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의 독은 사냥이 아니라 나약한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다.
장춘에서의 유학 생활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녹록지 않았다. 3학년 학부 편입을 위해서는 부족한 중국어 실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려야 했다. 마침 기숙사 1층에 마련된 방학 어학 코스는 수준별 커리큘럼이 잘 갖춰져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봐도 무슨 패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중급 수준의 실력으로 최고급 과정을 선택했다. 나 자신을 가혹한 환경과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세우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은 채 마주하게 될 더 큰 도전들 앞에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것 같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과정은 역시나 험난했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은 저마다 유창한 실력을 뽐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러시아의 알렉산더, 독일의 파비앙, 아르헨티나의 필라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적어도 저만치 앞서 간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처질 순 없다는 생각에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쫓기듯 다시 책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단어집을 미련하게 필사하고, 어지러운 장문을 읽어보려 애쓰던 나날이었다.
뒤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겠지만, 그들과 부족한 외국어로나마 끊임없이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함께 했던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는 부쩍 유창해진 중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덤으로 다양한 나라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세계의 저변을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었다. 그 고마운 인연들을, 앞으로 살아가며 다시 만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다. 전쟁 중인 러시아에 발을 들여야 하고, 독일 남부의 튀빙겐을 경유해 지구 반대편에 붙어있는 남미의 끝자락 아르헨티나까지 언제나 가볼 수 있으려나. (물론 현재 내 개인 투자 중 가장 큰 프로젝트인 Operation: To the Moon, 작전명 투더문-아르테미스2 미션에 대한 집중 투자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다면, 마음 편히 비즈니스석에 앉아 옛 친구들을 만나러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보여주었던 뛰어난 지성과 삶을 즐길 줄 알았던 태도에 비춰볼 때 그들을 추억하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분명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아무튼, 최고급 과정에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중 유독 한국학생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한국인 유학생이 초중급 레벨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설익은 인연들이 하나로 뭉쳐 함께 웃고 떠들고, 마시고, 사랑하고, 갈등하다 결국 삼삼오오 갈라져 서로를 몰랐을 때보다 못한 타인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들. 나는 엉망진창이었던 대학 초년 시절에 이미 그 과정을 숱하게 경험했고, 그 기억은 일종의 백신처럼 내 정신에 깊게 접종되어 있었다.
덕분에 낯선 타지에서 모국어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안락하고 달콤한 인연의 독(毒)이 될지, 그리고 한 번 스며든 그 독이 한국을 떠나며 품었던 나의 독기 어린 다짐을 어떻게 부식시켜 나갈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 생활의 출발선을 한국 학생 없는 고급반에서 시작한 것은, 그 당시 내가 내린 가장 현명한 결정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곳에도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는 존재했고, 그들은 낙후된 중국 북방 도시에서의 유학생활과 한국에서 응당 누렸어야 할 청춘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부지런히 어울려 다니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갔다고 한다. 다만, 후에 10년 이상 한-중 비즈니스 최일선에서 수많은 중국 유학생 출신 인재들을 만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때 그 커뮤니티 속에서 활약상을 떨친 길림대학교 동문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삶에 대해 주제넘은 성패를 판단하는데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할뿐더러, 설령 근거가 있다 정당화될 수 없는 오만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결과가 그들이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기회와 청춘의 기쁨 사이에서 일종의 교환을 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 믿는다. 얻는 게 있으면, 내어주어야 하는 것도 있다는 절대불변의 법칙은, 나와 그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십수 년이 흘러 그 시절을 회상하며 쓰는 오늘의 글을 빌려, 그들에게 때늦은 사과를 전하고 싶다.
그 시절 그곳에서 내가 그렇게까지 과도하게 그들을 배척하고 심지어 경멸하면서 스스로를 고독에 가뒀던 것은, 사실 그들이 젊은 나날을 헛되이 보내서도, 특별히 불량해서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으로 언제든 깨지기 쉬었던, 나약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품었던 처량한 개구리의 작은 독주머니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시절 삶의 방식은 달랐지만 같은 북녘의 하늘 아래 살았던 그 모두가,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