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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Apr 25. 2020

살짝 스쳐 지나간 그대 이름은...

카페에서 친구랑 이야기하는데 간헐적으로 목이 욱신거림을 느꼈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예민한 시기여서 그런지 바로 불안감이 밀려왔다. 욱신거림은 점차 잦아지면서 따끔거리고 미세한 근육통까지 동반했다. 코로나가 나를 지목한 것이다. 초면인데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이 분'이 연일 떠들어대는 미디어의 중심에 섰기 때문일 게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공중화장실에도 쐐기 박은 공 모양의 특징과 증상, 예방법을 알리는 문구가 파출소 게시판의 수배범처럼 붙어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 fusion_medical_animation, 출처 Unsplash


일단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고전의 가르침에 따라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지침대로, 집에 갈 때는 마스크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지하철 구석에 없는 듯 앉아 갔다. 갑자기 예방이 아닌 자가격리로 입장이 바뀌었단 생각에 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한데 입 한번 확 불면 다 나가떨어질 것 같은 괴력의 용가리가 된 기분이었다. 화염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 입김을 장착한... 우리 동병상련을 함께 느껴나 볼까, 후우~~. 하지만 나는야 괴수 아닌 휴먼, 입안에 바이러스를 한가득 머금은 채 무사히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의사인 매형한테 전화로 증상을 말했더니 코로나일 확률이 크다며 2주 정도 자가격리를 권고했다. 혼자 살기에 전염시킬 가족도 없어 오히려 환자들끼리 모여있는 입원실보다 집안의 환경이 나을 거라 했다. 자발적 격리지만 타인을 위해 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기는 난생처음이다.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것에 대한 심리적 차이는 의외로 컸다. 휴대폰과 카톡이 외부와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란 생각에 비상시를 대비한 생존의 무게감을 느꼈으며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니 시간의 가벼움도 느꼈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소소한 일이 증폭되는 예민함은 택배를 받으면서 겪게 되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전날 누나가 주문해 준 이마트 택배물을 기사가 그냥 현관문 앞에 내려놓고선 초인종조차 눌러주지 않고 내뺀 것이다. 내가 자가격리자란 걸 알았나. 버튼에 바이러스라도 묻었을까 봐 누르지도 않고 도망친 건가. 복도식이라 도난의 우려도 있는데... 때가 때인 만큼 택배 방식을 비대면으로 전환한 것까진 이해되지만 벨도 누르지 않은 건 너무했다 싶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세상과의 거리가 한층 더 멀어진 것 같은 소외감에 그냥 뒤쫓아가서 진짜 용가리가 돼볼까? 하며 욱하는 찰나, 카톡이 울렸다. ‘고객님,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니 용가리를 주저 앉히고 생수며 커다란 봉지 안의 구호품들을 들여놨다. 덕분에 냉장고가 꽉 찼고 마음까지 든든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정남향에 꼭대기 층이라 맑은 날이면 온종일 햇볕뿐이다. 아침나절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받으며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자가격리가 분위기를 망쳐놓았달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앉고 있는 기분이다. 시작은 인후통이지만 시시각각 진행되는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 등의 파국이 몰려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가득한 햇살과 그윽한 커피향으로도 달래지 못했다.


증상에 예민해져서인지 숨소리나 손끝의 감각이 과장되어 느껴진다. 평상시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비교불가, 방금 어깨가 뻐근한  근육통인지 또는 재채기한  기침인지 구분이 안된다. 으슬으슬 추운  같아  먹고 체온을 재니 37.5, 발열의 기준치에 진입한  보면   오는구나 우려했지만  시간  다시 체온을 재고 나서야 뜨거운 육개장 국물 때문이란  알았다. 사람의 체온은 하루 중에도 오르락내리락한단다. 그래, 지금 필요한  ? 마음의 평정...  안의 면역세포들이 코로나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이때 주인인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그들을 응원해야되지 읺을까. 평소엔 즐기지 않았던 고기든 생선이든, 맛은 뒤로   일단 뱃속을 가득 채웠다.


몸속 스테로이드 수치가 떨어지는 밤에는 몸살기를 느끼다가도 상쾌한 아침이면 다시 거뜬함으로 간밤의 승전보를 확인하고, 낮엔 목이 따끔거리는 통중으로 다시 전세를 뒤집으려 해도 따스한 차를 마시며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최면으로 면역력에 힘을 더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발열의 파고를 넘고 불안의 심리를 다스려 2주를 무사히 보냈다. 무증상이 아니어서 평소 나의 건강함에 살짝 자존심은 긁혔지만 자가격리만으로도 코로나를 이겨냈다는 게 어딘가. 다행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렵다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또 다른 차원이다. 인간이 이상을 추구하면서 꿈을 이룬다는 것은 오로지 정신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시시각각 여기저기에 자신을 위협하는 질병과 사고들이 뛰어넘어야 하는 허들처럼 다가온다는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주변도 살피며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야말로 드라마요 기적이다. 이번엔 뛰어넘으면서 허들을 살짝 건드렸지만 앞으로 몇 개나 더 장애물이 놓여 있을지. 그런 것들을 무사히 넘으며 강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나를 스쳐 지나간 것은 진짜 코로나였을까. 검사를 안 해봐서 확신은 못해도 그동안 유일한 접촉은 온오프라인의 마트와 택배뿐이었으니 ‘확찐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축 음성, 축 자가격리’ - 입국자 검역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간 가족을 격려하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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