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집

『바벨 Babel(R.F.쿠앙) 서평

by 최시헌

바벨 Babel. 우리가 성경에서 익히 알고 있는 보편 언어의 탑, 인간 찬가는 이 소설의 바벨탑과는 미묘하게 다르면서 비슷하게 닮아있다. 배경은 영국과 청나라와의 아편 전쟁이 시작되기 전, 1830년대에서 40년대 청나라의 어느 작은 마을, 기근으로 마을 사람들이 다 죽고 소년 한 명만이 간신히 살아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런 중국 소년을 구해준 것은 익명으로 소년이 읽을 책을 늘 보내주던 영국인 교수 러브웰이었다. 소년은 청나라에서의 유년 시절과 언어, 정체성등을 다 버리고 로빈 스위프트라는 이름을 쓰며 영국식 교육을 받고 영국의 최고 교육 기관인 옥스퍼드의 바벨탑에 들어가는 것을 조건으로 러브웰과 함꼐 영국으로 떠난다.


스위프트가 들어간 바벨탑은 대외적으로는 세계 각지의 수재들이 언어를 배우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학생들의 모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생기는 ‘매치 로스’ 현상을 이용에 마법적 효과만을 생산하고 학생들은 그들만의 언어적 정체성을 철저히 제국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제국주의 기관이었다.


그리핀이라는 로빈의 배다른 형제가 바벨탑의 이러한 정체를 폭로하며 이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조직인 Hermes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기 전까지만 해도 로빈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고 의심이 되는 일이 있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러브웰 교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던 로빈으로서는 애써 위험한 일이나 영국을 배반하는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그런데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침략받고 친구이자 헤르메스 조직원인 래미 Remy가 죽자 로빈은 세상은 급진적인 폭력이 없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테러를 일으켜 헤르메스 조직원들과 함꼐 바벨탑을 파괴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러브웰 교수가 영국이라는 나라와 그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서부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용하며 식민지의 모든 자원은 정복자에게 종속된다는 중심적인 메세지를 담는다. 러브웰에게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영국인이 되려 했던 로빈도, 바벨탑에서 근무 했던 학생들도 모두 자신의 인생, 정체성, 언어를 모두 영국 제국주의에 의해 강탈당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바벨탑의 플레이페어 교수가 헤로도토스 왕과 이집트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벨탑은 민족간의 평화로운 교류를 위한 것이라며 영국 제국주의를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는 장면은 제국주의는 오직 폭력만을 수반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도덕적인 제국주의자도 식민지인에게는 폭력이며 강탈의 주체일 뿐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의 결말부는 어떤 형식으로든 제국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면 이 책의 원서 부제 ‘nessicity of violence(폭력의 필연성)’처럼 폭력적인 저항을 수반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이 결론은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비폭력은 제국 앞에서 가능한가? 나는 이 질문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을 떠올렸다.


그람시도 폭력적 수단과 문화, 사상적 저항간의 무게를 어디에 더 둘지에 대해 고심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근대사회에서 지배는 동의에 의한 것이지 힘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 그람시는 이데올로기적 장기전을 보다 신중하고 정교하게 선택한 것이다.


물론 프란츠 파농과 같이 제국은 식민화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므로 사상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이미 제국신민이 되어버린 식민지인들의 카타르시스적 충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 <바벨.의 입장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그람시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일제강점기 때의 한국의 무장론자와 계몽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장론자들은 비교적 친일화는 덜 되었지만 일제를 단독으로 전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미국이 핵무기로 일제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었을 때 <바벨>과 프란츠 파농의 입장이라면 한국은 분명히 다시 세력만 바뀌었을 뿐 더 강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빠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그들 가운데에서도 소수이지만 진실된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였다고 본다. 민족이라는 정체성과 독립이라는 자유정신을 지켜낸 지식인들이 미래에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민주주의를 발아시킬 씨앗을 대한민국에 남겨두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쓰여지지만 지워지지 않는 정신을 새겼다는 점에서 총, 칼보다 더욱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바벨의 인간 찬가는 소설이든 성경에서든 비극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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