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집

문학으로서의 웹소설

by 최시헌

최근의 일반 소설은 미시적인 피해 경험, 상처 입은 주체의 내면, 설명 불가능한 불안에 집중한다. 그 안에는 정교한 감정과 윤리가 있지만, 세계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세계를 말하려는 순간, 소설은 과잉이 되거나 교조가 되거나 무력해진다. 그래서 서사는 점점 더 작아지고, 개인의 경험 안으로 수축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가벼운' 장르로 여겨지는 웹소설—특히 회귀·빙의·환생 서사—에서 오히려 세계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것도 영웅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생존의 이름으로.


회빙환 서사의 출발점은 늘 비슷하다. 주인공은 죽었거나, 버려졌거나, 이미 실패한 미래를 알고 있다. 이 서사의 최초 동기는 정의도, 구원도, 이상도 아니다. 단 하나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 이 단순한 동기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노력과 보상이 연결되지 않고, 구조는 불투명하며, 개인은 언제든 탈락할 수 있는 세계. 많은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정확히 포개진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개인의 생존'은 곧바로 세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왜냐하면 회빙환 세계에서 개인은 결코 혼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무너지면 개인도 죽고, 제도가 붕괴되면 관계도 파괴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원하지 않더라도 세계의 핵심으로 끌려 들어간다. 정치, 계급, 신화, 시스템—세계의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회빙환 서사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와 분명히 갈라진다.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이 세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 논리는 도덕적이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서사가 하필 웹소설에서, 그것도 가장 상업적인 환경에서 살아남았을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수치화된 생존 환경 때문이다.


프랑코 모레티가 『멀리서 읽기』에서 지적했듯, 개별 작품의 정밀한 독해(close reading)가 문학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소수의 걸작에 집중하는 기존 문학사는 그 뒤편에서 생성되고 소멸해온 다수의 서사들을 시야 밖으로 밀어냈다. 그가 제안한 '멀리서 읽기'는 그 보이지 않던 다수를 다시 포착하는 시도다. 이 관점에서 문학은 고립된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라, 선택과 탈락이 반복되는 하나의 생태계로 읽힌다.


이 시각으로 일반 소설과 웹소설을 각각의 서사 생태계로 놓고 비교하면, 두 체계의 차이는 결국 서사가 살아남는 조건 자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전통적인 일반 소설계에서는 소수의 명작이 문학사의 중심 노드를 형성하고, 그 주변으로 개인의 내면과 피해 경험을 다루는 다수의 작품들이 분포한다. 실험적이거나 장르를 벗어난 시도도 존재하지만 수용 규모는 제한적이다. 중요한 점은, 이 체계에서 작품의 생존이 정량적 지표와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판매량이나 독자 반응은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인정은 비평과 제도에 의해 지연되고 선별된다.


반면 웹소설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정전이 아니라 생존형 클리셰다. 웹소설은 플랫폼 위에서 연재되며, 조회수·완독률·댓글·매출 같은 수치화된 지표에 의해 즉각적으로 평가된다. 서사는 느리게 축적되지 않는다. 매 회차마다 살아남거나 탈락한다. 이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구조가 바로 회귀·빙의·환생과 같은 생존 중심 서사다.


이 두 체계의 가장 큰 차이는 '선택 압력(selection pressure)'의 성격이다. 웹소설의 경우 선택 압력은 명확하다. 초반에 독자를 붙잡지 못하면 즉시 탈락한다. 강한 훅, 빠른 갈등, 명확한 위기—특히 '살아남아야 한다'는 서사적 조건은 즉각적인 몰입을 유도한다. 여기에 플랫폼의 피드백 루프가 더해진다. 독자의 반응은 곧바로 수치로 환원되고, 이 수치는 다시 서사의 방향을 조정한다.


반면 일반 소설은 선택 압력이 훨씬 느리고 모호하다. 수요층은 작고, 평가 기준은 정성적이며, 상업적 성과와 문학적 인정은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 이 환경에서는 서사가 생존을 위해 구조적으로 변화해야 할 강제력이 약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작품이 개인적 경험과 미시적 감정에 머무르며, 세계를 구조적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웹소설에서는 가장 개인적인 동기—즉 '나의 생존'—가 오히려 거대한 세계 서사로 확장된다. 개인의 생존 서사로 시작하지만, 장기 연재가 이어질수록 세계관과 시스템의 정합성이 요구된다. 살아남은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생존을 넘어 시스템·계층·세계 질서의 문제로 이동한다. 이 구조 속에서 회빙환 서사는 진화적 우위를 갖는다. 세계관 확장이 가능하고, 변주가 쉽고, 장기 연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로 바라볼 때, 우리는 웹소설을 더 이상 개별 작품의 질로만 평가할 수 없게 된다. 대신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이 구조가 반복적으로 살아남는가? 그 답은 작가의 역량이나 독자의 취향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환경 자체의 선택 알고리즘에 있다.


이 관점에서 웹소설의 회빙환 계통은 단순한 유행이나 저급한 클리셰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대적·기술적 조건 속에서 가장 잘 적응한 서사 형식이다. 그리고 이 형식은 개인의 생존 서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다시 세계를 말하는 데까지 도달한다.


모레티의 방법론은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하게 해준다. 무엇이 위대한가를 묻기보다, 무엇이 살아남았는가를 묻는 순간, 문학사는 전혀 다른 지형을 드러낸다. 웹소설의 생존 구조는 기존 정전 체계에 대한 도전이자, 그 진화적 재해석이다.


웹소설은 조회수와 완독률, 매출이라는 냉혹한 지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 환경은 서사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독자가 떠나면 서사는 죽는다. 이 선택 압력 속에서, 개인의 감정에만 머무는 이야기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이야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계가 필요해진다. 더 많은 인물, 더 큰 구조, 더 넓은 맥락. 그렇게 개인의 생존 서사는 자연스럽게 세계 서사로 진화한다.


왜 이러한 서사적 이동은 오랫동안 문학 비평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았을까. 왜 웹소설은 여전히 '자본에 예속된 콘텐츠' 혹은 '하위 장르 문화'로만 호명되는가.


이것은 기존 문학 비평이 전제해 온 인식 틀의 문제에 가깝다. 근대 문학 비평은 오랫동안 개별 텍스트의 미학적 독창성, 작가의 고유한 문체, 자율적 예술성을 중심으로 서사를 평가해 왔다. 이 기준은 정전 형성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대량 생산되고 빠르게 순환하는 플랫폼 서사를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웹소설은 '해석해야 할 문학'이 아니라 '분석 가능한 콘텐츠'로 분류되었다. 산업 구조, 소비 패턴, IP 확장 가능성은 논의되었지만, 서사가 어떤 조건 속에서 선택되고 변형되었는지는 충분히 질문되지 않았다. 이는 웹소설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비평의 도구로는 그 의미를 포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웹소설은 더 이상 문학의 외부가 아니라, 동시대 서사 진화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내부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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