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야자 Feb 26. 2024

우울증에 걸린 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나,

당신의 맥주잔 때문이다

※주의: 이 글은 알코올중독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우울증이 아닌 다른 모든 종류의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서도 아래 설명하는 내용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립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는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생애중 우울증을 경험해 봤다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체내 세로토닌 비율이나 뇌의 구조적 문제 같은 생물학적인 접근이 아닌, 심리학적 접근으로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울증의 원인에 대하여 말할 때 대표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이론이 3가지 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 이론, 긍정적 강화물 상실 이론, 스트레스-취약성 이론인데요, 오늘은 이 세 가지 이론 중에서도 스트레스-취약성 이론(Stress-Vulnerability-Modell 혹은 Stress-Diathesis-Modell)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이 모델은 우울증 외에도 모든 정신질환의 발병을 잘 설명하고, 개인별 이력의 특이성을 떠나서 모든 사람에게 잘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타고난 취약한 부분들 (영어: Vulnerability, 독일어: Vulnerabilität)을 가지고 있고, 시간에 따라 이 취약성을 발달시켜 갑니다. 예를 들어 타고나길 내성적, 내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내향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많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울증 발병에 있어서는 외향인들보다는 내향인이 취약하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혹은 신체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이 역시 취약성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체적인 핸디캡은 광범위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천식, 아토피, 알레르기 같은 질환부터 선천적인 신체기형이나 장애까지도 포함합니다. 가족력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모나 친인척 중 우울증 환자인 가족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신경적, 유전적으로 타고나길 평균보다 우울증에 취약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혹은 우울증에 걸린 가족과의 부정적인 상호작용 영향으로 우울증 발병에 취약해지는 시나리오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취약성이 곧바로 우울증의 발병을 야기한다거나 추후의 발병을 예고하는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수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어도 생애 동안 단 한 번의 우울삽화를 경험하지 않는 케이스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취약성이 어떻게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냐고요?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서 제가 그린 도식을 첨부합니다.

김씨와 이씨의 스트레스 레벨. 둘다 같은 레벨의 스트레스 역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서로 다른 취약성 레벨(회색영역)을 가지고 있다. 분홍 영역은 경험하는 스트레스를 의미.


여기 김 씨와 이 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 역치(그래프에서 녹색 선)를 가지고 있고, '실직'이라는 스트레스 사건(그래프에서 분홍색 영역)을 경험했다고 가정합시다. 둘 모두 실직을 같은 무게의 스트레스로 경험한다고 해도 김 씨는 우울증 증상(녹색 선을 넘어 튀어나온 부분)을 경험하게 되고 이 씨는 괜찮다고 여깁니다. 김 씨와 이 씨는 서로 다른 '취약성 레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취약성'이 결과적으로는 김 씨의 스트레스 역치를 낮추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내용인데 이번에는 맥주잔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같은 크기의 맥주잔 두 개가 있다고 가정할 때, 이 씨, 김 씨 모두 맥주잔에 소량의 맥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리 따라져 있는 소량의 맥주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취약성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기시지 않겠지만 맥주잔 입니다!
더 많은 맥주를 따름으로 인해 넘쳐나는 김씨의 맥주잔. 넘쳐나는 영역이 증상을 의미.


이 맥주잔에 똑같이 많은 양의 맥주를 따랐을 때, 이 씨의 맥주잔은 아직 꽉 차지 않았지만, 김 씨의 맥주잔은 넘쳐서 거품이 납니다. 실직으로 인해 얻는 스트레스를 '후천적 스트레스' 즉 나중에 따라진 맥주라고 이해할 수 있겠고, 넘쳐서 거품이 나는 상태를 후천적 스트레스경험으로 인하여 어떠한 '증상'을 경험하는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해 고백을 하면 가끔가다 이렇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야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세상 사람들 다 힘들다. 왜 너만 유난이니?"


어째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의 맥주잔엔 처음부터 적은 양의 맥주가 들어있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끔가다 많은 양의 맥주가 그들 안으로 울컥울컥 쏟아 들어져 오더라도 그들의 맥주잔 밖으로 거품이 흘러넘치는 상황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변에 당신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부턴 이렇게 말해주세요.


"내 안엔 너보다 맥주가 많이 차있어서 그래"


어쩌겠습니까, 타고나길 남들보다 많은 맥주를 받았는데요.


다음 글에서는 내 안에 넘쳐나는 이 맥주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중꺾마 그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