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옹이 Nov 18. 2023

제 꿈 꾸세요(김멜라)

내가 죽는다면 

 "고추밭에 갔어요. 해거리로 고추랑 양파 심는 엄마 밭에. 여름이라 흙이 붉고 기름졌는데 엄마가 꽃무늬 차양 모자를 쓰고 잡초를 뽑고 있었어요. 고무장화를 신고 허리를 굽힌 채 호미로 흙을 긁으면서. 나도 엄마 뒤에서 고랑 하나를 맡아 풀을 뽑았어요. 벌레가 윙윙거리고 땀이 줄줄 흘렀죠. 그러다 엄마가 밥 먹고 하자길래 집에서 가져온 아이스 백에서 얼린 보리차랑 현미밥이랑 전날 만든 임연수구이를 꺼내 상추에 싸서 먹었어요. 방금 딴 고추랑 같이. 한참을 먹는데 밭고랑 끝에서 오익오익오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새끼 돼지 한 마리가 달려오는 거예요. 발굽으로 막 흙을 튀기면서. 돼지가 엄마한테 와락 안겨서 납작하고 축축한 코를 얼굴에 문질렀어요. 키스를 퍼붓듯이. 그다음 엄마가 잠에서 깼죠."


 챔바가 말했다. 우리는 시청에서 다시 소공동을 지나 남산으로 가고 있었다. 챔바와 나는 여전히 반걸음 정도 떨어져 걸으며 각자의 발자국을 만들었다.


 "로또 살 꿈이네요. 돼지꿈."

 "맞아요. 엄만 그 꿈을 꾸고 복권가게에 갔어요. 자동으로 할까, 반자동으로 할까? 나한테 물어보려고 전화했는데 내가 안 받았죠. 나는 좋은 꿈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일어났을 때 웃게 되는 꿈. 복권을 사야 할 것 같은 꿈. 내가 돼지띠거든요."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멜라 작가의 [제 꿈 꾸세요] 일부 발췌 


내가 만일 죽는다면, 그 꿈을 선택할 수 있다면 

예쁘고 화려하거나 재밌지는 않아도 

설사 내가 죽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날을 보내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현재의 당신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찬찬히 알아갔으면 해.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