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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 Nov 14. 2023

아들에게 쓰는 편지 2

엄마가 글을 쓰는 이유

엄마 생일은 1월. 양력을 세지. 그러다 보니 명절 연휴와 겹치는 경우가 있어. 올해 1월이 그랬어. 오랜만에 친정에서 맞이하게 되는 생일날이었어. 아침에 외할아버지는 정성스럽게 미역국을 끓여주셨지. 그러면서 외할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야  "딸. 아빠는 미역 비린내가 싫어서 잘 안 해 먹어지더라. 아빠가 미역 비린내 없애려고 아침부터 미역을 엄청 많이 씻었어." 처음 안 사실이었어. 외할아버지는 미역국을 싫어하셨더라. 엄마도 미역국을 많이 좋아하진 않아. 정확히 말하면 두꺼운 미역을 싫어하지. 특유의 식감이 걸리더라고. 그래서 야들한 미역을 좋아해. 할아버지와 엄마가 취향이 비슷했더라고.


엄마가 글을 쓰고 싶어진 이유를 생각해 봤어. 너희들은 지금 나의 시간 대부분을 소유하고 가장 친밀한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지. 엄마가 함께 30년 밥을 먹은 외할아버지의 입맛도 모르는 것처럼.

그래도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하며 많은 부분을 알아갈 수 있어. 하지만 영영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더라.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이야기야.


너희 외할머니는 엄마가 고3이 되던 해 여름에 암으로 돌아가셨어. 일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지. 대부분의 엄마와 딸이 그렇듯이 우리 사이도 너무나 돈독했거든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엄마는 외할머니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더라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셨다면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외할머니의 인생을 듣는 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함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깨닫는 재미가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거지.

하물며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도 엄마는 모르고 있었더라고. 본인보다 가족이 먼저였던 분이라 더 그런 거 같아. 나의 생각과 취향은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큰 바위 아래로 넣어놓으신 분이었거든.

그렇게 외할머니는 가장 친밀했지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어.


자라나는 시기에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 너희들도 그럴 거야. 엄마와 아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엄마가 작은 생각의 조각들을 남겨준다면, 너희가 엄마가 궁금해졌을 때 들여다볼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의 삶에서도, 너의 삶에서도.


이러한 이유로 엄마는 글을 쓰고 있어. 지금 우리의 이야기들.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남기고 싶더라. 엄마와 너희가 내일 당장 이별의 순간이 와도 덜 후회스럽게 말이야. 우리 삶의 나이테를 그리는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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