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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집

『이성과 감성』(제인 오스틴) 서평

by 최시헌

『이성과 감성』 의 시작은 서식스의 대시우드 가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헨리 대시우드가 죽게 되자 대시우드 가문의 노어랜드 저택을 이어받은 것은 존 대시우드였다. 그는 헨리 대시우드의 외동아들이었고 나머지 가족은 딸 셋과 부인 한 명이었다. 생전에 그가 잘 대해주었던 쪽은 딸들과 부인이었으므로, 이기적이었던 존 데이비드의 부인은 본래 그녀들에게 상속되었어야 할 재산도 빼앗고, 대시우드 저택도 멋대로 들어가서 살게 된다.

헨리 대시우드의 딸은 총 세 명이었는데, 첫째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엘리너, 둘째는 감성적이고 정열적인 메리엔, 그리고 둘의 성격을 균형있게 이어받은 마거릿이 막내였다. 본래 대시우드 여사는 예의없는 며느리 떄문에 노어랜드 저택을 빨리 떠나고 싶어했지만, 존 대시우드 부인의 남동생인 에드워드 페라스와 엘리너 사이에 애정이 생겨나자 이곳에 남을까 고민을 한다. 그러나 지나친 대시우드 부인의 패악 때문에 결국 먼 친척인 존 미들턴 경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존 미들턴 경의 집이 있는 바턴에서 맞은 첫 모임에서 메리앤은 브랜던 대령을 만나게 된다. 그는 메리앤의 악기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녀에개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메리앤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고 나이가 지나치게 많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싫어했다.

메리앤과 마거릿이 산책을 즐기던 어느 날, 비가 세차게 왔다. 메리앤이 근처의 정원으로 달리던 중 넘어지고 말았고, 발을 접지르게 되었다. 이 때 윌러비라는 젊고 잘생인 청년이 메리앤을 안고 집으로 데려다준다. 이러한 낭만적인 만남에 메리앤은 첫눈에 윌러비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는 메리앤과 모든 예술적인 취향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정열적인 성격도 비슷했다.

그러나 엘리너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메리앤의 사랑을 경계했고 그녀에게 몇번이고 경고를 했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만 생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시우드 부인이 약속에서 돌아오자 윌러비와 메리 앤은 크게 싸운 뒤였다. 알고 보니 윌러비는 업무가 생겨 런던으로 가야만 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약혼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엘리너는 동생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물어보지는 못하였다.

에드워드와 재회한 두 자매는 소박하게 아무런 욕심없이 살고자 하는 그의 인생관을 알게 된다. 에드워드는 정치계에도 사업에도 관심이 없어 결과적으로 옥스퍼드에 들어가 독립을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에드워드가 루시 스틸이라는 교양없고 예의 없는 여성과 약혼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엘리너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녀는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가졌던 마음은 진실하였음을 믿었다. 다만 형편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에드워드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슬퍼졌을 뿐이다. 게다가 루시와 다시 만나 대화해보니, 루시가 오히려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를 붙잡아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너는 오히려 너무나도 슬픔에도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이 사실을 감추었다. 그리고 런던에 오랜만에 갈 일이 생긴 메리앤은 윌러비부터 만나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윌러비로부터 이별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게 두 자매는 서로 다른 이유로, 다른 방식으로 깊은 슬픔에 빠진다. 메리앤이 언니가 넉달 동안이나 에드워드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털어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뜨거운 포옹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결국 루시와 갈등을 겪고 런던을 떠나게 된다. 메리앤과 엘리너는 에드워드를 용서했지만 말이다.

결국 대시우드 자매는 다시 클리블랜드로 떠나게 된다. 마거릿과 산책을 하던 메리앤은 갑자기 급성감기에 걸리게 된다. 처음에는 금방 나아질 것 같던 메리앤의 병세가 심각해지다 못해 위독해지자 엘리너는 어머니를 모셔오기까지 한다.

그러던 마치 메리앤이 처음으로 윌러비를 만난 날처럼 어느 비가 세차는 날에 윌러비가 찾아온다. 당연히 엘리너는 그를 경멸하며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윌리비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그를 맞이한다. 윌러비는 그의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빚이 많았고 그래서 원래는 재산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려고 했다. 따라서 메리앤에게는 자신의 돈에 대한 허영심에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그 시절의 윌러비는 메리앤에게 깊이 빠져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메리앤을 저버린 과오로 이제는 그 자신과 메리앤을 돌이킬 수 없는 불행 속으로 빠뜨렸지만 말이다. 윌러비는 떠날 때까지 그의 무고를 주장하였다.

엘리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위독한 메리앤에게 알리지 않았다. 혹시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메리앤의 상태가 조금씩 괜찮아 지자, 브랜던 대령이 메리앤에게 병문안을 온다. 이떄 메리앤은 브랜던 대령에 대해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 에드워드가 갑작스럽게 방문을 한다. 소문에는 에드워드가 루시와 결혼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결국 루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에드워드는 엘리너에게 청혼을 하러 온 것이다. 이런 꿈만 같은 상황에 아무리 냉정한 엘리너도 그동안의 모든 인고가 해소되는 감격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메리앤이 완쾌되었을 때는 브랜던 대령에 대한 애정이 생긴 뒤었다. 브랜던에게 의지하게 된 메리앤은 결국 그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감성적이고 정열적이기만 했던 메리앤이 진정한 사랑을 지혜롭게 찾게 된 것이다.

엘리너와 메리앤은 사랑을 이루려는 시련 속에서 제목의 이성과 감성을 상징한다. 메리앤은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엘리너는 차분하고 절제되었지만 끈기있고 인내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랑을 처음에 맞이했을 때의 설렘과 달리 맞은 슬픔과 좌절을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결핍된 부분을 보완하며 그러한 고난들을 극복해나간다.

그러한 과정에서 엘리너는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배우고, 메리앤은 낭만과 이상도 지혜롭고 신중한 판단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비록 한 개인만의 성장 소설은 아니지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다 다채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이성이란 무엇이고, 감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 뿐만 아니라 그러한 두 가지 인간의 성질은 어떤 방식으로 함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루는 철학적인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사실 결혼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대하소설이나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거대서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은 오히려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서 본질적인 인간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연약함이나, 정념과 이성, 사랑과 증오, 좌절과 극복, 기쁨과 슬픔 등 다른 소셜들에서는 한 번에 한 가지만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이 두 자매가 각각의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에 다 담겨있다.

이 소설을 통해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성과 감성은 각자의 면면을 조금씩 나눠가진다는 점이다. 서로 같은 피를 나눈 대시우드 자매가 그러하듯이. 정념이라고 무절제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이성이라고 해서 차가운 기계인 것이 아닌 것이다. 소녀가 숙녀가 되어가듯이, 인간의 정신도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보다 키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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