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일리아스의 중심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영웅적인 분노’이며 이를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된다. 후반부에 결국 아킬레우스의 친우인 파트로클래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쟁에 복귀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뿐만 아니라 트로이아 군 전체에 복수를 자행한다. 이 복수의 잔혹함은 이미 맹목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잔인힘이었다. 심지어는 헥토르 사후의 시체를 처분하는 문제에 대해서 트로이아 측으로 돌려주자는 제안을 거절하며 ‘사자와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합의도 있을 수 없다.”와 같이 극단적인 복수심을 드러낸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전쟁에서의 일대일 결투는 일반적으로 명예를 존중했으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일 때도 죽인 후에도 인간적으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다니며 손상시킨 것을 포함하여 아킬레우스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모든 적을 섬멸하려고 한다. 이같은 잔인한 학살에 아킬레우스의 복수를 두고 ‘신들 사이의 전투’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신들 사이의 전투는 단순히 아킬레우스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일리아스 전반에 걸친 아폴론의 예언임과 동시에 제우스의 계획이기도 했다. 아킬레우스의 잔인한 복수심을 고양시킨 것은 여신 헤라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양 편이 나뉘어 전투를 벌인다. 제우스가 권력을 완전히 정립하기 전까지는 신들의 패권 경쟁에 의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음을 호메로스는 암묵적으로 묘사한다.
일리아스의 근본적인 주제로 돌아오면 영웅적 분노라고 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영웅적이었을까? 애초에 일리아스에서 영웅적이란 무엇인가? 아킬레우스의 ‘영웅적 분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적대자를 섬멸하려고 하고 자기파괴적이라는 점에서 총력전을 연상시킨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 오늘날 극단적 폭력 형태를 띄는 것은 군사적 전략의 근대적 주체였던 국가-인민-군대 통일체가 해체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비폭력으로서의 정치가 폭력인 전쟁으로 이어지면 이것이 즉자대자적으로 폭력으로서의 정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는 또한 물질적, 정신적 자본의 빈곤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시민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해소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시민사회의 피를 먹고 자라는 전쟁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도덕적 요인으로서 애국주의가 또한 고려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도덕으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클라우제비츠가 우려했던 것은 민족주의 중에서도 애국주의가 범할 수 있는 지나친 자국민이나 자국의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 역사에서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연결되는 접점은 첫째, 자기파괴적인 동시에 총력전이라는 점, 두 번째는 신들의 패권 경쟁 즉 정치가 아킬레우스의 전쟁인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다시 신들의 전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균형을 이루던 국가 인민 군대 등의 통일체가 해체되며 시민사회의 정치마저도 해체되는 변증법과 유사하다. (참고로, 정서적인 측면으로서도 파트로클래스의 죽음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슬픔과 애국주의도 연관지어볼 수 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열린 결말로서 단지 신들의 패권싸움이라는 큰 틀에서의 균형만을 보여주려고 한 듯 하지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연관지어 본다면 총력전의 위험성은 단순히 자기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예언과 제우스의 프레임대로 그 전개가 이어졌지만 현대의 헤게모니끼리의 패권 싸움은 허구도 아니거니와 그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도 모르는데다가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당 전쟁이란,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의 전쟁은 법적인 정신에 의해서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영웅적인 분노가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무력한 분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