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장장 54일간의 유례없는 긴 장마가 끝났다. 오랜만에 강렬한 햇빛이 짙게 깔렸던 구름층을 얼음 깨듯 쪼개고 그 틈새로 파란 하늘을 내비쳤다. 눅눅해진 빨래도 말리고 비타민 디도 만들어 사람들 마음에 우울감도 몰아내고. 아 맞다, 이삭이 팬 벼들을 누렇게 익게도 하고... 뒤늦게 나온 햇살은 밀린 숙제하듯 바쁠 테다. 노아의 방주가 맞이한 햇살도 이럴까. 한여름 땡볕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덕분에 오늘 밤 열대야는 확실한 예약으로 ‘노쇼’는 아니겠지만 그래서 잠은 다 잤겠지만 낮을 위해 밤은 포기해야겠지. 당분간 낮의 회복이 필요하다.
8월 19일
역시나 간밤의 열대야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밤새 잠을 설쳐댔다. 요 며칠 열대야가 계속될 거라는 예보가 들린다. 열대야에 바통을 이어받은 아침 공기는 식을 줄도 모르고 떠오르는 태양의 응원하에 오늘도 뜨겁게 달아오를 기세다. 그래도 나는 보았다. 뒤늦게 여름의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우려 하지만 힘겨워한다는 것을, 이미 기울어진 태양의 고도로 햇빛이 베란다에 한 발짝 더 들어와 쉬려하고 있음을. 운동 후 샤워하는데 온전한 찬물이 부담스러워졌다.
8월 20일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렸다. 부는 바람도 없고 희부연한 구름으로 뒤덮여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문을 닫기엔 뭐 하고, 그래서 목이 칼칼한 건가. 그럼 다행이다,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있으니. 낮에는 여전히 푹푹 찌는 더위지만 옅은 구름층이 뚜껑이 되어 가마솥더위로 논에 벼들을 익게 할 거면 참을만하다. 농부도 아닌데 농사를 걱정하는 건 소비자로서 최소한의 양심? 예의? 인사성? 적당한 어휘로 딱 집을 수는 없으나 흉년으로 쌀값이 폭등할지도 모른다는 얍삽한 걱정은 살짝 감추고 싶다.
내일도
덥겠지. 기나긴 장마로 무더위에 고생하지 않고 여름을 그냥 보낸 것 같아 좀 아쉽기는 하다. 미운정도 정이라고 자동차 철판에다 계란 프라이를 해봤다는 94년 여름, 무려 40도가 넘는 살인적 더위를 각인시켰던 18년도 여름... 이들에 대한 기억, 아니 공포가 여전히 뚜렷해도 그냥 지나가려는 올해 그의 뒷모습을 보니 붙잡고 싶다, 잠시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