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터 Sep 18. 2024

아이를 잃어버렸다

언젠가 한 번쯤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특별하지 않은 나날들이 특별함으로 가득해진 나날들. 장애를 깨닫게 된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아무 일도 없던 어느 일요일 낮시간. 난 아이를 잃어버렸다. 집은 아파트 1층이었다.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고 있고 현관까지 꺼내놓은 분리수거 더미를 놀이터 옆 분리수거장에 옮기던 때였다. 찰나란 이런 것인가. 아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미끄럼틀 앞에 있던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아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뇌가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모든 감각들이 일어나 솟구치는 소름 끼치는 감정이 들고 있어 났다.

집 안에서 남은 쓰레기를 정리하던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손이 너무 떨려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애가 안 보여"


빛의 속도로 뛰어나온 남편은 오히려 차분해 보였다. 성큼 거리며 내 눈앞에서 사라진 남편은 한참 뒤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다행히 멀지 않은 집 앞 길가에서 찾았다고 했다. 아이가 아빠에게 안겨서 오는데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고작 5분에서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한나절 같이 느껴졌다. 그때쯤 느꼈다. 우리 아이는 왜 불렀을 때 대답 하지 않을까. 나중에 그런 것을 호명반응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이가 놀이하던 모습들이 상동행동, 감각추구라는 것을 알았다.


DH가 남다르다는 것을 처음 눈치챈 것은 남편이었다. 무슨 계기였는지 알 수 없으나 난 그냥 말이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그 쯤 많은 정보들을 찾아보았던 거 같다. 어느 날은 DH를 생각하면 자꾸 사무실에서도 눈물이 난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가 DH 30개월쯤이었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나였다.


그래도 지금 와서 그때를 되돌아보면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충격적인 사건으로 내가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고, 남편 주위에 특수교사를 아내로 두고 있는 친한 동료가 있어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유명한 기관의 A-dos 검사를 빠른 시간 내로 예약할 수 있었고, 그 해 DH의 동생이 태어나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 그나마 아이를 바라볼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의 2020년은 그렇게 절망적이고 정신없이 흘러간 듯했으나 다행인 순간들로 넘쳐있었다.


얼마 전 다른 어머님과 이야기하다가 아이의 장애를 알고 부부간에 서로 비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서 아이만 보던 엄마가 무엇을 한 것이냐. 아이와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않고 일에만 빠져있던 아빠는 무엇을 한 것이냐. 서로를 향한 힐란에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가정에서 그러했으리라. 지금 DH 또래 나이에도 아이의 아빠가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힘들어하는 엄마도 보았다. 어느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차를 몰다가 삶을 끝낼까라는 생각도 했다는 고백도 했었다.


아이의 장애가 가정에 주는 상처는 그만큼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이 아이를 위해 그 자리에 끝까지 서 있어야 하는 것이 부모다. 세상의 모든 순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서 있어 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이전 12화 살면서 들어본 가장 흉한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