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이올린을 처음 접한 건 고1 때였다. 그 당시엔 드물었던 남녀공학에 입학했으니 학교는 여학생과 뒤섞이는 어리둥절한 분위기였다. 어느 날 선배들이 느닷없이 교실로 들어와 뜬금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다. 교내 동아리인 현악부가 후배 모집을 위한 홍보 차원에서 퍼포먼스를 하였던 것이다. 열 마디, 백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한 번의 울림으로 내 가슴도 울렸다. 바이올린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고 수업에 밀려 매주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활동 시간에 우리는 만났다. 특별활동은 그야말로 특별한 시간이었다. 여학생들도 있고 선배들도 있고 선생님만 없었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크기가 제각각인 현악기들의 클래식한 풍경은 입시로 조여드는 교실과는 딴 세상이었다. 특히 현악기에서 풍기는 냄새가 좋았다. 그것은 나무와 바니시 그리고 송진가루의 어울림에서 오는 어렴풋한 예술의 향기랄까. 취미도 예술의 끝자락이라면 말이다
학교 축제 때 가슴 뿌듯하게도 당시 대학 건물 중 동양 최대라는 세종대 대양홀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였다. 객원도 없이 1, 2학년들이 모여 전공을 꿈꾸는 3학년 선배 한 사람의 지도하에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모차르트 소품을 연주하였던 것 같다. 1, 2학년이라 함은 악기를 배운지 1, 2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소품이라 하여도 빠른 템포도 있고 리듬도 단조롭지만은 않았을 곡을 해낸 것이다. 최신식 연주홀이라 스포트라이트가 내리쬐는 무대에, 동경 가는 것보다 저렴해서 매년 우리나라로 수학여행 오는 일본 규슈의 학생들로 빼곡한 객석에, 긴장해서 각자의 악기만 꽉 쥐고 있는 단원들까지... 연극 아니 연주의 3요소(?)가 완비된 상황에서 어쨌든 준비한 곡을 성황리에 끝마쳤다. 조명 때문에 객석이 보이지 않아 박수소리가 더 크게 들렸을까. 우리는 '성황리'라는 말로 박수소리를 과장했다. 옆에 누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될 줄은, 동고동락 심지어 전우애라는 확대된 의미가 떠오르면서 알게 되었다. 무척 떨렸던 만큼 성취감도 컸다. 그동안 연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었나. 그랬기에 함께한 단원들이 더 도타와 보였다. 독주보다 합주가 주는 더한 가치였다. 교실 밖에서 한 뼘 성장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바이올린은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설레게 하였다.
그런 바이올린과 늘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시 강박으로 멀리하게 되었고 공부에 찌드느라 재수까지 2년의 세월은 빨리도 지나갔다. 대학에 들어와 그동안 속박의 반대급부로 자유와 때론 방종을 만끽하느라 바이올린 생각은 하지도 못 했다. 바이올린으로 접했던 감성의 세계는 입시해방이 손짓한 감각의 세상에 못 미치는듯했고 젊음을 발산하기엔 너무 점잖았다. 그야말로 젊지 않았다. 하지만 그땐 왜 몰랐을까. 학업 외에도 시간의 투자는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그때는 여가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만 알았지 '투자'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오히려 소비에 근거한 휴식과 오락만이 학업의 충실함을 받쳐준다고 생각했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고...' 학업 말고는 생산적이라 여겨질 게 없는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웰빙이나 힐링이 무게감을 가졌다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또 하나의 세계가 늘 아쉬웠다. 현실은 너무 버겁다. 쉬어갈 곳이 필요하다. 이지체어(easy-chair)가 휴식을 줄까, 그 앞의 TV가 기쁨을 줄까. 그렇다한들 마음까지 위안이 될까. 현악부 때 바이올린이 그 역할을 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이제껏 살아온 긴 세월에 비하면 고등학교 시절은 잠시 잠깐이었지만 그 짧았던 시간의 향수(鄕愁)는 향기 나는 향수가 되어 내 주변을 맴돌았던 것이다.
드디어 바이올린을 샀다. 현악부 때 샀던 공장에서 찍어낸 새것이 아닌, 중고를 낙원상가에서 구입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중고품이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유일하게 중고가 더 값나가는 게 악기일 것이다. 이전 사용자의 땀방울까지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일까. 초심자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전해지는 듯하다. 집에 와서 케이스를 열어봤다. 역시 악기에서 풍기는 냄새가 좋았다. 예술의 향기... 아예 코를 갖다 댔다. 향기가 몸속에 스며든다. 놓쳤던 예술의 끝자락을 다시 잡은 느낌이다.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하면서 연주 동영상도 보았다. 혼신의 힘으로 바이올린과 하나 되어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내면을 분출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 무게감은 저 깊은 무의식까지 점령했을지 모른다. 더 이상 쌓일 공간이 없을 때 표현의 욕구를 느끼며 고뇌했을 것이다. 연주자에겐 그 돌파구가 바이올린이고 그 감동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우리도 쌓이는 것이 있을 터인데, 말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어 답답할 뿐이다. 일반인의 평범함이란... 우리에게도 직설의 언어가 아닌 제2의 표현 방법이 아쉽다. 그래서 어쭙잖게나마 악기나 그림 또는 글이라도 끼적거리게 되는 걸까. 삭막해져만 가는 현대인에게 자신만의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바이올린이라는 제2의 언어가 유창해질 때까지 열심히 하기로 다짐한다. 내 인생을 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