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어제 작은아버님과 낮술을 마시다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뭘 할 때 어떤 것이 널 행복하게 하니?"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다정한 남편, 귀여운 고양이들, 깨끗하고 편안한 내 집
사실 행복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내 삶이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답하지 못했다.
"어, 저는 아직 어떤 게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 찾아가는 중 인 것 같아요."
일을 그만둔 뒤 지난 1년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누구에게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은 수치심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도움 없이는 살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
그래서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대
갑작스럽게 백지가 되어버린 내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36년을 살았는데, 그렇게 많은 꿈을 꿨는데. 나름 많은 것들을 경험해 왔는데
이제 와서 백지라니.
1년의 시간을 그렇게 수치심 속에 매몰되어 살아왔다.
하지만 얼마 전 나는 마음을 바꿨다.
아무것도 없는 쓸모없는 백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새 종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게 커피라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로 했어요.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해 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번 알아보려고요."
11월, 12월에는 바리스타라는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이것 역시 나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그림을 부담 없이 남은 공간에 그려 보면 될 일이다.
"부럽다. 행복할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좋을 때란 뜻이야."
막걸리 한잔과 함께 미소 짓는 작은 아버님의 표정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안쓰러움과 걱정 혹은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부정적 느낌이었는데
누군가로부터 부러움을 받다니.
어쩐지 마음이 뿌듯해졌다.
얼마 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마침 내가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 다짐한 참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는데
마치 할아버지가 나에게
혹은 나 같은 이들 모두에게 보내주신 답장인 것 같아 기록해 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p.447]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