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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Mar 31. 2020

살생의 추억

어떤 게 실한 놈인지는 몸집과 깃털의 때깔을 보고 고르는 것 같았다. 닭들이 좌우로 이동은 커녕 서있을 수도 없이 빼곡히 갇힌 닭장 어디쯤에 엄마가 손짓을 하면 주인은 눈짓으로 대충 한 놈을 골라 닭장 문들 열고 저승사자의 손을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어 모가지든 날개죽지든 잡히는 대로 꺼낸다. 그 즉시 다른 한 손에 쥔 시퍼런 단도는 어느새 닭의 명치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혔고 그것이 거의 꼬챙이 같은 양날검이란 건 빼내고 나서야 알았다.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이었기에 칼에는 피 한 방울 묻어나지 않았다.


이때 절명되지 않았어도 갓 희생물은 곧바로 물이 펄펄 끓는 드럼통 속으로 빠져 들어야 했다. 단 1분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영겁이겠다 싶을 정도로 지옥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음이 옆에 있던 어린 나에게 쿵쾅거리는 소리로 전해졌다. 오직 깃털이 짤 빠지게 하기 위한 조치이기에 숨이 붙어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드럼통에서 건졌을 때 희미한 미동을 본 것 같기도 했으니까. 그마저 어른들에겐 싱싱한 놈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 싱싱함은 털이 빠져 드러난 뽀얀 닭살로 증명되었고 처참한 도살은 몇 푼의 돈이 건네짐으로써 시장에서나 있는 흔한 거래 행위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저녁 닭볶음탕의 감칠맛으로 낮의 기억을 얼버무렸을 게다.


‘개 패듯’이란 말이 있다. 개는 몽둥이로 잘근잘근 때려서 잡아야 하고 흑염소는 칼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한 뒤 물에 담가 노린내를 빼야 하고 닭은 모가지를 비틀어 질식사시켜 잡았다. 이래야 ‘육질’이 부드러워진단다. 그래서 개는 ‘깨갱’소리가 묻힐 수 있는 산에 올라가 잡았고 염소는 풍덩 들어갈 만한 커다란 고무 대야가 필요했으며 닭은 기다란 모가지를 꽈배기처럼 비틀 수 있는 팔심이 요구되었다. 동물이기 전에 짐승이었고 애완용은 언감생심 식용으로만 보였던 시절, 특히 육고기가 귀했던 그 옛날 우리네 전통 도살 방식이었다. 지금은 고통을 줄이고자 전기 충격으로 단숨에 끝낸다 하지만 사실 산업화된 공장식 대량도살에서 시간 단축이란 이득도 계산되어 있다. 옛날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큰이모가 전통방식으로 닭을 잡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지...


내 기억엔 시장에서 닭을 잡는 모습은 혐오감을 준다 하여 사라지고 미리 죽여 손질한 생닭을 팔기 시작한 건 88올림픽 즈음인 것 같다. 죽은 걸 팔다니, 언제 어떻게 죽은 건지도 모르고, 혹시 병든 닭은 아니었는지... 처음에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워했지만 점차 위생 포장에 냉장유통까지 되니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골목 저 골목 삼삼오오 까만 염소들을 몰아가며 원하는 집, 마당에서 도살하여 판매했던 방식도 '○○건강원'이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온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거치면서 날[生] 것과 먹거리에 대한 경계를 문명화했다. 이 와중에 팔자를 고친 것은 개가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되었다. 일단 동물법이란 보호 아래 애완을 넘어 ‘반려’의 경지에 올랐다.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가 일방이 아닌 쌍방이 된 것이다.


어릴 적 새총으로 참새를 잡아 구이를 해먹고 개구리며 메뚜기의 뒷다리를 짚불에 구워 먹던 기억은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되었다. 이제는 들짐승이나 날짐승을 더 이상 먹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감상한다. 당장의 배부름보다는 정서적 충만을 택한 것이다. 인간의 먹거리가 자연의 순환고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문명의 출발을 의미한다. 수렵채집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통제하에 사육과 경작으로 생산을 한다는 것은 또한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인간과 자연과의 타협을 거스른 탓이다. 그들만의 생태계를 침범한 죗값을 단단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태곳적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해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살생했던 까마득한 추억이 유전자에 각인되서일까. 인류가 문명을 이루며 자연계에서 떨어져 나온 이상, 미련을 가져서는 안되는데 대중적 식재료를 놔두고 중국인들은 왜 굳이 박쥐를 먹고 천산갑을 먹을까. 유튜브에서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살색의 갓난 쥐도 산 채로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을 보았다. 딱 프랑크 소시지만 했다. 그래봤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단백질이나 지방일 텐데... 맛이 특별나서 먹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드러낼 뿐이다. 맛은 창의력으로 개발해야지 자연에서 찾아다닌다면 결국 멸종이라는 위기를 맞는다. 바다소나 도도새, 버펄로, 향유고래 등을 뒤따를 운명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통째로 요리된 박쥐
천산갑... 단단한 철갑으로 먹기도 힘들겠다


무분별한 먹거리가 입으로 들어가 코로나로 둔갑하여 다시 입으로 나오니 마스크를 안 할 수가 없다. 미세먼지 탓에 외출 시 마스크를 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운데 이젠 코로나 때문에 실내공간에서도 마스크를  연장해야 하니 중국인들 때문에 우리는 숨 한번 제대로 쉴 수가 없게 되었다. 미세먼지 날리는 편서풍을 되돌릴 수도 없고 일단 성질난 코로나를 달랠 수도 없으니 스스로 잠잠해질 때까지 마스크 줄이나 서야 하나. 베이징 올림픽을 치른 지 올해로 12년이나 지났다, 언제 철들래?


중국인들아~ 이것저것 먹지 말고 가려서 좀 먹어라. 손도 좀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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