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침은 적막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온 천지를 점령하여 소음까지 먹어 버렸다든가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온 세상을 덮어버렸든가, 아님 내가 아직 잠이 덜 깨어 달팽이관이 기지개 펴기 전일 수도.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하고 아침을 차리기까지는 새로운 하루지만 늘 똑같은 방식으로 막을 올리듯 시작한다. 이때 누군가가 종이라도 쳐주었으면, 완벽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 될 터인데.
타파웨어... 흔히들 '타파통'이라 불리는 반찬통은 완벽하게 국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로, 80년대부터인가 냉장고에 레고 블록 쌓 듯 쟁여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락앤락 등으로 진화되어 여전히 반찬용기로 사랑을 받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겐 이 대목에서 강력한 유혹을 받는다. 나 또한 하기 싫은 설거지를 줄이고자 타파통에서 직접 먹고 다시 냉장고에 보관하고 싶었다. 얼마나 간편하고 손쉬운가. 나 혼자 먹는 반찬, 나만 눈감아주면 덜어 먹다 남을 경우 버리게 되는 반찬 없이 먹을 만치만 먹을 수 있고 남은 것은 바로 냉장고로 들어가 레고 블록이 되는데. 하지만 그 즉시 냉장고는 젓가락이 옮겨놓은 세균의 번식 터가 될 것임은...
락앤락이 크거나 작거나 동그라미, 네모를 식탁 위에 그려놔도 게다가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탈바꿈하여 어엿한 그릇이라 뽐내어도 그 밀폐력을 위한 얄팍하며 깊게 파일 수밖에 없는 형상은 음식물 보관이라는 태생적 본능을 상기시키는 바… 맛깔스레 담아내는 오첩반상, 칠첩반상의 일원이 되기는 힘들 듯하다.
비색(翡色)의 두툼하면서 동그란 자기그릇은 그 옛날 청자의 기풍이 엿보인다. 잠시나마 천박한 플라스틱 용기와 나란히 같은 식탁 위에 놓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돋보였을 게다. 푸르스름한 바탕에 놓인 색색의 음식들은 유리질의 자기에 반사되어 빛나는 듯 미각을 자극한다. 그 음식들을 향한 젓가락의 돌진은 따각따각 경쾌한 소리로 그릇에 고(告)하며 한 줌씩 실어 나른다. 한입씩 숟가락을 들고 내릴 때 옆 그릇과의 부딪힘은 쨍그랑 공명을 울리며 아침을 깨운다. 이제야 작은 종소리들이 나를 깨운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네 도자기는 그 소리마저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