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특효약은 양고기 만두

살기 위해 욱여넣었던 북방의 정취

by 염가인생

2011년 겨울, 장춘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구정 연휴를 가족들과 보냈다.


곧 중국으로 떠나면 한동안은 이런 음식을 보지 못할 거라는 보상심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타향살이를 앞둔 외아들이 안쓰러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었던 부모님의 서운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연휴 내내 명절 음식을 걸신들린 놈처럼 집어먹었고, 부모님은 그 걸신에게 공양하듯 이것저것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거대한 변화를 앞둔 복합적인 스트레스가 폭식이라는 폭주로 이어진 셈이었다.


결국 출국을 하루 앞둔 시점, 내 몸은 반란을 일으켰다. 고열과 복통, 구토와 설사가 들이닥친 고역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속으로 "염병도 이런 염병이 없다"며 온갖 욕지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분노는 수시로 찾아오는 ‘급똥’의 신호와 구역감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실패한 로켓 발사 프로젝트의 추진체마냥 위아래로 정신없이 몹쓸 것들을 분사하며 침실과 화장실 사이를 표류하던 나는, 결국 뜬눈으로 동트는 것을 지켜보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집을 나서며, 나는 마치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비수를 품고 역수를 건넜던 자객 형가(荊軻)에 빙의라도 된 듯 비장한 표정으로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밤새 장염과 사투를 벌여 몰골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나선 순간부터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차분해졌다. 이제는 정말 오롯이 혼자서 이 낯선 궤도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자각이, 비루한 육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앞서 말했듯 장춘에 도착하자마자 불법 택시, 아니 사실상 택시 강도를 만났다.(훗날 진짜 택시 살인강도를 마주하게 되지만, 그 이야기는 뒤에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엄동설한의 눈밭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기숙사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이미 창밖은 새까만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어찌 됐든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살짝 풀리는 순간, 미칠 듯한 허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불과 이틀 전 음식 때문에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씹고 삼키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드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난생처음 타본 중국 항공사의 정체불명 기내식은 그 냄새조차 버거워 손도 대지 못했다. 꼭두새벽부터 이어진 강행군 속에 고작 물 몇 모금으로 버틴 셈이니, 제아무리 젊음의 축복을 받은 강철 체력이라 해도 빈속을 채워줄 뜨끈한 무언가가 간절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요즘의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앱만 열면 위치 기반으로 수 킬로미터 반경 내의 모든 식당과 편의시설을 확인할 수 있다. 상세 메뉴와 가격 확인은 물론 예약까지 일사천리인 세상이다. 하지만 2011년의 장춘은 기술 혁명의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과도 같은 곳이었다. 무언가를 먹기 위해서는 무작정 눈보라가 휘날리는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가야 했고, 저 멀리 홀로 불 켜진 곳이 제발 먹을 만한 무언가를 파는 곳이길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


“제발 속 편한 거... 뜨끈한 거 하나만 있어라...”

덜덜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마치 주문을 외면 음식이 뚝딱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불빛을 향해 푹푹 꺼지는 눈길 위를 한참이나 걸어 마주한 곳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식당이 맞았다.


다만 장염과 강행군에 지친 이방인을 두 팔 벌려 위로해 줄 만한 자상한 메뉴는 아니었다. 간판에 적힌 ‘동북교자(东北饺子)’라는 네 글자가 선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곳은 투박하고 억센 동북지방 스타일의 물만두를 파는 만둣집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텅 비어버린 위장은 더 이상 메뉴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식당 안으로 뛰어들다시피 한 나는 매캐한 담배연기에 한 번 놀라고, 맥주 병과 해바라기씨 껍질, 먹다 남은 접시들이 잔뜩 올려진 테이블에 앉아 왠지 모를 위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빡빡머리 사내들에 두 번 놀랐으며, 담배를 꼬나 문채로 어떤 인사나 안내도 없이 내 앞을 지나쳐 주방 쪽으로 가는 종업원에 경악했다.


'아... 잘못 들어왔나?'

'영업을 안 하나?'

'아니면... 인육만두라도 파는 곳인가?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여기 까지라는 건가!?'


상황을 파악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했던 택시에서의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처량하게 굶주린 뱃속 아주 깊은 곳에서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들은 뭔데 이렇게 더럽고 불친절한 거야?'

'빌어먹을 놈들, 손님이 왔는데 아는 척도 안 해?'

어디 가서 한 성깔 한다는 이야기를 평생 들었던 나다. 이런 식이면 나도 좋게 좋게 할 수가 없다 이 말이다.


치밀어 오르는 엄청난 분노의 크기에, 정확히 반비례하여 다소곳이 의자를 빼고 조신하게 테이블에 앉았다. 다들 무섭게 생겼으니까... 그리고 주방에 서서 돼지머리도 한 방에 쪼갤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중식도로 등뼈를 퍽퍽 내리치고 있는 아저씨와 눈도 마주쳤으니까... 그리고 일단 오늘은 내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으니까 훗날을 기약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곤 음식 사진이라곤 한 장도 없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대체 언제 인쇄해서 코팅을 했을지 가늠조차 안 되는 낡고 빛바랜 메뉴판을 보았다.


羊肉水饺/两 -- 6元

猪肉水饺/两 -- 6元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대략 이런 식으로 쭉 쓰여 있던 메뉴판이었는데, 맨 위는 양고기 물만두, 아래는 돼지고기 물만두라는 뜻이고, '량'이라는 단위는 이때 알게 되었는데 중국에서 만두를 판매하는 단위였다. 一两,二两이라고 하며, 한'량'은 만두 한 접시, 그 당시 내가 받았던 건 한 량에 여덟 개였다. 당시 환율이 160원 정도였으니, 천 원 남짓의 가격으로 주먹 반 개 크기의 물만두를 여덟 개나 먹을 수 있다는 건 가난한 유학생에게 정말 멋진 일이었다.


