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이십대로 착각할 때가 있다. 라디오에서 그때의 가요가 흘러나와 내 추억 속의 멜로디와 겹치거나, 길 가다 눈에 들어온 순간포착이 과거의 사진첩에 오버랩될 때 바로 가방 메고 등교했던 그 시절이 스쳐간다.
어제는 러닝화 좀 사려고 스포츠 매장에 들렸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나이키가 눈에 띄었다. 아, 나이키... 순간 역동적이면서도 산뜻한 이 로고에 한때 가슴 설레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와 정신을 형상화한 세련된 로고를 단지 갈고리 모양으로만 봤던 상고머리 고등학생에게, 나이키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 물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 최고의 운동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교복자율화로 옷뿐만이 아니라 가방, 신발에까지 사춘기의 예민함이 뻗치게 된 점도 한몫했을 게다.
삼줄의 아디다스는 너무 단조롭고 아식스는 그물망처럼 복잡하고 프로스펙스는 일단 국산이라서 호응도가 떨어졌었다. 그러니 가격까지 저렴한 국산 월드컵은 단지 '쪽팔려서' 신으면 제일 빨리 달리게 된다는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에겐 나이키가 여전히 운동화의 정점에 있다. 이미 난 인생의 정점을 지나 내리막에 있지만 아직 ‘절찬 판매중’에 있는 나이키에 기대어 운동화가 전부였던 그때를 회상해본다. 어린 마음에 나이키는 어른들의 벤츠나 아우디에 버금가는 이동수단이었다.
그때 신었던 신발은 닳아 없어지고 말았지만 아직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 있다. 바로 ‘래피드 스테이플러’, 스웨덴 명품이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있었으니까 한 사십 년이 넘었을까. 아버지가 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사 오신 것이다. 문구용품도 공부에 관계되는 것이라 허접이 아닌 최상의 것을 사다 주셨을 부정이 엿보인다.
요즘 사람들이 명품, 명품 하는 것에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찮은 스테이플러에도 감동을 느끼며 반평생을 같이 했으니까. 잔고장이 없음은 물론이고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자그마한 물건한테 인격 못지않는 품격을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나에겐 명품이다. 그게 발단이 되었는지 쓸만하다 싶은 물품은 비싼 값이라도 구매하고 대신 아껴 쓴다. 이런 자세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 나의 소비철학이다.
오래됐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류의 흐름에 기술의 발전에, 정신이고 물질이고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요즘 시대라 이런 게 오히려 나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좌표가 되어 좋다. 그때가 생각나면 그때의 정신이고 결심이고 꿈이고 희망이고 간에 세월에 때묻지 않은 기억의 잔상들이 떠올라 나의 마음을 다시 셋팅한다. 심기일전은 죽는 그 순간까지 필요하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갓 잡은 고등어처럼 팔딱거리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