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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berry Sep 16. 2020

어디서 많이 본 가녀린 발목

가늘고 긴 팬질의 추억


(커버 사진 출처: 나무위키 유희열​)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부암동이 유명해진 해, 나는 부암동 바로 옆동네, 세검정에 살고 있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클럽 에스프레소까지의 자하문로와 골목골목에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다. 그 중 하나가 부암동 주민센터 마을버스 정류장 앞의 드랍dropp이라는 곳이었다. (없어진 지 한참 됐다.) 예나 지금이나 유기농병 걸린 나는 유기농이라는 말에 카페에 끌려들어갔고, 커피 맛도 모르면서 맛있다며 친구들을 집 앞으로 불러들였다.


카페는 건물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었고 길 쪽의 면 전체가 통유리라서 밖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홀 테이블도 있었지만 높은 바 테이블에서 핸드드립을 보는 재미가 더 좋았다. 거기가 커피 맛이 더 조크든요. 카페 통유리 바로 앞으로 한 차선 건너 잠시 주정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종종 주차를 하고  舊치어스 現계열사 치킨을 픽업하거나 클럽 에스프레소에 커피 원두를 사러 다녔다.


동생과 클럽 에스프레소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드랍 바로 앞에 주차를 하는데, 통유리 안쪽으로 바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의 가녀린 발목이 눈에 익었다. (발목 페티쉬 없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발목인데? 남자의 뒤통수로 눈을 돌렸다. 저 두상머리 크기은 희열님 같은데. 어깨 넓이도 확인했다. 어깨도 적당히 좁은 게, 희열님이다. 차를 세우면서부터 차에서 내려 인도로 걸어가면서 계속 그 남자만 쳐다봤다. 돌아. 돌아. 뒤 돌아!


차에서 종알종알대다 말이 없어진 내가 시선을 고정한 곳을 확인한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 아는 사람이야?

- 그런 것 같아.

- 누군데?

- 유희열.


드디어 그가 뒤를 돌았다. 희열님이었다.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다.

- 어머... 잘생겼어.


잘생겼다. 화면보다 훨씬.


클럽 에스프레소 쪽으로 발을 옮기면서도 계속 희열님을 돌아봤다. 동생이 말했다.

- 그렇게 좋으면 가서 인사라도 하든지.

- (현실 자각) 부끄럽잖아. 잠깐 보기만 하다 가자.


부암동 주민센터 옆 슈퍼마켓 앞에서 희열님의 뒤통수를 감상했다. 그가 일어났다. 눈이 마주쳐 황급히 얼굴을 돌렸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온 그는, 너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슈퍼마켓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마 그의 딸일 것이다.



토이 <딸에게 보내는 노래> 
6집 (2007). 보컬 성시경.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를 통해 <유희열의 FM 음악도시(이하 음악도시)>를 알게 되었다. 잠이 많은 나는 자정부터 시작하는 음악도시의 오프닝과 첫 곡을 겨우 듣고 잠이 드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밤을 새거나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 시험 기간에나 두 시간을 온전히 들었다. 그때 가끔 들었던 음악도시의 내용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흐느끼는 웃음 소리나 새벽 라디오의 감성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음악도시를 소개해 준 나의 친구는 희열님의 찐팬이어서 거의 매일 희열님과 두 시간을 함께 했다. 희열님과 토이의 음악, 이승환, 윤상과의 친분 등에 대해 뭐라뭐라 하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희열님이 이런이런 말을 했는데 정말 이상하고 좋지 않냐는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토이라는 밴드도 몰랐고 유희열이라는 사람도 몰랐지만, 친구가 좋아하니 나도 동조를 하다가 빠져들었다.


그때 우리 반에서는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희열님을 몰랐다. 둘만의 은밀한 취향이 생긴 것 같아 은근히 신났다.



Blonker <Traveling>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오프닝 시그널



라떼는그때는 인터넷이 집집마다 깔려 있지 않아 나는 유희열이라는 사람의 사진을 본 적이 없었다. 친구는 그의 별명이 병든 차인표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 라디오는 듣는 건데 외모가 무슨 상관인가.


또한 그때는 케이블TV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TV 시청에 지극히 엄격했던 부모님은 초창기 케이블 채널도 신청하지 않았다. 오래된 안방 TV 수상기의 cable/TV 버튼을 누르면 케이블 채널이 나오는 걸 알게 된 후로 부모님이 안 계실 때 틈만 나면 그 버튼을 눌러 엠넷Mnet을 시청했다. 노래방 화면처럼 설명 없이 뮤직비디오만 계속 틀어주는 때가 있었더란다.


그날도 엠넷을 틀었는데 어항 속에서 유리에 얼굴을 비비는 남자가 나왔다. "왜 이래 이 남자는?" 이 "아니 이 노래는!" 으로 바뀌었다. 음악도시에서 듣던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 뮤직비디오였다. 혼란스러웠다. 저게 토이 노래면 희열님 노랜데 그럼 저 남자가 희열님이라고? 희열님이 왜 저러고 있어? 아니야, 저건 희열님이 아닐 거야.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에게 이 뮤직비디오를 보았노라 말했다.

