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는 주말이 분리수거 날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모아 두었던 재활용 쓰레기를 각각의 수거함에 분리한다. 1층 엘리베이터에서는 종이박스나 커다란 비닐백을 든 사람들이 들락거려 분주하다. 당연히 집에서 입던 채로 나온 그들은 편한 옷차림이지만 분리수거에 걸맞아 보인다. 운동할 땐 운동복, 일할 땐 편하게, 장례식장에서는 검은 옷을 입어야 하듯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분위기라는 것에 호응하는 습성이 있나 보다. 아침 출근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양복쟁이를 보면 안쓰럽다. 나 역시 슬리퍼 신고 목 늘어난 티셔츠에 츄리닝 차림으로 비슷한 모습의 그들과 섞인다.
일주일 생존을 위해 알맹이는 쏙 빼먹고 껍데기를 팽하듯 여기저기로 던지는 광경에서 인간의 이기가 엿보인다. 생수를 담은 페트병은 찌그러져 플라스틱 무덤에 쌓이고 참치를 보관한 캔은 국물까지 탈탈 털린 채 땡그랑 소리를 마지막으로 커다란 마대자루 속으로 들어간다. 마트 진열대 위의 그 보기 좋았던 때깔은 어디로 갔나. 여기저기 찢기고 구겨져 영광의 상처뿐이다. 리사이클이니까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가책은 없다. 그렇게 아파트라는 유기체는 주말마다 배설한다. 디톡스를 해야 환경이 깨끗해지니까. 경계 밖으로 내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작년 초였던가 중국의 수입금지로 나라 밖 경계를 넘지 못하게 된 재활용 쓰레기는 변비가 되어 몸살을 앓았었다.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환경부 장관인 주인공은 말한다. "오염된 페트병은 더 이상 재활용품이 아닙니다. 일반 쓰레기죠, 폐기할 때 세금이 들어가는..."
뭐라?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상식에 쐐기를 박았다. 요즘 나는 우유팩은 물론이고 음식물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봉지를 물로 세척해서 버린다. 나부터 솔선수범이다. ‘차카게 살자’를 팔뚝이 아닌 실천에 옮기고 있다. 요즘은 대형마트의 배송 시스템이 진화하여 ‘2시간 내 배송’까지 가능하단다. 긴가민가하면서 주문 란에 ‘클릭’ 했더니 ‘띵동~’ 벨이 울렸다, 40분 만에... 언빌리버블!! 내가 직접 마트 가서 사가지고 오는 것보다도 빨랐다. 그야말로 유통혁명, 배달의 민족은 뭉쳐야 사나보다. 천만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주문한 상품을 다 정리하고 나니 또 한 번 놀랐다. 엄청난 양의 포장용 쓰레기. 이런, 배보다 배꼽이네.
말하자면 파프리카 두 개가 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작은 비닐봉지에 담겨야 하고 그런 작은 상품들을 모아 담는 큰 비닐 보따리(?)에 싸여 배달되었다. 자루만 한 비닐봉지의 네 아귀가 묶여서 왔단 얘기다. 아이스크림 녹지 말라고 아이스팩이 두 개나 딸려왔다. 고객의 상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까지 담아 포장됐나본데 풀어보니 고객의 부담이었다. 결국 총 오만 원어치의 주문 물량이 세 묶음의 보따리에 나누어져 실려왔다. 각 묶음의 기준은 비닐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와 들기 편한 부피였을 것이다. 비닐을 물 쓰듯 썼다. 한꺼번에 담을 수도 있었는데, 배달시킨 내가 죄스럽다.
비닐봉지가 없었을 적엔 어떻게 살았나. 한낱 비닐봉지가 그러할진대 인터넷이 없었으면, 휴대폰이 없었으면, 네비가 없었으면... 없다가 있게 된 세월을 살다 보니 아날로그였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물질문명의 세계에선 '앞으로 전진'만 있을 뿐이다. 뒷걸음질하면 바로 낭떠러지, 이게 우리의 숙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에 비닐봉지의 전성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썩는 생분해 비닐이 나왔다고 하는데 가격이나 강도 면에서 아직은 시장성이 없단다. 언젠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완벽한 에코비닐이 나오긴 할 것이다.
주말 분리수거를 하면서 느꼈던 단상을 적으려고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옆길로 새 버렸다. 글을 쓰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역시 환경문제는 감상이나 여유를 부릴 주제가 못되나 보다. 그만큼 절실하고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배송으로 인해 쌓였던 비닐봉지들을 보았을 때 겁이 났다. 이래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