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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답정킴 Oct 12. 2020

상담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상담 중독자가 된 계기

처음 상담에 다닌 것은 어언 8년 전일까.

그 당시의 나는 가스라이팅*을 밥먹듯이 하던 애인과 헤어지고,

코를 푼 휴지조각보다 더 너덜너덜한 마음을 안고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었다. 



아, 이건 혼자서는 버텨낼 수 없다.


매일 눈뜨기 싫은 아침을 이기지 못했다. 

한바탕 울고나면 그걸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교의 상담센터를 찾았다. 

매일 눈물, 콧물을 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눈물, 콧물에 우울함이 씻겨 내려간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같이 낚시하러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100까지 세고 나올래?



상담 선생님의 과한 호의가 문제가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책을 빌려준다고 집 근처로 찾아오기도 하고, 

상담을 마치고 자신이 집에 데려다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책을 빌려주러 오는 길에 상담 선생님에게서 온 전화였다. 


" 100까지 세고 나올래? "


어디, 10대 후반 연애 소설 같은 말에 기함을 토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별말 할 수가 없었다. 




호의와 무례 사이 


내가 그에게 뭐라고 하지 못한 이유는 

그게 당연한 건지 아닌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기에 

그 이후에도 한동안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완전히 무너져있는 상태의 내가 안쓰러운 걸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도 불쑥 불쑥 불쾌감이 솟구쳤다. 

그 불쾌한 관계를 끊게 된 것은 

카카오톡에 상담 선생님이 추천친구로 떴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 선생님이 내 삶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밑바닥 속내까지 내보일 수 있었는데, 

자꾸만 내 현실 영역으로 침범하려고 했다. 

그게 가시적으로 보이는 순간, 나는 이 상담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둘러 다음 상담을 취소했다.

상담을 취소한 날, 학교를 걷다가 그를 마주쳤지만,

인사하려는 그를 황급히 외면했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상담사가 이렇게 과하게 친절하면 안 된다.

상담사는 내 삶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환자 비밀 보호를 위해 

밖에서 마주치더라도 아는 척 안 하기도 한다.


상담사는 무조건 나의 삶 바깥에서 같이 걷는 사람이다.


나의 첫 상담의 실패는 무조건 여자선생님을 고르자, 라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러고서 어찌저찌 이별의 아픔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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