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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Aug 18. 2020

살과의 전쟁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십여 년이 지났다. 북한에서는 ‘살깎기’라고 하는데 다이어트 초기에는 그보다 더한,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생존본능이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유보할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건다. 그날이 오면 마음껏 먹으리라. 그저 하루하루 ‘절식 아닌 감식’의 자세와 언젠가 목표 체중에 도달하는 날이 오겠지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다. 여전히 다이어트는 진행 중이다.


살과의 전쟁은 승리하기만 하면 건강과 미용이라는 핵폭탄급 수혜가 보장되는 터라 요즘 너도나도 다이어트에 뛰어들고 있다. 누구는 무조건 ‘돌격 앞으로’ 전진했다가 갑자기 요요현상을 맞아 도리어 후퇴한 상황이 되고 누구는 총칼이 아닌 약으로 쉽게 정복하려다 부작용으로 몸 져 누운 상태가 된다. 어떤 싸움이든 나름의 손자병법이 있는 법, 그것도 자신에게 최적화된 싸움의 기술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이참에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나의 십여 년 역사의 다이어트를 정리해본다.


1. 발단


사십 대 초에 생애 처음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병원에서 받았다. 일단 가운을 입고 키와 몸무게는 물론 체지방검사와 혈액, 소변검사 그리고 위내시경에 치과검진까지 단계별로 착착 진행되었다. 검진받는 한 시간여 동안 나는 컨베이어벨트위의 공산품처럼 하나의 무심한 객체가 되어 여기저기 돌려졌다. 그러나 검진 결과는 컨베이어벨트 끝의 완성품이 아닌 불량품으로 판정 났다. 구체적 수치까지 대동한 경고 문구는 빨간색으로 그 위세를 떨쳤으며 당장에 무슨 조치라도 취하지 않으면 경을 칠 것만 같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동안 뭐 했니?” 당뇨전단계, 고지혈증 주의요망, 과체중... 이런 말들은 내 사전엔 없는 걸로 자신해 오던 차였기에 충격이 컸다. 이 모든 원인은 딱 하나, 문란한 식생활이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2. 전개


그렇게 나의 다이어트는 충격요법으로 시작되었다. 충격받은 만큼 비장했으며 빨래판 근육처럼 보이기 위함이 아닌 질병으로부터 살기 남기 위한 생계형이었기에 각오도 대단했다. 다이어트 아니면 죽음을 달라?! 어쨌든 출발은 좋았다. 아침, 점심은 평소대로 먹다가 저녁을 선식으로 바꿨는데 밤에 허기가 져서 힘들었다. 더 힘든 건 배고파서 뭔가 먹고자 하는 유혹을 떨치는 거였다. 손도 떨리고 잠도 안 왔다. 나중에는 뭐 이렇게까지 고생할 필요가 있나 하는 존재론적 회의감으로 스스로를 유혹했지만 곧바로 나의 의지가 이렇게밖에 안 되나 하는 회의론적 존재감에?... 배가 고파 정신없다, 대충 넘어가자. 여하튼 내 안에 상충되는 두 자아가 치열한 대리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래도 무사히 유혹의 밤을 넘기고 가벼운 아침을 맞이했을 때의 그  뿌듯함은  또 하루의 전쟁을 치를 밑천이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가졌던 각오와 결기는 음식량을 줄이는 만큼 깎여나갔다. 헝그리 정신도 다이어트할 땐 소용이 없는 건가. 체중도 처음 시작할 때처럼 눈에 띄게 빠지지도 않았다. 정체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바로 포기할 정도로 각오와 결기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살이 빠지기 시작한 몸에 근육을 '장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운동을 결심했고 당시 내가 살았던 오피스텔의 지하 헬스장에 등록했다. 운동 초기라 효과는 바로 났다. 어깨는 넓어지고 팔뚝은 굵어져 잘 때 옆으로 누우면 베개가 낮은 듯했다. 근육이 생기는 재미로 또다시 다이어트에 가속이 붙었고 저녁때 허기진 배는 대신 몸이 가벼워진다는  뿌듯함으로 채워졌다. 이 나이에 몸짱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니 한 살씩 젊어진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후로 몇 년이 지났다. 드디어 체중이 74kg에서 64kg로 줄었다. BMI 지수로 보나 비주얼로 보나 그리고 느낌으로 보나 최적의 드림체중이 되었다. 줄어든 몸무게로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근육이 철갑처럼 장착되어 로보캅 느낌도 났었던가. 처지는 살에 비해 근육은 단단히 달라붙어 착용감이 좋았다.


3. 위기


탈환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체중 또한 그랬다. 64의 숫자는 과자, 아이스크림, 빵에 의해 번번이 위태로웠다. 특히 야밤에 배가 출출하면 목표 체중에 도달했다는 성취감이 경계심을 풀게 하여… 열심히 살 뺀 당신, 먹어라~ 로 당시 유행했던 광고카피가 왜곡되어 귓전에 울렸다. 그래도 버텼지만 결국 6개월간의 뉴질랜드 여행에서 무너졌다. 그 나라의 새로운 음식이 맛있는 커피와 함께 유혹하는 데에는 장사가 없었다. 멋진 경치만 눈에 담으면 반쪽자리, 맛난 음식도 입에 담아야 온전한 여행일 것 같았다. 한번 뺀 살, 두번은 못 빼리. 일단 먹고 빼자~ 에 손을 들어줬고 귀국한 후 체중계는 무표정하게 7년 전의 시간으로 돌려놨다.


4. 절정


다시 심기일전, 초심으로 돌아가 재기했다. 그래도 걸어봤던 길이라 음식과 운동에 다이어트의 이념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여기에도 학습의 효과는 발휘되었다. 이전보단 빠르게 체중은 회복되었고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무릎에 물이 차는 변고로 운동은커녕 움직이지도 못하고 약 때문에 삼시세끼를 먹어야 하고 다시 체중은 늘고... 마치 본향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 아브라함처럼 나의 몸무게는 그때그때의 우여곡절로 숫자의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했다. 숫자가 내려가면 방심하고 숫자가 올라가면 각성하고... 이렇게 끝없는 순례가 진행되고 있지만 점차로 다이어트가 몸에 배어 지금은 숫자가 안정권에 진입하고 있다.


5. 결말


결말은 없다. 아직 진행 중이니까. 단 결론은 내려졌다. Diet must go on!! 이미 우리 몸은 한창때의 나이가 지나면 기초대사량의 감소로 식사량도 이에 맞춰 줄여야만 하는 숙명에 놓인다. 다이어트에는 끝이 없다. 드림체중에 도달하면 그걸 ‘유지’해야 하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기에 누구나 하는 다이어트, 아무나 성공하지는 못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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