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조언 한마디
아이의 자폐를 처음 의심하고 인지한 부모님들께
이 글은 위로의 글이다. 하지만 위로는 없다. 지금은 뼈아픈 사실의 인지가 그 어떠한 위로보다 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폐엔 약이 없다. 장애라는 것이 그렇다. 마음 아프지만 고쳐지는 병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내가 DH를 위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약은 있다. 일반적으로 아리피프라졸, 리스페리돈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치료제가 아니다. 감각 등 예민한 부분을 낮춰주도록 도와주는 약 일 뿐. 주위에 약을 시도하고 약으로 수많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을 봐왔지만 완벽한 약의 조합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도 아이를 한 번에 보고 완벽한 약을 처방하진 못한다. 시도하고 아이의 컨디션을 보며 가장 알맞은 종류와 용량을 찾아가야 한다. 알맞은 약을 찾았다고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는다. DH도 아빌리파이를 먹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폐가 사라지진 않았다. 주된 치료법은 주로 병원이나 센터 치료실을 통해 이뤄지고 언어, 감각통합, 놀이, 사회성 등의 재활수업을 진행하며 아이에게 끊임없이 학습시켜 주는 방법밖에 없다.
여기서 두 번째 할 일이 있다. 중심을 잡는 일이다. 어느 날 나에게 A언어치료사가 "어머니 DH 약을 먹여보시는 게 어때요?"라고 말했다. 의아한 표정을 한 나에게 "아빌(아리피프라졸의 상품명인 아빌리파이를 쉽게 아빌이라 부른다) 정도 먹으면 집중이 올라갈 거 같은데 어떠세요?"라는 말도 이어갔다.
또 어느 날 B놀이치료사는 "DH는 ABA방식보다는 플로어타임 방식이 잘 맞을 거 같아요. ABA 치료는 고민을 다시 해보세요."라는 말도 했다. 어느 치료사는 임상심리 자격 요건이 없음에도 나에게 ADOS(자폐스펙트럼 검사 중 하나)를 하자고도 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이면 절박함이 커진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한마디에 크게 의지하게 된다. 그게 의사면 좋겠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소위 유명한 대학병원 의사들의 대기는 3년이 기본. 어느 때는 대기조차 받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부모들이 쉽게 만나게 되는 전문가는 센터 치료사인 경우가 많다. 센터 수업 후 피드백을 들을 때면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아이의 성적표 같고, 아이의 성적표가 곧 나의 성적표 같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며 어느 날은 좌절스럽고, 어느 때는 희망차다. 그럴수록 그들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의사가 아니다. 각 전문분야의 치료사이자 상담가일 뿐이다. 각자 해낼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 언어치료사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행동치료사는 행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의사가 아닌데 확정 진단을 하고, 치료 방향을 설정하고, 약을 처방하고 용량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만큼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한 자신감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혹시나 월권을 행하는 치료사가 있다면 손절을 하거나 분명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진단(혹은 치료, 약)은 의사와 상담하겠습니다"
의사가 아닌데. 의사가 되는 착각은 부모들에게도 온다. 이 세계에 몇 년을 있다 보면 나 자신이 반 전문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많은 자료를 찾고 매일매일 내 아이라는 임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도 주위에 발달장애아이를 키우는 맘들에게도 심심찮게 이런 질문들이 온다. "아이가 30개월인데 엄마 밖에 안 해요. 자폐일까요?", "언어 주 2회 정도면 치료가 적당할까요?" 그럴 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일주일 밤을 세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해줘야 하는 말은 한 가지다. "의사를 만나보세요."
물론 전문의가 무조건 답일 수는 없다. 의사의 시각에 따라 어느 아이는 ADHD가 되기도 하고 어느 아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장애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 말에 현혹되는 일들은 적어진다.
잔인하지만 내 아이가 치료될 수 있다는 마음을 버리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자. 그리고 나의 헛된 희망을 발판 삼아 우리 가족의 정신과 돈을 좀먹는 유혹의 손길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