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 때 나 한번 볼만한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계속 울려대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보고 얘가 웬일이지? 하며 평소보다 한 템포 느리게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그래, 웬일이냐?
웬일이긴... 네가 먼저 전화했잖아
대.략.난.감.
나도 모르게 핸드폰이 무작위로 발신한 것이다. 핸드폰을 바지에 넣고 다녀서인지 가끔 손가락이 아닌 허벅지의 터치(?)로 인해 센서티브 하게 폰이 작동한 게다. 아님 가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일 수도. 그래도 친구인 경우는 오래간만에 안부나 묻고 상투적이나마 다음에 한번 보자는 말로 수습할 수 있다. 하지만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도 있다. 한두 번 만나 어쩌다 전화번호를 입력한 경우도 아니고 언제 연락을 하더라도 반갑게 통화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모호한 관계는 난감하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목소리에서부터 뜨악함이 묻어난다. 별 교류 없는 친척이라든지 이제는 다니지 않는 교회 목사님이라든지 한때 밤새같이 일했던 사무실의 동료라든지 계약이 끝난 세입자라든지 아니면 헤어지고 나서 미처 번호를 지우지 못한 옛 애인이라든지.
순간의 터치로 어김없이 연결되는 첨단이 이럴 땐 야속하다. 관계의 잔재가 디지털에 얼룩져 있다. 그것은 문명의 그늘이며 대략난감이라는 부스럼을 만든다. 아날로그 시대였을 때는 안 보면 그냥 멀어지곤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관계도 자연스레 흘러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약속 장소나 시간의 착오로 길이 어긋나면 속수무책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다시 전화로 통화해 다음날로 기약하면 되었다. 서로 시간이 안 맞으면 차일피일 미루다 멀어지기도 하고... 어떤 결과든 인연 탓으로 돌리며 보이지 않는 손에 기댔다.
오늘날 첨단은 어긋남을 용납하지 않는다. 신속정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미덕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착오는 조작의 실수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기계처럼 인간에게도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현실인 만큼 잘못 걸었어, 미안해를 기계적으로나마 변명하게 된다. 인간이 기계를 닮아야 하는 세상이다. AI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영화에서뿐인가. 살면서 인간적인 범위가 협소해짐을 느낀다. 디지털을 택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첨단이 인간을 더욱 빈틈없고 쉴 틈 없는 세상으로 내몰고 있다.
따스했던 봄날, 화단에 핀 꽃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는 젊은 엄마의 여유로움에 나도 눈길이 갔다. 배낭을 멘 채 쌍둥이 유모차를 미느라 눈에 밟히는 건 육아뿐일 텐데... 갑자기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뭉게뭉게, 하늘도 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SD, HD 더 나아가 울트라 HD로 해상도의 숫자를 높인 끝에 실사보다 더 선명하다 할지라도 사람의 눈이 카메라의 눈보다 못할까. AI가 닮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일 텐데. 선명함은 숫자일 뿐 자연스러움은 또 다른 문제니까.
인간은 기계의 정확성을, AI는 인간의 감성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가...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