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다. 또 눈물이 난다.
이유 없는 무기력이 마음을 덮치는 밤이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꽉 닫힌 문과 내려진 버티컬이 세상과 나를 단절하는 것 같다. 저 바깥에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승용차가 어렴풋한 배기음을 뿜어내고 있는데도, 세상엔 어쩐지 나 혼자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할 땐 목 안쪽부터 메이곤 한다. 사과를 잘못 먹어 목 가운데에 턱 걸린 듯이. 뭔가 꽉 막히고 응축된 감정 덩어리가 목울대를 틀어막는다.
순간 올라온 감정이 깊은 심호흡과 함께 내려간다. 감정은 파도를 타듯 나를 덮쳐왔다 사라지고, 또 덮쳐왔다 사라지곤 한다.
왜 이토록 우울한 걸까. 밤이 깊어지는데도 잠들고 싶지 않다. 피곤한 몸을 뉘고 수마에 몸을 맡긴다 해도. 또다시 피곤한 아침이 오고 지긋지긋한 하루를 시작해야겠지.
잠들고 싶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는 게 너무 지겨운 거다. 원인 모를 무기력감이 온몸을 잠식해 오고. 이대로 가라앉아 손가락 한 마디도 까딱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 지긋지긋하고, 익숙한 좌절이 또 찾아온다. 여태까지 넌 뭘 했니. 네 친구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동안 쟤네는 저걸 꾸준히 해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잖니. 도대체 너는 뭘 했니 그 시간 동안. 바보같이 시간 낭비만 했잖아.
그럼 나는 억울하여 항변하고 싶어진다. 아니야 나도 열심히. 열심히 했어. 나도, 나도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지난 시간 동안 나도 나름 열심히 했단 말이야. 한 마디 한 마디 변명하면서도 숨이 턱턱 차오른다. 마음속에서 말을 하는 건데도 한 마디를 내뱉기가 숨이 찬다. 아니야. 나도. 나도 한 거 있어. 나 좀 인정해 줘. 나도 이거. 이거 했어요.
말하다 보니 졸지에 존댓말이 툭 튀어나온다. 쪼그라든 나의 마음은 온갖 눈치를 보며 변명한다. 나도 이만큼 했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한 거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나의 조그만 마음은 여기저기 흩어진 부스러기를 긁어모은다. 그 하잘것없는 부스러기를 긁어모아 소중하게 손에 담아 내민다. 이거요, 이거 제가 지난 시간 동안 한 것들인데. 저 이만큼 했는데.
그러나 내민 손이 너무 초라하다. 누군가가 비웃는 것 같다. 그깟 부스러기들.
그럼 나의 조그만 마음은 사무치게 비참해져서.. 그 창피한 손을 얼른 가슴 안쪽으로 감추고.. 목이 콱 메어버리는 것이다.
또다시 눈물이 난다. 이래서 내 조그만 마음은 매일 눈물을 흘리나 보다.
내 마음에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 무서운 마음은 단연코 엄격한 마음이다.
이 엄격한 마음은 교관같이 무시무시한 각진 모자를 쓰고 있다. 뒷짐을 딱 지고. 군홧발을 떡 벌리고 서서. 무시무시한 그림자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한다.
열심히 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그 모습이 공장 노동자에게 채찍질하는 악덕 공장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채찍질에 나의 마음들은 매일매일 맞아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내 마음 안에서 가장 힘이 세고 가장 많은 권력을 쥔 자는 바로 엄격한 마음이어서, 아무도 그의 횡포를 막지 못한다.
이 엄격한 마음에 그만한 권력을 쥐여준 건 바로 나인 것 같다. 매일같이 되뇌는 완벽주의적인 말들. 해내지 않으면 안 돼. 쟤네들은 이만큼 했는데 대체 너는 얼마큼 했니.
늘 엄격한 마음의 목소리만 듣던 내가 원망스러웠는지. 가끔 이런 밤에는 조그만 마음이 내 목을 메이게 한다.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 나는 그제야 조그만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생각을 한다.
그래도 조그만 마음은 어찌나 양순한지. 내가 조금만 들어줘도 바로 만족하고 들어가 버린다.
더 이상 목이 메지 않는다. 다행이다.
밤도 조금은 온화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자러 갈 수 있겠다. 조금 달래진 마음을 안고.
(2023년 2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