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카이로-아스완)

2. 숨 돌리고 아스완으로 야간열차를 타고 떠나자

by 겨울빛


커피 한모금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고, 투어 마지막인 카이로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대박물관이 아니라 굳이 카이로 국립 박물관을 보러오는 이유는 투탕카멘의 관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첫날 걸인 아저씨에게 쫒겨가면서도 찍고 싶었던 카이로 박물관의 외관은 분홍색과 연갈색 사이 어딘가의 벽돌식 건물으로, 앞에 있는 분수와 풍경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핑크색 벽돌과 하늘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카이로 박물관

수신기가 말썽을 부려서 시간이 좀 소요된 후 입장하니, 기대한 것 보다 후덥지근한 내부가 우리를 맞이했다. 모름지기 박물관의 미덕은 시원한 건데,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이어서 그런걸까 냉방시설이 없었다. 그래도 늦저녁 뜨거운 햇볕이 내려 꽂는 외부보다 훨씬 쾌적했다.


원본은 영국에 있다지만 애니메이션 원피스에서만 보던 그 유명한 로제타석부터, 각종 유물들이 코스트코처럼 진열되어 있어서 살짝 당황했다. 사람이 만질 수 있는데 괜찮나 걱정될 정도였다. 대박물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유물들이 많았는데, 쿠푸왕 피라미드에서 나온 아주 작은 왕의 조각부터, 200 파운드 화폐에 있는 서기의 좌상까지.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마치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서기의 좌상이 특별한 이유는 눈에 있다. 눈을 유리로 세공했는데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반짝여서 놀라웠다. 도대체 어떻게 세공한 것인지 미스테리하다. 쌓여있는 유물들 속에서 하나를 뽑자면 여러번 책에서 보았던 사자의 서다. 책에서만 보던 작품을 눈으로 보았을 때 너무 신기하고 색감에 감탄이 나왔다. 이집트 문서와 건축물은 세월이 어려있어 흐려진 색감이 더 아름답다.

(왼쪽부터) 로제타 스톤 / 쿠푸왕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무덤 대비 아주 작은 크기의 좌상 / 200파운드에 있는 서기의 모습


특히 투탕카멘의 관은 화려함에 말을 잃었다. 어차피 사진도 못찍으니 이건 직접 눈으로 봐야한다. 보기 전까지는 왜 이렇게 피라미드와 무덤들이 도굴이 되었을까 안타까운 마음 반 이해가 잘 안되네 반이었는데, 보는 순간 어느정도 도굴꾼의 마음도 이해가 가더라(절대 도굴을 옹호하는 것 아님).


그 화려함은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다. 직접 눈으로 보니 금에 빛이 반사되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쳐다보게 되더라.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놀란 것은 금속 장신구였는데, 거짓말 안하고 지금 팔아도 잘 팔릴 것 같은 정교함과 디자인이었다. 원래 에스닉한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런지 비슷한 스타일로 기념품숍에서 하나 집어오고 싶을 정도였다.


이집트인들은 정말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 질문을 앞으로 몇 번이나 스스로 되뇌이게 될까.

(왼쪽부터)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생색은.... / 입구부터 화려했던 투탕카멘실 / 이렇게 유물이 코스트코처럼 널브러져 있어도 되나
(왼쪽) 그 유명한 사자의 서 / 4000년 전 사망한 귀족 추정 남자.손톱까지 남아있는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투어는 오후 5시에 끝났다. 오후 5시지만 여전히 뜨거운 이집트. 오늘 하루 함께한 일행들은 앞으로 또 이집트 다른 곳으로 향할 것이다. 서로의 여행이 안녕하길 기원하면서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야간열차를 타려면 아직 3시간 남짓 시간이 남아서 호텔 2층에 있는 풀장 옆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배스구이를, 남편은 마르게리따 피자를 시켰는데 둘다 너무 맛있었다.


맥주와 피자, 정말 맛있었던 배스 구이

특히 배스 구이가 정말 맛있었다. 맛도 양도 한국에서는 4만원돈은 줘야 할 퀄리티였는데, 호텔 내 식당이었는데도 가격이 반값이었다. 겉은 크리스피하고 안까지 간이 잘되어 있었고, 상큼한 레몬 올리브오일 소스도 훌륭했다. 여기에 스텔라 생맥주 한모금 먹으니 오늘 아침부터 2만보 가까이 걸은 피로와 함께 녹아내려 노곤노곤해졌다.


그렇게 식사를 한참 하다가 우연히 화장실에 가니 왠걸, 샤워장도 같이 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오늘 하루종일 모래먼지 바람을 온 몸에 맞아서 밥보다 샤워가 너무 간절했다. 재빨리 파우치에 있던 클렌징 오일을 들고 가 얼굴과 몸을 후다닥 씻으니 살것 같았다. 혹시 몰라 코인 모양으로 된 건식 타올을 챙겨다닌 것이 럭키였다. 드라이기가 없어서 두피에는 해롭겠지만 탈탈 털어 물이 떨어지지 않게 꼭 묶고 나왔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몸이 뽀송뽀송해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기차역까지는 차로 5분, 이집트의 도로상황을 고려해도 20분 정도라 여전히 시간이 남아서, 이 기세로 시샤를 피우기로 했다. 원래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가끔 해외에 나갈 때마다 시샤는 피우곤 한다. 확실히 아랍권에 온 것이 실감이 났던게 시샤의 플레이버 선택지가 다양하고 빨아들였을때 향이 인공적이지 않은 과일향이어서 좋았다.


