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아스완)

1. 소피텔 레전드 올드 카탈락 아스완. 잊지말자, 우리 허니문이야.

by 겨울빛


흔들거리는 열차 속에서 눈을 뜬 아침. 알람을 맞춰둔 것도 아닌데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눈이 떠진다.


아침으로 나는 어제 산 코코넛 망고 요거트를, 남편은 간편식으로 나온 비빔밥을 먹었다.


이 비빔밥, 끓인 물만 넣으면 완성되는데 단순한 맛이지만 꽤 든든하고 맛있다. 아무래도 밥이 부드럽다기 보다는 살짝 딱딱한 부분도 있는데, 외려 누룽지 같아서 더 맛있는 느낌이다. 내가 마신 코코넛 망고 요거트는 글로벌 브랜드인 다논 거라 생각보다 비쌌었는데, 와 정말 유제품 기가 막히다. 아주 농후하고 부드러워서 하나 더 살걸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아스완 침대칸을 타면 필수템

아침 밥을 먹었으니 화장실에 갈 시간이다. 끝까지 이 열차를 타기 망설였던 이유. 일단 화장실 앞에서 당당하게 연초를 피는 사람들은 둘째치더라도, 화장실 내부가 충격적이다. 그…변기 아래가 뚫려있다(궁금해서 아래를 보니 진짜 선로가 보였다). 그래서 정차했을 때 가는 것이 아무래도 좋다.


변기 시트도 지저분해서 다이소에서 파는 일회용 변기 시트가 아주 유용했고, 비데티슈도 빛을 발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빈 페트병에 수돗물을 조금 담아 흘려주면 내 흔적 지우기 성공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딱 이부분만 좀 참으면 침대칸 나름 낭만있고(?) 좋다.


(왼쪽부터) 창문 틈으로 보이던 아스완 / 정말 너무 맛있었던 코코넛 망고 요거트 / 야간열차 안녕

그렇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보면 역무원 할아버지가 노크해주시면, 캐리어를 챙겨서 내리면 된다. 정들었던 침대칸도 안녕.


아스완은 카이로보다 훨씬 남부라, 아침인데도 햇살이 아주 강렬하다. 너무 더워서 가판대에서 남편이 산 코카콜라는 원래 가격의 3배다. 그래도 목마른 자가 손해니 어떡하겠나.복불복의 나라 이집트다. 역에서는 잊지말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내일 룩소르에 갈 열차 티켓을 사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갈까, 열차를 타고 갈까 잠깐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탄 택시들의 내부가 썩 깨끗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내일 아부심벨까지 장시간 택시를 타야하는데 또 택시를 타는 것이 힘들 것 같아 열차를 예매하기로 했다.


우리가 1등석을 산 것도 있지만 가격은 만만하지 않다 인당 40달러이다(외국인은 또 달러만 받는다..흑흑). 그래도 열차를 타면 화장실도 있고 더 안정적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왼쪽부터) 카이로보다 쨍한 햇빛의 아스완 / 룩소르행 열차티켓을 사려고 대기중
(왼쪽부터) 신기해서 찍어본 기차표 / 티켓 가격을 보여주셨던 표

그리고 우리가 역을 채 나가기도 전에 택시 흥정꾼들이 우리를 사냥할 준비에 나선 것이 보였다. 이럴땐 하얀색 제복을 입은 군인분 옆에 찰싹 붙으면 된다. 공권력이 확실한 나라 이집트. 마치 주술로 경계를 쳐놓은 것처럼 흥정꾼들이 다가오지 못한다. 그리고 누가봐도 먹잇감처럼 보이는지 군인 경찰분들이 다가와서 행선지를 물어보기도 한다. 세상에, 제복이 이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잊지 말자 하얀 제복.


아스완부터는 우버가 잘 잡히지 않아서 한참 뒤에 BYD(중국 차량 브랜드) 택시가 잡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청년이었는데, 우버 어플은 잘 못 다룰지언정 운전을 어찌나 물흐르듯 잘 하는지 초보운전자인 나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실수로 우버 여정을 중간에 취소해서 길을 조금 설명해야 했지만 열심히 찾아서 가주는 것이 고마웠다. 남편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 생각이 난다고 팁을 평소보다 더 얹어줬고(원래 이집트는 택시타면 팁을 약간 주는 것이 관례), 청년은 말없이 꾸벅하고 떠났다.


우리 허니문의 하이라이트, 소피텔 레전드 올드 카탈락 아스완에 도착했다.

(왼쪽부터) 숙소 전경 / 직접 안내해주셨던 유쾌하신 직원 분 / 입구에 아랍어와 영어가 쓰여있는게 신기해서 찍어본 입구

도착하자마자 짐은 직원이 보관해주고, 직접 스몰토크를 하시며 로비까지 안내해주셨다. 2층으로 된 벽돌 건물이 정말 고풍스러웠고, 야자수와 꽃들로 조경을 해놓았는데 이 덥고 물이 귀한 곳에서 이렇게 예쁘게 해놓은 것 자체가 엄청나다고 감탄했다.


도착해서 호텔 직원을 기다리며 히비스커스로 된 웰컴 티를 마셨는데, 달콤하고 진해서 정신이 확 드는 맛이었다. 정신이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꼬질꼬질한 여행객은 우리 둘 뿐이고, 모두 유럽에서 휴양을 즐기러온 듯한 부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이었다.

(왼쪽부터) 이집트 느낌이 물씬 나는 로비 / 진하고 달아서 피로를 한방에 날려준 달콤한 히비스커스 티

몇 분 후 직원이 와서 객실을 안내해주는데 호텔에 들어가는 느낌이라기 보다 박물관이나 유적에 관람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담당 직원이 계속해서 “너희가 묵는 객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야, 너희도 반할걸?” 이라고 너무 강조해서, 아니 뭐 얼마나 좋길래 자꾸 이러나 싶었다. 문을 열기 전에도 쌜룩쌜룩 웃으셔서 진짜 기대감과 설렘이 조금씩 차올랐는데, 문을 여는 순간 숨을 훅 들이쉬게 될 만큼 넓었다.

탄성만이 나오던 넓은 스위트룸
(왼쪽부터) 오래된 연식이 그대로 느껴지던 복도 / 앗, 화장실 우리집 거실보다 크다

탄성만이 나오는 객실이었다. 고풍스러운 쇼파 뒤 햇살이 비치는 침대. 그리고 창문을 열면 나일강과 펠루카들, 반대편에는 아직도 발굴중인 유적이 보인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카이로와 달리 마치 실크가 스치는듯 부드럽고 다정했다. 그 바람이 야간열차에서 조금 경직된 몸을 무장해제 시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의자에 몸을 뉘여 눈을 감아서 그 바람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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