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들어본 가장 흉한 말
장애아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자폐도 옮아요"
DH가 장애 판정을 받고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일이다. 보험사에서 나온 젊은 손해사정사는 DH에게 형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었다. 자기가 다른 가정들을 봐왔을 때 형제, 자매들끼리 장애가 옮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분리해서 생활하라는 조언을 했었다.
그의 말에 난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보험금을 지급할지 말지 심사하러 온 사람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자폐는 전염병이 아니에요!
이는 내가 살면서 들었던 가장 흉한 말로 마음에 남아있다.
얼마 전 DH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는 장애 통합반 친구인 YJ의 어머님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YJ의 누나가 있는데 누나가 있는 초등학교로 배정을 신청할지 아니면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학교로 지원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같은 학교에 형제, 자매가 있다면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장애 아이의 마음도 부모의 마음도 한결 더 가벼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형제, 자매에게 또 다른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친구들이 놀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다 큰 어른도 저런 흉한 소리를 뱉어내는 세상에 어린아이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물론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분명 자폐 아동에게 형제, 자매가 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DH도 동생들 덕을 많이 봤다. 동생들은 끊임없이 DH에게 말을 걸고 놀이를 제안한다. 동생들과 갈등 상황을 통해 사회에 나가면 겪게 될 여러 문제의 해결 방법들을 미리 습득할 수 있었다. 덕분에 DH의 사회성과 언어가 많이 올라왔다.
나는 또한 동생들도 분명 형 덕을 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형이 하는 숫자놀이와 한글을 보고 숫자와 한글을 배우고 있다. 또 형이 좀 더 복잡한 장난감을 능숙하게 다루니 어려울 땐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놀잇감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또한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스킬들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매섭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인 나보다는 서로 함께 살아갈 나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내가 받고 있는 불평등한 시선을 장애 당사자와 형제, 자매 아이들은 더 오래 받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DH의 동생들에게 선택하지 않은 짐을 지워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동생들의 부담감은 어느 순간 크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DH의 동생들도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 아닌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이들이 가슴 아파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벌써 미안하고 마음이 아리다.
오늘 저녁 DH와 동생들이 함께 도미노를 놀이를 했다. 세 명이 작은 책상에 도미노를 올리는데 잘 될 리가 없다. 남자아이들 아닌가. 서로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난 이 모습이 너무 이뻐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이 모습을 오래오래 가슴에 담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