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아스완)

2. 스파부터 룸 투어, 레스토랑까지

by 겨울빛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져서 그런 걸까.


남편의 비빔밥까지 잘 뺏어먹으며 든든했다고 생각한 아침이 어느새 훅 꺼졌는지 배고파서 룸 안내 후 씻기 전 바로 룸 서비스를 시켰다. 렌틸콩 수프와, 양고기 코프타, 구운치킨과 남편은 스텔라 맥주를 시켰고 나는 이집트 와인을 한잔 시켰다.


가격은 솔직히 비쌌지만, 그래도 한국 호텔의 룸 서비스 가격의 2/3 정도 되는 것 같아 시켜보았다. 숙박비용이 200만원이 넘으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하고 가야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왼쪽부터) 샤워를 마치고 먹은 이집트 정찬 / 넋놓고 바라보게 되는 풍경


음식의 맛은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훌륭했다. 특히 양고기 코프타가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전혀 잡내가 나지 않았고, 이집트 와인이 아주 빼어났다. 넓은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로브 입은 채로 먹는 점심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기분좋았다. 와인을 한모금 살짝 하니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오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햇살을 얼굴에 잔뜩 맞으며 식사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우리 부부는 둘 다 체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악명 높은(?) 이집트 여행의 난이도에 대비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반년간 운동을 해왔지만, 타고난 체력이 워낙 비실한 터라 많이 지쳐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긴 비행 끝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낯선 곳에서 2만보씩 걷고, 모래 바람을 잔뜩 맞은 데다 야간열차까지 타고 나니 온 몸이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정이 꽤 남아있으니 큰맘 먹고 스파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둘 다 60분짜리 깊은 근막을 풀어주는 누비안 마사지를 받았고, 인당 140달러였다. 한화로 하면 거의 20만원이니 한국 고급 마사지와 큰 가격차이는 없는 셈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마사지를 강한 압으로 잘못받으면 며칠 내내 근육통으로 몸살을 앓는 터라 가격도 이렇게 비싼데 괜히 강하게 마사지를 받아 더 아픈게 아닐지 가기 전까지 걱정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기우란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스파 가는 길의 이국적인 조경

분명 꽤 일찍 체크인을 했는데도 호텔 내에 즐길 거리들이 많아 기대했던 것처럼 느긋하게 누리는 건 어림도 없었다. 3시에 예약한 스파는 우리가 묵는 건물에서 걸어서 5분 정도에 있는 새 건물에 있었다.


해가 떨어지면 추워서 수영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남은 20분 동안 만이라도 수영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내가 봤던 수영장 뷰 중 단연코 1등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수영장과 야자수, 그리고 먼발치에 보이는 유적까지. 마치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귀족이 된 느낌이었다.


행복의 발꾸락들

처음엔 살짝 차가웠나 싶은 수온도 한낮의 아스완의 강렬한 햇빛에 몸 윗쪽이 데워져 수영하기에 너무 좋았다. 아무래도 너무 더워서 그런지 수영장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따뜻한 햇볕이 그리웠을 유럽사람들은 누워서 해를 만끽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도 서가가 있는것도 아마 그래서인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우리 나이 또래의 커플은 수영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는데 그것도 귀여웠다. 그럼 그럼, 이런 뷰의 수영장은 꼭 사진을 남겨야지.


조용한 한낮,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으며 ‘그래, 너희도 잘 즐기고 있지?’하는 눈웃음을 공유하며 각자의 파트너와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던 소중한 20분이었다. 다만 수영장이 유럽인들의 큰 키가 기준이었던 건지, 생각보다 물의 깊이가 초반부터 깊어서 수영할 줄 몰랐다면 낭패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파 안내판에 있던 명상용 수영장

스파 안으로 입장하자 그 안에도 수영장이 있었는데, 여기는 수영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명상에 목적이 있어서 조용히 수영하는 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10분 정도 잠깐 쉬면서 음료를 마셨고, 스파를 받는 2층으로 이동했다. 수영까지 잠깐 하고 나니 정말 몸이 축축하고 노곤노곤한 상태였는데, 마지막까지 나는 마사지사 분이 너무 젊어보여서 강한 압으로 나의 근육을 쪼개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 부드럽고 깊게 압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 근육이 뭉친 곳은 더 세심하게 풀어주셨다. 몸의 근육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마사지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강한 압을 싫어하는 나와 달리 꽤 강한 압으로 받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마사지사가 할머니셔서 괜찮을까 했는데 끝나고 나니 엄지척을 했던걸 보면 만족할 만한 마사지였던 것 같다.

