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덕이 정의하는 SM 음악의 핵심가치
샤월(샤이니 팬덤)인 친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넌 샤이니스러움은 뭐라고 생각해?
그리고 샤이니 신곡 HARD가 엔시티스럽다는 얘기를 듣는 이유는?
사실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언어로 정의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샤이니 신곡 HARD를 처음 들은 나 역시 이곡은 엔시티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왜, 어떠한 이유로 그런 감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미뤄뒀다. 그리고 그 해답을 지금 이곳에 풀어나가보려 한다.
위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엔시티다움이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난관이다. 지금까지 엔시티 곡들을 쭉 떠올려봤다. 예상 경로를 벗어나는 멜로디라인과 악기 곡조가 두드러졌고 빠른 템포로 바뀌는 곡의 분위기 역시 엔시티 노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2020년 전후로 '난해함' 혹은 '곡의 템포 전환'이 두드러지는 아이돌 노래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 흐름의 시발점은 엔시티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 아이돌 트렌드의 스타트를 끊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거시적 측면에서 본다면 샤이니의 HARD는 분명 엔시티스럽다. 기존 샤이니의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최신 트렌드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HARD라는 곡은 엔시티와 더불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라는 노래와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부 샤이니 팬들은 HARD가 엔시티스럽다는 말은 부정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와 유사하다는 점은 격하게 동의하기도 한다. 아마 후배가수와 유사하다는 말보다는 전설인 대선배의 곡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더 듣기에 편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HARD의 코러스 비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답인가? 엔시티? 서태지와 아이들? 정답은 둘 다이다. 도입부와 벌스 부분에서는 엔시티 노래에서 많이 등장하는 불편한 멜로디라인과 악기의 곡조가 두드러지고 코러스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의 비트와 유사한 사운드를 가져간다. 그렇다면 샤이니의 HARD를 샤이니스럽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샤이니의 정체성을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풋풋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HARD라는 곡에서는 샤이니만의 풋풋함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새로운 샤이니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중심에는 샤이니 멤버 본인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샤이니의 필모와는 결이 다른 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멤버들의 역량과 멤버들의 뚜렷한 개성 그리고 넓은 스펙트럼의 컨셉 소화 능력에서부터 나왔다고 생각한다. 노래 자체는 엔시티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와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이것을 샤이니스러움으로 만든 것은 온전히 멤버들 역량이었다.
샤이니의 정체성은 풋풋함에서 온다고 위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곡들도 분명 존재한다. 애초에 이 그룹에서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일관된 특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워낙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그룹이기 때문이다. 샤이니가 15년 동안 계속 풋풋하고 청량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샤이니스러운' 노래만 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매너리즘일 것이다. 아마 대중에게 곡이 항상 비슷하다고 되려 욕을 먹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바로 뉴진스이다. 뉴진스는 난해하고 시끄러운 케이팝 트렌드를 완전히 뒤집어 이지리스닝이라는 해답을 제시한 그룹이다. 이들은 대중에게 편안한 휴식과 같은 노래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뉴진스 노래는 전반적으로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세 번의 컴백과 몇 가지 콜라보 노래만으로는 판단하기에 이를 수도 있지만 뉴진스는 다른 아이돌과는 다르게 트리플타이틀을 발매하여 컴백 횟수에 비해 많은 곡이 대중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곡들끼리 꽤나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어 다소 지겹다는 감상도 분명 존재한다. 아이돌은 트렌드의 최선단에 서서 음악산업의 흐름을 이끌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형 기획사 그중에서도 에스엠엔터테인먼트라면 더욱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 그것이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에스엠이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커다란 리스크를 항상 끼고 있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항상 여행과 게임, 음식이라는 비슷한 포맷을 들고 오는 나영석 PD의 예능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익숙한 재미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켜 주지만 혁신적이거나 신선하지는 않다. 물론 새로움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중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시도하는 업계 인재들의 실험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SM덕후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이브, JYP, YG 이런 대형 소속사의 아이돌들을 보면 각각 아티스트의 색이 확실하고 아티스트 간의 컨셉이 겹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이돌 그룹끼리 컨셉이 유사할 수도 있지만 각 그룹만의 차별점들이 항상 존재하고 대체로 그것이 대중의 눈에 직관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블랙핑크와 에스파 이 두 걸그룹을 크게 걸크러쉬 컨셉으로 묶을 수 있지만 실제 대중은 두 그룹의 컨셉이 겹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팀들과의 확실한 차별점을 만들기 위한 핵심 전략이 바로 아티스트 브랜딩이기 때문에 이토록 다양하고 구체적인 컨셉의 아이돌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바로 아티스트 간의 색이 아닌 한 아티스트가 발매하는 곡들 간의 색이다. 타 그룹들과 비교했을 때는 색이 확연히 다르지만 한 아티스트가 내는 곡들의 컨셉과 양상이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르세라핌, 뉴진스, 엔하이픈, 엔믹스, 스키즈, 블랙핑크 등의 여러 아이돌 그룹들은 노래에서 그 그룹만의 뚜렷한 색은 확실히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혁신적인 신선함은 부족한 편이다. 이것은 그룹의 색, 브랜드를 견고히 하기 위함인 것도 있다. 하지만 한편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아이돌도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 에스엠엔터테인먼트가 케이팝 산업에서 추구하고 있는 방향성이다. 태연, 엔시티, 엑소, 샤이니, 소녀시대, 레드벨벳, 에스파, 슈퍼주니어 모두 한 아티스트가 낸 곡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곡들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매 컴백마다 전례 없는 새로운 컨셉들을 들고 온다. 그렇다고 그것이 레드벨벳 혹은 엔시티스러움이 되지 않는가? 그것은 아니다. 전혀 새로운 컨셉을 들고 와도 그것이 엔시티스럽고, 레드벨벳스럽고, 에스파스럽고, 샤이니스럽다. 이들은 회사의 기획력에 아티스트 역량을 더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동시에 견고한 그룹 브랜딩을 이어나가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됐던 에스엠은 언제나 새로움(neo-)을 추구하여 대한민국의 음악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아티스트 브랜딩과 새로움에 대한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란 이만큼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에스엠은 이것을 오랫동안 해왔다. 소녀시대가 그 시작이다. 소녀시대는 겹치는 컨셉 하나 없이 타이틀곡을 꾸준히 발매해 왔지만 그럼에도 소녀시대라는 브랜드는 점점 견고해졌다. 레드벨벳, 엔시티, 에스파 모두 그룹 색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전례 없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을 선보이고 있다. 다른 소속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실험적인 자세이다. 이로써 나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태도가 스엠답다를 정의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SM 내리사랑을 이어오는 팬들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니즈 충족이 될 것이고, SM을 위해 일하는 임직원들에게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할 것이다.
SM 3.0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재, 에스엠은 라이즈라는 신인 보이그룹의 데뷔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아직은 이들이 어떠한 브랜드로, 어떠한 컨셉으로, 어떠한 음악으로 대중 앞에 설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에게도 SM 팬들이 기대하는 '스엠답다'라는 면모가 드러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