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와도 같이-3.1운동에 대하여

by 최시헌

오늘은 만세의 날, 3월 1일이다. 대한민국 독립 정신의 뿌리가 되는 그 날이다.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삼일절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근거로 예를 들 수 있지만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상징성이 있다면 지식인과 민중이 다 같이 주체적 각성을 했다는 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이전까지는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중심이 되어 위에서 아래로의 독립운동이 있었으나 노동자, 농민층이 여기에 대거 참여하면서 이들의 정치 사회적 의식이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족해방운동전선에서 그들이 독자적 운동과 노선을 가지고 1920년대에 노동운동과 농민 운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전체로서의 조선인이 주체가 된 첫 순간이다.


주체가 된 조선인이었던 수많은 소설가 중에서도 영원히 푸를, 상록수와도 같은 몇 안 되는 소설가로는 심훈을 소개할 수 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심훈은 만세 운동에 뛰어들어 서대문 감옥에 투옥된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는 <먼동이 틀 때>나 <그날이 오면>과 같은 작품을 쓴다. 그리고 1935년에 동아일보가 브나로드 운동을 할 시점에 공모한 장편 소설이 바로 『상록수』이다. 농민소설이자 연애소설인 『상록수』는 박동혁과 채영신이라는 연인관계와 두 인물의 농촌 계몽 운동이 비대칭적으로 번갈아가는 전개를 보여준다. 청춘의 서투름과 그로 인한 비극성을 나타내는 가운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죽은 기독교인 채영신이라는 여성의 희생은 비장하다. 그러나 채영신이 죽기까지도 농촌운동에 완전히 몸을 던지지는 않았던 박동혁조차 그녀의 죽음 이후 채영신의 정신을, 계몽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각성을 통해 심훈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문학비평가 김우창에 의하면 문학이 단순한 사실의 보고와 다른 것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의미 속으로 전체화되어 삶의 부분과 전체 사이의 균열을 하나로 잇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문학은 사회의 이상과 현실을 보이고 이 가운데 상관 관계를 비추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와 더불어 이 전체의 변증법은 정지하고 만다. 전체성이 있어도 그것은 새로운 전체성에로 옮겨갈 수 없는 얼어붙은 전체성이다. 그럼에도 한국 문학이 근대적인 문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부정적이나마 가속되어 온 실증적 사회화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분출한 것이 3.1운동이다.


『상록수』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은 바로 이러한 실증적 사회화를 농촌에서 구현하고자 하였으나 현실적인 문제점에 맞닥뜨렸고 그 과정에서 채영신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는 당시에 애국계몽운동이 물리적으나 정신적으로나 가지고 있었던 한계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박동혁이 희망에 차서 발걸음을 옮기며 끝나는 결말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혁명 정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삼일절이라는 대한민국의 본질적인 정신을 기념하듯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에게 지식인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청춘이란 무엇인지 말한다. 박동혁이 채영신의 장례식에서 채영신의 유지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연설하듯이 고백하듯이, 그리고 염원하듯이. 지금의 청년들이 이 목소리를 듣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러나 상록수는 영원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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