(왼쪽부터)스파 건물로 들어가는 길 / 깔끔했던 스파 시설

노곤한 채로 다시 돌아와서 도저히 안되겠다~해서 넓은 침대에 푹 잠겨 40분 남짓 자고 나니 몸에 엉겨붙은 피로가 한결 사라져있었다.


5시에는 호텔투어가 있었다. 평소에는 호텔에 가면 뒹굴뒹굴하는 시간을 만끽하곤 하는데 이 호텔은 그럴 새가 없다. 우리가 묵는 소피텔 레전드의 ‘레전드’가 붙은 호텔들은 다들 최소 100년이상의 긴 역사가 있는 곳들로, 전 세계에 5곳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여기 까탈락도 객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왼쪽부터) 투어 전 만남장소 였던 1층 라이브러리 / 로비의 꽃 장식이 화려했다

아무튼 특히 이 까탈락 호텔은 더 특별한 것 이유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그 유명한 나일강 살인사건을 집필한 곳이자,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도 묵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두 스위트룸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둘러보는 것이 호텔투어이다.

(왼족부터) 애거사 크리스티 / 애거사 크리스티가 집필했던 테이블 / 호텔 투어가 진행되는 모습

특히 기억에 남는 설명으로는 다이애나비도 이곳에 묵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룸에 묵었는지 질문했는데, 그것은 확실치 않으며 이 호텔에 묵은 것은 분명하다고 직원이 덧붙였다. 이 호텔은 유명인이 묵었던 방에는 초상화가 옆에 붙어있다. 궁금해서 숙소를 둘러보다가 발견했는데 다이애나비의 액자는 식당에 가는 길에 있었다. 아마 왕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묵긴 묵었지만 공표하진 않은 것이 아닐까, 하고 직원은 추측해 본다고 말해줬다.

(왼쪽부터) 윈스턴 처칠이 묵었던 스위트룸 / 스위트룸 내부의 모습 / 결국 찾아낸 다이애나비의 액자
앞에 펼쳐진 뷰가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 룸의 테라스(살짝자랑하면 우리 방이 옆방이었음)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윈스턴 처칠 총리가 묵었던 스위트룸이었는데,테라스 뷰가 정말 아름다워 모두 연신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그 중 가장 오래 많이 찍는 이들은 역시 20대 중국 친구들이었는데, 처음에는 도대체 저렇게나 많이 찍어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 인플루언서인가? 싶었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자 진짜 자기 사진 찍는 것과 달리 너무 대충 찍는 것이다!


그래서 살짝 실망할뻔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너무 잘찍어서 충격받았다. 어디 스냅 업체인 줄 알았다. 떼잉하고 봤다가 오오 하고 다시 감사를 표하려 봤을때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스냅작가처럼 찍어준 중국 친구들

이쯤되니 곧 저녁이니까 저녁식사는 어디서 할 지 고민되었다. 호텔 내에는 레스토랑이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테라스에서 먹을 수 있는 조식 먹는 곳과 같은 레스토랑이었고, 한 곳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처음에 체크인할 때부터 프렌치 레스토랑은 ‘반드시’ 예약해야 하고, ‘반드시’ 복장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번 강조했다. 사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레스토랑에 갈 지 몰랐어서 옷이 애매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여성은 샌들도 가능하고 원피스도 괜찮다고 했지만, 남자는 샌들도 불가하고 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와야 한다고 했다(묘한 남성차별인 것 같다는 느낌…). 이러다 밥도 못먹고 쫒겨나면 우리 저녁은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니, 남편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자, 돈 낸다는데 설마 쫒아내기야 하겠어? 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식당을 19시로 예약하고, 18시 즈음에 일몰이니 우리는 펠루카를 타러 갔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가다보면 보이는 펠루카 무리

사실 다들 17시 정도에 타서 마지막 일몰을 보며 호텔로 다시 들어오는 코스로 보는지라 우리가 거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에약은 따로 할 필요 없고 컨시어지에 말하고 테라스에 있는 레스토랑 옆 강가로 내려가면 된다. 아저씨는 모터보트를 타는 것이 어떻냐고 우릴 회유했지만, 펠루카를 꼭 타고 싶었던 우리는 펠루카를 외쳤고 아저씨는 결국 끄덕였다.

