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리뷰

15년 전의 애송이와 마주한 15년 후의 애송이

by 염가인생

장춘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했던 일기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기록이란 참 유용한 것이지만, 그 속의 과거와 대면하는 일은 종종 부끄럽고 멋쩍은 경험이다.


그땐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건지, 무슨 감성에 취해 'ㄱ ㅏ..끔.. 눈물을 흘리고 ㅁ ㅓ 리가 ㅇ ㅏ닌... 맘으로... 우는 ㄴ ㅐ ㄱ ㅏ 좋았던' 건지.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당시의 세세한 상황을 복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우리는 대개 "그땐 참 어렸지"라거나 "참 유치했어"라는 말로 겸연쩍은 과거를 현재의 자신과 서둘러 분리시킨다.


문득 일전에 한 역사학자가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현대인이 범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멍청했을 거라 믿는 편견이라는 것이다. 과학 문명이 지금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그들의 지성마저 낮게 평가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인류는 같은 호모 사피엔스였다. 뇌의 크기도, 유전적 특징도 다를 바 없었다. 만약 그들이 정말 미개했다면, 전기 에너지, 화석연료의 도움도 없이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수십 톤의 거석을 옮겨 스톤헨지를 쌓아 올리는 그 경이로운 설계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면, 과거의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리석었을 거라는 생각 역시 내가 가진 편견일지 모른다. 십수 년의 경험치를 더 쌓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치기와 독선을 원대한 이상과 드높은 자존으로 오판했던(또는 오판했다 단정 짓는 오판을 하고 있는) 이십 대의 내 모습이 한낱 애송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순간을 살았던 나에게는, 그것이 그 당시에 낼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정답이자 오늘을 만들어 준 초석이 아니었겠는가.


그렇기에 오늘의 내가 얼마나 더 현명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를 뽐낼 수 있는 성장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제대로 항변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과거 속 나에게 실제보다 더 미성숙한 애송이라는 오명을 씌워버리는 일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위선적이고 비열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 시절의 나를 두 팔 벌려 안아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과거의 애송이에게 오늘의 애송이가 갖출 수 있는 최선의 예우일 것이며, 또한 이는 먼 훗날, 오늘의 애송이가 미래의 애송이에게 버림받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보험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야만, 15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를 잇는 이 소박한 여정이, 조그만 성취를 자기 합리화로 덧칠해 자전적 무용담으로 부풀려 늘어놓기 좋아하는, 소위 성공팔이와 강의팔이들로 넘쳐나는 이 부끄러운 세상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2011년 1월 2일의 기록

삶이란 게 참 더럽게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거라고 느끼다가도 한순간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일 뿐.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도 또 현실에 산재한 수많은 난관들에 직면하면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어쩌면 삶이란 이미 정해진 곳으로 흘러가는 것일 뿐. 흘러가는 과정에서 큰 바위를 만나 부딪혀 깨지고 돌아서 흘러가고 때론 그 바위를 깨부수고 흘러가기도 하면서 만드는 하나의 물길이 아닐까 싶다.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한 삶이란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만 흐르고 싶대도 쉽사리 흐름을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중략...) 그렇다면 그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발버둥 치는 것이 가치 없는 헛된 몸부림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만일 내 삶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미 정해진 기쁨과 슬픔의 총량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를 방관자적인 태도에 머물게 할 이유가 되기보단 정해진 것들을 최대한 느끼고 살 도록 마음을 컨트롤해야 하는 당위가 될 것이다.

2011년은 Mind Control 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리 녹녹지 않은 세상, 미쳐 돌아가는 세상, 내가 믿는 것들의 가치가 전도되고 혼란을 주는 세상에서 독선일지언정 믿음이 없다면 혼란의 파도 속에서 부유하는 부표 같은 존재가 돼버리고 말 것이다.

스물셋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살아갈 삶은 아마도 이상과 구체적인 삶 사이에 존재할 괴리를 좁혀가면서도 이따금 혼란과 좌절을 마주하게 될 그런 것이 되지 않을는지... 그리고 그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과연 나는 얼마나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을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생각하고 현상과 존재들에 대해 어떤 눈을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순간이 다가옴에 두렵기도 하다.


일기를 다시 읽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마인드컨트롤이었다. 지금이야 서점 매대에서조차 내려버린 흔하디 흔한 자기 계발서 속 진부한 키워드로 치부하겠지만, 당시의 나에게 이 단어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를 부표라 정의하고,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단단히 묶어둘 독선적인 믿음이라도 갈구했던, 처량하면서도 치열했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석양을 등진 앙상한 겨울의 검은 실루엣과 순백의 설원을 응시하며, 훗날 얼마나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을지 두려워하면서도 궁금해했던, 15년 전의 내게 처음으로 이렇게 다정히 말해본다.


"수많은 기대와 불안 사이에서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너의 그 독선과 날 선 고민들 덕분에, 고맙게도 15년 뒤의 너는 그간의 여정에서 마주한 모든 것들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스스로의 삶에 염가라는 값싼 수식을 붙였음에도 조금의 부끄러움 없이, 제법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어른이 될 수 있었다. 네가 그렇게 살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장염 특효약은 양고기 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