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두꺼운 책을 읽으며 따듯한 햇살에 나른해져 있던 앨리스는 분홍색 눈을 한 하얀 토끼가 앨리스 쪽으로 뛰어오는 것을 본다. 지루한 일상에 익숙해진 나머지 권태에 빠져있던 앨리스는 처음에 그것이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토끼가 양복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급하게 달려가는 것을 보고는 처음 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따라나선다.
토끼가 뛰어든 굴 속으로 따라 들어가자, 앨리스는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다가 바닥에 닿았을 때 토끼가 들어간 작은 문을 보게 된다. 그 쥐구멍은 너무 작아서 앨리스에게는 맞지 않았는데, 마침 ‘나를 마셔요’라고 적힌 물약을 먹고 작아지게 된다. 그러다가 너무 작아져 몸이 커지는 케이크를 먹자 다시 너무 커져 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울던 와중, 손에 몸이 줄어드는 부채를 잡고 작아지자 자신이 흘린 눈물 연못에 빠진다.
눈물 연못에 빠졌을 때, 마침 쥐가 같이 물에 빠지자. 고양이와 쥐 잡는 개 이야기를 쥐에게 하게 된다. 쥐는 자신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안내하겠다며 길을 안내한다. 쥐를 따라 들어간 문 안에는 다양각색의 동물들이 있었다. 잉꼬,오리,도도, 새끼 독수리 등… 하지만 다들 저마다 하고 싶은 말만 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앨리스가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 다이너 이야기를 또 하자, 다들 도망간다.
그러던 와중 토끼를 다시 발견하고 따라가다가 토끼는 앨리스를 하녀로 착각하고 자신의 장갑을 찾아오라고 시킨다. 토끼의 집에서 앨리스는 키가 커졌다가 작아지는 경험을 한 번 더 하게 되고, 몸이 작아졌을 때 강아지를 만나 도망치고 만다. 그렇게 도망쳐온 수풀 속에는 쐐기벌레가 있었다. ‘너는 누구냐’라고 물어보자, 앨리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혼란스러운 일 떄문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어색한 침묵과 대화가 오간 후 쐐기벌레는 키를 조절하게 해주는 버섯을 주고는 사라진다.
그렇게 길을 헤매던 중 못생기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공작부인과 첫만남을 하게 된 앨리스는 후추를 가득 쓰는 요리사와 항상 웃고 있는 체셔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체셔 고양이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미쳤다고 말하며, 그나마 덜 미친 사람들을 찾아보려거든 3월 토끼와 모자장수의 티파티에 가보라고 조언한다.
3월 토끼와 모자 장수, 그리소 잠쥐의 티파티는 환영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음식이나 차도 거의 주지 않은 채 자기들의 말도 안되는 만담만 반복한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가 화가 난 앨리스는 다른 길로 가려다가 여왕을 마주친다.
그곳에는 카드 정원사와 병사들, 다이아몬드가 적힌 신하 카드들과 하트 왕과 하트 여왕이 다 같이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앨리스와 크로켓 경기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체셔 고양이에게 앨리스는 불평을 하는데 여왕의 고슴도치가 달아나 크로켓 경기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채로 공정하지 않은 무질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체셔 고양이를 발견한 여왕이 습관적으로 그를 처형하려고 말하자, 체셔 고양이가 목이 없다는 사실에 왕과 신하들, 병사들은 논쟁에 빠지고, 그 틈에 체셔 고양이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던 와중 앨리스는 공작부인과 재회한다. 공작부인은 처음에 본 경험과 달리 아주 온순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앨리스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여왕이 공작부인을 처형하러 돌아오자 가짜 거북이와 그리핀을 따라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빠져나간 곳에서는 누가 타르트를 훔쳤는지 왕과 여왕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범인은 하트 잭으로 이미 밝혀져 있었으나, 평결을 내기 전에, 여러 증인들이 나타나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럴 때마다 여왕은 다들 처형을 하라고 시킨다. 그러던 와중에 앨리스가 증인이 되었을 때, 앨리스에게도 여왕이 처형을 내리려 하자, 앨리스는 ‘당신들은 고작 카드 한 벌일 뿐이야 !’라고 외치며 언니의 무릎베게 위에서 잠에서 깨게 된다.
앨리스가 맨 처음에 토끼를 따라나선 것은 평범함과 일상성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사건이다. 처음에는 흥미롭고 신기했지만 토끼 굴에서 자신의 키가 뜻에 맞지 않게 크다가 작아지는 일을 겪자 서러워지고 만다. 이때 앨리스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오늘은 모든 게 다 이상하네! 어제는 모든 일이 평범했는데 말이야. 밤사이에 내가 변한 게 아닐까?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난 어제와 똑같았던 걸까? 뭔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내가 만약 어제와 같지 않다면 다음 질문은 난 누구지? 라는 거겠지.”p.124
어린 앨리스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급격하게 바뀌게 되자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두려움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키까지 이상하게 변하니 두려움은 절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내가 메이벌이 된 거라면 여기에 계속 주저 앉아 있을 거야. 사람들이 몸을 굽혀서는 다시 일어나 보렴이라고 말해도 소용없어. 난 고개만 들고 이렇게 말할 거야. 그럼 난 지금 누구죠? 그걸 먼저 이야기해주세요. 만약 그 사람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어날 거예요.”
그러나 앨리스가 던져야 했을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여기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해결될 일이었다. 우리는 일상성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를 부딪혀 실존이 위협받게 되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지만, 사실 우리는 개인의 존재론을 다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세계관, 우주론을 고민하고, 우리는 지금 이 세상 어디에 있고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체셔 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에야 앨리스는 그에게 비로소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어보지만 어떤 곳으로 가고 싶은지 말하지 않고 어디든지 이곳만 아니면 좋은 곳을 원했기 때문에 체셔 고양이는 미친 3월 토끼의 티파티를 알려주었다. 목적지를 정하기 전에 목적을 정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목적을 정하는가? 공작부인과 재회했을 때와 그리핀을 만났을 때, 앨리스는 자신이 마주한 이 말도 안되고 무의미한 것 같은 상황들에 대해 부인에게 묻는다. 공작부인은 모든 일에는 교훈이 있는 법이라고 말하고, 그리핀은 모두들 꿈을 꾸는 것이라고 정반대로 말한다. 그러나 이 두 상충되는 명제는 결국 같은 말을 담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꾸며, 그 꿈에는 우리가 찾는 의미, 즉 교훈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재판장에서 증인이 된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의 여왕과 그녀의 신하들에게 당신들은 그저 카드 한 벌이라고 말하자마자 앨리스는 잠에서 깨게 되고, 이 모든 광기 어린 세상은 해방을 맞게 된다. 그동안 앨리스는 합리성이란 것이 멸종한 것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사실 카드 게임만큼 규칙적인 것도 없다.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기도 했던 루이스 캐롤이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에는 나름의 일상과 상식이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혼란스러울 정도로 고통과 시련이 가득하지만 이러한 부조리는 동시에 억압적이라고 할 만큼 규칙적인 합리성에 매여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다들 정처없이 떠도는 듯하다. 이때 보통 해결방식은 두 가지 이다. 앨리스처럼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거나, 이 광기 어린 세상에서 같이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앨리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 세계를 비판하면서 찾았다. ‘이상한’ 나라는 결국 규칙의 모습을 한 무질서일 뿐이고, 자신은 유일하게 이곳에서 정상인 사람임을 갈수록 분명히 확신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을 그저 카드 한 벌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때, 비정상성과 정상성을 임의로 규정하는 사회의 폭력성이 자신을 해할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이 기나긴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