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런던의 여름, 비 내리는 밤, 사람들이 교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단 한 사람, 공책에 무엇인가 메모하는 데애 잔뜩 열중하고 있는 사람만 뺴고 말이다. 택시를 잡지 못한 프레디는 어머니와 동생 클라라에게 면박을 듣는다. 비가 오는 와중에 지루해진 행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경찰 끄나풀처럼 의심되는 ‘메모 하던 사람'을 만난다. 그는 거리의 행인들의 출신부터 직업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메모를 하던 사람의 이름은 히긴스, 음성학자였고 그의 옆에 있던 신사는 피커링 대령은 인도방언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히긴스의 실험실에서 피커링 대령이 대화를 하던 와중 갑자기 수업료를 내고 히긴스의 강의를 들으러 왔다는 일라이자라는 소녀(비 오는 교회에서 만난 꽃 파는 소녀)가 히긴스와 가정부를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갑작스레 나타난다. 리자는 어린아이같이 응석을 부리기도 하고 억지를 쓰기도 하면서 자신을 가르치라고 예의가 없을 정도로 요구한다. 그러나 가난해보이는 리자를 히긴스는 혐오하며 업신여긴다. 하지만 결국에는 리자와 타협을 하여 그녀를 완벽히 가르친 후에는 더이상 만날 일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피커링은 그런 히긴스의 냉소적인 태도에 히긴스에게 여자 문제에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인지 묻지만 히긴스는 자신이 독신주의자임을 밝히면서도 일라이자를 학생으로서 ‘신성'하게 대할 것을 맹세한다. 일라이자는 어려운 수업을 몇달 동안 거치고 나서야 런던의 사교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날은 히긴스 부인의 접대일이었다. 아인스포드 힐 부인과 그녀의 딸인 클라라, 곧 교회에서 같이 비를 피하던 모녀가 등장한다. 그 모녀는 쪼들리는 경제상황에도 귀족스러운 품위를 잃지 않았다. 반면 사회성이 좋지 못한 히긴스는 이런 상황이 불편하기만 하다. 히긴스가 냉소적으로 모녀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이, 일라이자가 이 모임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억양만 좀 바뀌었을 뿐 사교모임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말을 한다.
그러나 히긴스는 그런 일라이자에게 단순히 억양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녀를 ‘숙녀'로 ‘재창조'해내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더 흐른 뒤, 일라이자는 피커링, 히긴스와 함께 어느 큰 연회에 나간다. 그녀는 마침내 ‘숙녀'의 기품있는 모습(특히 영어의 억양을)을 완벽히 구현해낸다. 일라이자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는 와중에 네폼먹이라는 어느 헝가리인이 나타나 일라이자의 헝가리어 발음이 너무나도 훌륭하다면서 일라이자는 영국인 중산층이 아니라 헝가리 왕족이라고 의심할 정도였으니, 히긴스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막이 내렸지만, 일라이자의 미래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빈민굴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라이자는 괴로워한다. 그렇게 히긴스와 서로 상처만 주는 말다툼을 한 일라이자가 막 잠에 들려고 할 때 프레디가 나타나 일라이자의 현관문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자 그 둘은 경찰관들의 방해를 피해 윔블던 커먼 공원으로 떠난다.
그럼에도 다시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집으로 돌아온다. 히긴스와 피커링 대령에게 히긴스 부인(히긴스의 어머니)은 감정이 풍부한 일라이자가 열심히 연회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온 것에 대해 칭찬을 하기는 커녕 싫험이 끝나서 기쁘다는 등의 막말을 한 것에 대해 혼을 낸다. 사실 히긴스와 피커링 대령은 일라이자에게 이미 정이 든 상태였다. 하지만 일라이자는 프레디와 결혼해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하지 못하고 끝까지 오만하게 그녀를 의존적인 실험체로 대했다. 일라이자는 그녀가 되고 싶어했던 피그말리온, 히긴스의 냉소적인 비인간성을 간파하고 그와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비록 새롭게 가정을 꾸려야 하는 프레디와의 결혼이 경제적으로 어려울지라도.(게다가 히긴스와 일라이자는 나이차가 10살 이상이 나는 상황이었다.)
‘갈라테이아는 결코 피그말리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의 관계는 너무 신성해서 좋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p.226
이러한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영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희곡 작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은 이상적인 외모의 조각상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 조각상이 인간이 되어 결혼한 사람에 대한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고전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 영국의 사회문제, 곧 신분사회,빈곤,여성문제에 대해 다루면서도 플롯의 구성을 입체적이고 일관되게 유지시켰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았고 영화로도 여러번 제작되었을 정도로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오늘날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은 보다 본질적인 인간과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진 채 인간의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이 희곡의 결말로 귀결되지 않을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일라이자와 히긴스의 관계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히긴스가 처음 일라이자를 대할 때처럼 인공지능의 비인간됨, 혹은 어떤 의미에서의 야만을 혐오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비인간성에 대해서 성찰해보아야 한다는 인식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인공지능을 도구로서만 개발한다라든지, 중립적 사용이라던지 하는 인간의 사심 섞인 거짓말들은 히긴스가 오만하게 일라이자를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일라이자를 잃을 것인가 얻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