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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널리즘

공부하는 마음

6.25 전쟁을 기념하면서

by 최시헌

중앙일보에서는 6.25 전쟁의 참상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전 서울대 역사학자 김성칠 교수의 <역사 앞에서>라는 해방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6월 25일을 맞아 한국전쟁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에 이번 연재 기사를 들고 온 것도 있지만 동시에 이 기사는 한국인으로서 공부에 대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기는 1945년 11월 26일 염병준 군이라는 사람이 김성칠 교수에게 공부를 하는 방향에 대해서 가르쳐달라고 청한 데에서 시작된다. 이에 관하여 김성칠 교수는 공부하는 ‘마음’에 대해서 진심을 다해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김성칠 교수는 우선 긴 시간을 두고 끈기 있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반론을 제시한다. 이른바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문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학자되기 위함만은 아니요, ‘진정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한 도정이라고 한다. 그는 염원하던 광복을 맞아 앞으로의 한국(당시 조선)의 미래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민족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매에 염원하던 광복이 이루어지려는 오늘날 우리들은 모두 다 부지런히 우리 힘을 닦고 길러서 타일 조국을 위해서 일할 준비를 쌓을 의무가 있다. 그러함에도 모두들 기분이 들뜨고 허영과 안일과 모리(謀利)에만 정신이 팔려서 착실한 생각으로 자기연마에 잠심(潛心)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으니 이러고서야 10년 후, 20년 후의 조선을 누가 떠메고 갈 것인가.”


일제의 억압에 매여 무기력했던 조선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그 의무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성칠 교수는 국익만을 위한 공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당장 외국어를 배우는 등 기술적인 측면보다도 잃어버린 조선인으로서의 자아를 되살리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김성칠 교수는 한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혹은 나아가야 할지에 상당히 근접해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학을 배워서 자기의 얼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와 한글과 기타 모든 조선의 사상(事象)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 힘쓰라. 그리하여 기만과 가식의 일정(日政) 하에서 왜곡된 조국의 얼굴을 바로잡고 삼천만이 다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편협한 국수주의에 엉키고 뭉쳐지란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를 모르고 또 잘못 아니 우선 우리부터 먼저 똑바로 알고 그런 연후엔 어느 방면으로든지 뻗어나감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될수록 세계의 신지식을 많이 흡수하여 열국의 사이에서 당당히 어깨를 겻고 트는 빛나는 조국을 건설하라.”


오늘날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기까지 한국이 자신만의 정체성을(비록 그것이 철저히 상업적인 것일지라도) 찾으려고 분투한 과정은 이러한 김성칠 교수의 제안을 부흥시킨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이어지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학을 한 한국의 지식인들이 쌓아놓은 인문학적인 토대가 바르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만한 문화적 경쟁력이 만들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성칠 교수는 또한 공부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공부는 자기 수련을 쌓아서 더 나은 자기를 만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수양이라고 한다. 마치 성리학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면서도 공부의 정신을 새로이 되새기는 가르침이다.


다른 어느 시대보다 가장 교육율이 뛰어나다 못해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의 포화에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오늘날, 우리 공부의 목적은 조금이라도 이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을 갈구하기 위함이었지 자기 수양과 같은 사치스러운 이유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성칠 교수는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 오히려 자기 수양을 하는 공부의 마음가짐을 유한계급의 유희물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쪽이 먼저 나도 가난하니 구복(口腹)이나 채울 길을 생각하겠소 하고 겸손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공부는 그러한 차별적인 의미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을 바르게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나가려는 사람은 부자고 가난하고 간에 모두 공부를 해야 한다.”


세상을 바르게 살아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 본래 광복을 찾은 우리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바랬던 공부의 역할은 세상을 올바르게 건설하고 또 그러한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대학 입시 정책으로 언제나 학부모와 교사와 교육청 사이의 씨름이 일어나고 대학들이 서로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려고 눈치만 보는 이 사회를 김성칠 교수가 보게 된다면 공부의 뜻이 올바로 실현되었다고 볼 것인가. 공부가 특권이 되는 이 사회는 6.25의 참상을 당하기 전 새로운 한민족을 꿈꾸었던 김성칠 교수의 교육철학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으리라. 공부, 그중에서도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인문학하는 정신은 김성칠 교수가 말하는 공부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김성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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