- 희열님 차인표 닮았지?

역시 너는 진정한 팬이야. 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중에 그 친구는 유희열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도 샀다고 했다.


대학생이 되어 그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고 내가 처음 희열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은 이유를 깨달았다. 건장하고 선이 굵은 차인표 님 같은 얼굴을 상상했던 내가 본 것은 괴로운 표정으로 어항에 얼굴을 비비던 5대5 가르마의 퀭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토이 <여전히 아름다운지> 
4집 (1998). 보컬 김연우.



고등학생이 되고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 등굣길에 나서야 했던 나는 음악도시와 희열님을 잊고 지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음악도시가 끝났다며 난리가 났다. 마지막 방송에서 희열님이 오열하느라 갑자기 말이 끊겼다는 청취 후기가 줄을 이었다. 오프닝만 겨우 듣던 나였지만 "유희열의" 음악도시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애석했다.


얼마 후 토이 5집이 나왔고 내가 희열님을 알게 된 후 처음으로 토이 앨범 전체를 찬찬히 들어봤다. 나는 그 앨범에서 <소박했던, 행복했던>을 발견하여 야자 내내 한 곡만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성식이형은 부활한 음악도시도 진행했다.)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서도 심신의 안정이 필요할 때는 연어처럼 토이 5집에 회귀했다.



<성시경의 FM 음악도시> 영빈관 유희열 편 
들려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17:10부터).
<여전히 아름다운지> 뮤직비디오에 대한 언급도 있다 (19:11).



2005년 희열님이 결혼 발표를 했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불쌍한 싱글 남자 포지션으로 청취자와 공감대를 형성했던 시장님이, 연애 소식도 없이 뜬금포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전 남친도 아니지만 충격과 공포의 배신감이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느낌이 이 느낌이구나.


내가 결혼을 한 후 남편에게 희열님의 결혼에 대한 배신감을 이야기하니 남편은 연예인 결혼에 왜 배신감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 이건 음악도시를 들은 사람들만 느끼는 배신감이야.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서 느끼는 상실감이 아니라, 동지이자 지지자가 예고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난 배신감.



토이 <잊지 않았겠죠?> + <소박했던, 행복했던> 
5집 (2001). 보컬 성시경.
<소박했던, 행복했던>은 그 앞의 연주곡 <잊지 않았겠죠?>와 연결해서 듣는 게 정석이다.



유희열 소품집 <여름날> 이 1만 장 한정반으로 발매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약 구매를 하다가 생각난 친구 두 명 것까지 추가해서 총 3장을 샀다. (레어템 준 건데,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몇 년 후 엄마와 스페인 여행을 갔다. 공원을 지나는 중에 가이드 투어를 하기 위해 낀 무전 이어폰에서 이 앨범의 <공원에서>가 흘러나왔다. 엄마가 이 곡이 너무 좋다며 가이드에게 곡명을 물어보겠다고 하셨다.


- 나 집에 이거 CD 있어.

- (진심 놀람) 진짜? 이게 뭔데?

- 유희열 <여름날> 앨범에 있는 거. 1만 장 한정반인데 내가 샀어.

- 한정 아니고 한정.

- 엄마, 한정 음반이라 한정이야.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서 엄마의 휴대폰에 벨소리로 깔아드렸다. 마드리드의 파란 여름날 걸어가던 공원 풍경이 그려진다.



유희열 <공원에서> 
소품집 <여름날> (2008).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에 이어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이하 라천)>이 밥벌이의 괴로움을 위로해 주었다. 여전히 잠이 많은 나는 생방송은 반도 못 듣는 날이 많았고, 회사에서 다시 듣기로 들었다. 과도하게 재미있는 코너가 있는 날은 현실 웃음이 터져 회사에서 듣기를 포기했다. 출산 전까지는 생각나면 찾아 듣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체력이 고갈되어 고단함을 곱씹을 새 없이 잠이 든다. 잠이 들지 않는 날은 밀려 있는 집안일을 하거나 브런치 글을 쓴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전설의 청취자 전화 연결

라천민들이라면 기억할 그 이름 (12:40)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김장훈의 원맨쇼 12회

라디오에서 요가를! 요가 고양이 자세 (22:58)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 이후 희열님은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나만 알기엔 아깝지만 남들이 좋아하는 건 싫어서 입만 근질거렸던 보물이 시장에 나와 온갖 매력을 발산하는 걸 보니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그거고 매주 금요일 늦은 밤 맥주 한 캔을 홀짝거리며 스케치북을 기다렸다. 스케치북 역시 두 번째 게스트를 보다 잠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후 방송 다작 희열님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역시 마음 한 켠에는 심야 라디오를 다시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는 두 시간 꽉 채워 들을 수 있는데.) 다른 한 켠에는 "라디오 하면서 몸이 상해서 그만뒀다고 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어서, 바람이 바람으로만 남아야 할 것도 같다.



유희열 <라디오 천국> 
<유희열의 스케치북> 로고송.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1999). 연주곡. 팻 메쓰니Pat Metheny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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