(왼쪽부터) 펠루카 타러 내려가는 선착장 / 저 멀리 지는 노을

펠루카는 아주 큰 돛이 달린 무동력 배로, 주로 사람들은 룩소르에서 많이 타지만 아스완에서 타면 보다 한적하게 즐길 수 있다. 우리는 룩소르에서 투어를 보고 바로 또 떠나야 했기 때문에 펠루카를 탈 시간이 오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외려 룩소르에서 타는 것보다 풍경이 더 잔잔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실루엣만 남은 펠루카 /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나

해가 지면서 우리의 펠루카가 출발했다. 저 멀리 낮은 산의 실루엣 너머로 해가 지고 그 빛이 칠흑처럼 어두워진 나일강에 마지막 햇빛을 섞어놓고 있었다.


뒤에서 끼릭끼릭 돛을 움직이시면 물길을 헤치고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는 펠루카와, 그 아래로 꿀렁꿀렁이는 살아있는 생물이 내는 듯한 물소리 건너편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남편이 이내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가 질때까지 우리는 그 고요함 속에 몸을 맡겼다.


해가 지면 그 불빛을 대신하겠다는 듯 언덕 곳곳에서 불빛들이 하나씩 켜지는데, 그 불빛들이 강에 비쳐서 정말 아름다웠다. 보통 해가 진 저녁에 배를 타면 쌀쌀한데 아스완의 펠루카 위에서 스쳐지나가는 바람에는 한줌의 악의도 없는 부드러운 바람 뿐이었다.

불빛이 검은 물결 위에 색을 그리고 있다

30분동안 마치 마법사에게 홀린 것처럼 펠루카를 타고 다시 카탈락이 보일때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저녁 식사 예약시간과 딱 맞아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남편은 린넨셔츠와 복숭아뼈까지 오는 검은 팬츠와 검은 운동화를 신었고, 나는 하얀색 반팔 원피스에 검은 샌들을 신었다.


두근두근 하며 입장하려는 순간, 아뿔싸 남자는 또 재킷도 입어야 한단다. 다행히 우리같은 손님이 많았는지 남색 재킷을 빌려주셨고, 남편은 덕분에 아주 멋진 차림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뒤에 온 중년 커플도 걸려서 그 아저씨도 재킷을 빌려입은 것은 안 비밀이다. 주로 가족 모임이나 친구들끼리 모임을 온 듯한 분위기였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들어가자는 생각을 서로 말은 안했지만 둘 다 다짐하고 있었던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재밌었다.


(왼족부터) 애피타이저 / 프렌치 램렉 / 플레이팅이 독특한..배스구이

식사의 가격은 맛을 생각했을 때 아주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한국의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가격의 반 정도 했던 것 같다. 다만 이 곳은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아마 풀코스로 주로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아 메인메뉴 두 개만 시켰더니 웨이터가 약간 당황해하며 다른 메뉴를 여러번 추천했다. 하지만 도저히 추가로 음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나는 배스 요리를, 남편은 램 구이를 시켰는데 확실히 이 곳은 램이 맛있다. 한국의 미슐랭에서 먹은 것과 비슷할 정도로 맛있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플레이팅은 다소…독특했지만, 와인도 종류가 정말 다채로웠고 이번에도 이집트 와인을 시켜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만, 룸서비스와 달리 기본적으로 가격이 있는 편이었고(당연하다), 글라스 당 거의 5만원 이상 줬던 것 같다. 그만큼 훨씬 향과 맛이 풍부했다. 가격만 보자면 당연히 이집트 현지 물가보다는 월등히 비싸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이 레스토랑이 기억에 남았던 것은 피아니스트의 연주였다. 이런 변두리에 계시면 안될 것 같은 수준의 연주였는데, 바로 앞자리에 앉은 우리가 너무 열심히 호응을 했는지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루마를 연주하시는 것이었다!


우리가 단번에 “어?! 이루마다!” 하니까 씨익 웃으시면서 재즈풍으로 편곡해서 치시는데 정말 즐거웠다. 약간 ‘이녀석들, 한국 사람들인 모양인데 이 곡은 모를 수 없을걸?’ 하는 느낌이었다. 레스토랑에 왔는데 연주회도 같이 들은 느낌이라 호사스러웠다. 맛있는 음식, 또 그와 어울리는 좋은 와인과 귀가 행복했던 연주를 뒤로 하고 객실로 올라가 잠을 아주 푹 잤다. 시시각각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운 하루였다.


그래도 내일이 되면 우리가 온 또다른 이유인 아부심벨로 떠나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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