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가인생의 시작

의도와는 달리 시종 염가에 팔리는 우리의 삶, 그 담담한 기록

by 염가인생

염가인생(廉價人生)

이건 뭔 듣도 보도 못한 견언(犬言)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면,


염가 廉價

[명사] 매우 싼 값

인생 人生

[명사]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조합하면 말 그대로 값싼 인생, 싼 값에 살아가는 일이란 뜻이다.

누군가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분명 모욕적인 언사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나의 필명이자, 앞으로 담담히 풀어갈 내 이야기들의 제목에 이런 모욕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는 것인가? 여기에는 이제...설명을 곁들인...궤변이 좀 필요할 듯 싶다.


88년생, 서른여덟*

슬슬 사십대가 사정권에 들어온 나이에 남들과 굳이 안해도 될, 아무 의미없는 비교를 해본다면,

토스인컴 기준 30대 직장인 중 소득 상위 3%란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이런걸 실시간으로 계산해주다니...)


아무튼,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앱에서 그렇다고 하니, 내가 상위 3%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우월감에 흠뻑 취해 살면 참 행복할 것 같긴하다. 하지만 나는 애당초 그런 방식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불운을 타고난 꼴통이다.


굳이 40년도 안되는 설익은 인생에 "염가"란 수식을 붙인 것은,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서도, 내가 밥벌이로 하고 있는 일이 하찮다 생각해서도 아니다.

또한 '나는 고소득자로 살지만, 정작 살아보니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높은 소득이 아니더라.' 같은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개소리를 시전하기 위한 빌드업도 아니며, 저열한 가난 코스프레로 뒤틀린 욕망을 채우려는 의도는 더욱 더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염가인생이란 대체 뭔가?


누구나 한 번쯤 그러했듯 무작정 대단한 사람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할 줄만 알았던 꿈 많던 유년시절*과,

뭐든 이뤄낼 것 같았던, 덜 먹고 덜 자도 하루하루 젊음의 축복을 한껏 느꼈던 청년시절*과,

그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이제는 한 명의 가장으로서, 누군가의 든든한 남편이자 자랑스런 아들로서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자조와, 무한한 애정을 담아 헌정하는 표현인 것이다.


궤변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거의 모든 궤변론자들의 단골 멘트다.)


결국 내가 내 인생에 '염가(廉價)'라는 수식을 붙여 보는 것은 이 세상이 나의 존재를 결코 '정가(正價)'에 구매할 능력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매일 이 세상 속에 자기자신을 할인해서 내놓고 있지만, 그 속알맹이만큼은 누구에게도 팔지 않은 채 단단히 쥐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 나의 기록은 '헐값에 팔려나가면서도 끝내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한 인간의 자존'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어쩌먼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이 매긴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염가인생'에 바치는 헌사일지도 모를 일이다.


2026.2.5

올해는 제발 시작했으면 끝을 보자!!



*사실 이 글은 내가 서른 셋이던 5년 전에 처음 작성되었다.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가며 마주하는 단상들을 남기고자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지내다 지금에서야 묵은 글을 꺼내어 허겁지겁 당근마켓에 파는 중고물품 마냥 먼지를 닦고, 그럴듯 하게 포장해 본다.


*라떼 이야기지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90년대에는 장래희망에 대통령, 포청천(아마도 법조인의 꿈을 가진 친구들의 로망이 투영되지 않았나 싶다.) 정도는 써내야 "고놈 참 꿈도 야무지구나!" 소리를 들었다.


*덜 먹고 덜 잤으면 그렇게 아낀 돈과 시간으로 엔비디아, 테슬라, 비트코인을 샀어야 했다. 이런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청년시절은 엄청난 부와 맞바꾼 것이므로 최소 수백억 이상의 가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