지금은 제법 긴 문장을 이야기하고 문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지금도 DH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설프다.
이제 막 2~3세가 되는 무발화 아이들의 부모 중에 종종 "DH는 언제 말이 트였어요?"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답하기 참 난감하다. "아니에요. 아직 잘 못해요"라고 손사래 치며 대답한다. 물론 얼마나 호강스러운 답변인지도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말이 제대로 트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말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의지가 기본적으로 약한 아이가 이것이 원할할리 없다. 오늘도 DH는 어린이집에서 뭐 하고 놀았냐는 나의 질문에 “몰라요”라고 답해버리고 만다.
엄마들 사이에선 언어는 끝까지 가져간다는 말들을 한다. 다른 치료들이 멈춰도 언어 치료는 학령기에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언어는 쌓아 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좀처럼 잘 쌓아지지 않는다.
DH도 그랬다.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다. 모두의 기준이 다를 테지만 나에게는 그저 천천히. 오늘은 한 계단 오르고 내일은 두 계단 내려오고 어떤 때는 반 계단씩 오르며 서서히 걸어가는 시간들만 있을 뿐. 앞으로도 계속 그 길에 서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