服务员!点菜!(종업원! 주문받아라!)

목청을 가다듬고 저기 짝다리를 하고 서서 티비를 응시하고 있는 불손하기 짝이 없는 종업원을 불렀다. 뭔가 이 판에서는 나도 좀 불손해져야 밑지는 장사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마음속으로는 메뉴도 정해 놓았다.


'야만스런 북방에선 역시 양고기를 뜯어줘야 좀 강해 보이겠지, 난 돼지고기만두가 더 익숙할 것 같고 좋지만, 굳이 양고기 만두를 선택함으로써 너희들에게 꿀리지 않는다는 걸, 북방의 야성이 내게도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吃啥?(뭐물낀데?)

신공략중국어 초급 편에는 없었던, HSK 5급 듣기 평가에선 들을 수 없었던 진한 동북의 얼화(儿化) 발음과, 마치 나 따위를 서빙하는 건 너무 하찮은 일이라, 굳이 번거롭게 손에 끼울 필요조차 없다는 듯 물고 있는 담배에 조금 전 각오는 희미해져 갔다. 그때의 느낌을 살리려면, '무엇을 드시겠어요?' 따위의 번역으로는 어림도 없을 듯하여 경상도식 사투리로 의역해 보았다.


我吃这个...(이거 먹을래요...)

양로우쉐이지아오 알량!(羊肉水饺二两)! 이라 말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병음과 성조를 수차례 복기했건만... 정작 쭈굴하게 손가락으로 양고기만두를 가리키며 '이거 먹을래요'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종업원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만두 한 접시를 두 손이 아닌 한 손으로 받친 채 들고 와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만두 두 알이 물리법칙에 의해 접시를 벗어나 테이블 위로 떨어졌고 간장도 옆으로 조금 흘렀다. 이게 공맹의 도를 이야기하던 중국이 맞긴 한 건가? 아무리 반상의 법도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하나, 어찌 이토록 무례하고 방자할 수 있단 말인가!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종업원을 다시 불러 옛 선조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대신 테이블 위로 떨어진 만두를 집어 들고 허겁지겁 입속에 쑤셔 넣었다. 순간 뜨거운 육즙이 입천장과 목젖을 강타했지만, 그 달콤함과 뜨끈함에 압도되어 도로 뱉어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적당히 두툼해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는 만두피와, 묘한 육향이 있지만 달콤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육즙을 뿜어내는 만두소, 무심한 듯 대충 종지에 들이부었을 간장과 식초의 배합으로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고기만두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산미까지...


그렇게 지난 시간 내가 구축했던 만두의 세계관이 붕괴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마냥 양고기 만두 두 접시를 먹고, 이어서 돼지고기만두 두 접시까지 총 32개의 만두를 정신없이 먹은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好吃吧!(맛있제!)

종업원은 여전히 퉁명스럽게 한 마디 툭 던졌다.


단순히 황홀한 맛에 취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어떤 방화벽 같은 것이 일시적으로 무너지는 경험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분명 여전히 줄담배를 꼬나물고 불손하게 서있는 종업원의 모습은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음에도, 누렇게 변색된 치아를 슬쩍 드러내며 씩 웃는 그 모습에서 묘한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嗯,他妈太好吃啦! (응, 존나 맛있어!)

순간 종업원도, 주방에서 살벌한 중식도를 휘두르던 빡빡머리 아저씨도, 잘근잘근 씹던 해바라기씨 껍질을 퉤퉤 거리며 바닥에 뱉던 부랑자 같은 아저씨도 가게가 떠나갈 듯 와하하하하 하며 웃었다. 그리고 나도 정말 미친 사람마냥 하하하 하며 통쾌하게 웃었다. 내 속에 불편하게 얹혀있던 체증이, 첫날부터 머저리처럼 당하고만 있었던 울분이, 쑥 내려가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장염의 메스꺼움과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你是韩国人吗?留学生?(한국인이냐? 유학생?)

알고 보니 종업원이 아니라 사장님이었고, 주방에 있는 빡빡머리 아저씨는 남편이었다. 이 야만스러운 주인아주머니는 독한 중국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물었다.


是的,我是来自韩国的留学生,请多关照!(예 저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리긴 뭘 부탁을 드려, 지금 생각하면 참 등신 같은 대답이었지만, 내가 그날 처음으로 자신 있게 내뱉은, 중국어 교재에서 수도 없이 읽고, 외웠던 온전한 한 문장의 말이었다.


그래도 짬밥 좀 먹고 머리가 굵어졌다고 그런 건지, 요즘은 술을 마시며 영업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밖에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는 술이 체력적으로 버겁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그렇게 술로 친해져야 할 사람이라면 차라리 안 친하고 말지'라는 마음이 자라게 되면서 자연스레 술자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술병을 앓거나, 쓰린 속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울 일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딱서니 없는 걸 알지만,

지금도 종종 그날의 양고기만두가 그리울 때면, 먼저 속을 확 뒤집어 놓고 먹어야 제대로 그 맛이 구현되려나, 언젠가 또 어쩔 수 없이 진탕 술을 퍼마셔야 하는 날이 오면, 다음날 해장으로 어디 동북 스타일로 양고기만두 잘하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가게를 찾아 대림동이든 가리봉이든 찾아가 봐야 하나 같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아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심지어 한 접시의 양고기만두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다시 장춘의 그곳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신 맛볼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의 그 투박했던 만두 한 접시에는,

남겨두고 떠나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펼쳐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내가 속했던 세상의 벽을 깨고 미지의 것들과 마주했던 스물셋 애송이의 공포를,

처음으로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북방의 온기가 버무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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