여기에 어제 오늘 이집트 음식을 먹어봤을 때, 유제품과 레몬은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레몬주스를 시켰다. 특히 레몬은 쓴맛없이 살짝 스쳐가는 단맛과 상큼함이 정말 좋은데, 레몬주스와 함께 느긋하게 시샤를 한모금 피우면서 석양이 풀장에 물드는 것을 구경하며 여유를 만끽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시샤를 꽤 오래 펴서 숯 갈러 오시는 직원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팁을 조금 드렸더니 그 뒤로 어찌나 정성스럽게 신경써주시던지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왼쪽부터) 이집트에 오면 꼭 마셔야 할 레몬주스 / 고된 하루 끝 신난 남편의 모습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뒤로 하고, 우버로 택시를 잡아 기자역으로 향했다. 역 바로 옆에는 작은 슈퍼가 딸려있는데,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을 컵라면과 간편식으로 해결해야 해서 1.5리터 물 두병과 감자칩, 콜라, 망고 코코넛 요거트 한병을 샀다. 혹시나 바가지를 씌울까봐 살짝 걱정했는데 유일하게 열린 상점인데도 불구 제 값을 받으셨다. 복불복의 나라다.


아무튼 그렇게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만 아시아인이고 모두 현지인들인데다가 들어오는 기차가 우리 기차가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대합실로 보이는 곳 앞에 히잡을 쓴 할머니가 손짓을 해서 의심가득한 눈으로 다가가니 퍼스트 클래스 대합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여도 깨끗하진 않았고, 의자는 낡아서 구멍이 잔뜩 나 있었지만 앉을 자리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침대칸 내부가 좁아서 캐리어 열기가 어렵다고 봤던 것 같아서 간단한 세면도구와 잘 때 입을 옷을 미리 꺼냈다.


열차는 10-15분 정도 연착했는데, 우리 열차가 오니 할머님이 알려주셨다. 그리고 당연히 팁을 요구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작은 단위의 돈이 모두 떨어져서 팁을 드리진 못했다. 하지만 우리도…해달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으니….쌤쌤으로 쳐요 할머님…죄송합니다…


(왼쪽부터) 놀랍게도 퍼스트 클래스 대합실. 고양이가 귀여웠다. / 이게 굴러가나 싶은 기차의 외관

사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몸도 편하고 금방 가는 것을 왜 열차를 탔을까.


비행기 값이나 침대칸이나 놀랍게도 가격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숙소비가 나가는 것을 절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행기를 타면 저녁 비행기가 없어서 다음날 숙소에 늦게 도착하게 되므로 시간이 아까웠다. 침대칸을 타면 저녁과 아침 모두 티켓 가격에 포함되므로(우린 따로 음식을 가져갔지만) 식비도 절약할 수 있다. 다만 열차가 지저분한 것으로 알명이 높아서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


(왼쪽부터) 역무원 분이 좁은 복도로 짐을 날라주신다 / 저 위에 판이 내려오면 2층 침대가 생긴다 / 2층에서 본 1층의 모습

하지만 고민했었던 것 대비 우리 부부는 침대칸에 꽤 만족했다. 비좁긴 했지만 미리 챙겨간 포트와 기내식에서 빼서 고이고이 아껴둔 김치와 함께 신라면 한 입 먹는 그 맛이란! 이집트 음식 너무 맛있는데? 했지만 역시 우리의 혀는 한국인인걸 못 속이는구나 하고 실감했다. 여기에 뜯지 않고 끓는 물에 미리 만들어서 가져간 찬밥 상태의 햇반*을 말아 먹으면 정말 금상첨화다. 평소에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밥까지 말아먹진 않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든든하고 행복하고 졸린 천상의 맛이었다.


그리고 1층에 옹기종기 옆에 앉아 이집트 발굴 다큐멘터리를 다운받아 온 넷플릭스로 보다보면 역무원 할아버지가 와서 척척 의자를 내려 1층 의자를 침대로 바꿔주신다.

*햇반을 뜯지 않고(매우중요) 끓는 물에 미리 끓여 식혀 가면 좋다. 햇반을 그대로 가져가면 딱딱해서 맛이 없다.

(왼쪽부터) 밥상도 되고 아이패드 놓고 다큐도 봄 / 감동의 라면의 맛


사다리를 올려주시긴 하는데 생각보다 올라가기 힘들고 2층은 천장과 가까워서 키가 작은 사람이 올라가는 것이 좋다. 160인 나에게는 아주 안락하고 좋았다. 다만 2층은 에어컨이 직빵이어서 쌀쌀해서 후드와 바람막이를 입고 스카프를 둘둘 말고 잤다. 당연히 호텔이나 집에 있는 침대보단 불편하지만 잠에 못들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정기적으로 들려오는 기차 바퀴가 추쿵-추쿵-하는 소리와 정겨운 증기가 뿜어져 오는 소리가 ASMR처럼 느껴져 스르르 잠에 들었다.


내일은 아끼고 아낀 비용을 모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숙소에 간다.


내가 단 꿈을 꾸는 동안에도 밤의 기차는 추쿵추쿵 아스완을 향해 뿌연 모래를 뚫고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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