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동 골목 끝 집에서 4년 살다가 주약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번 이사는 다른 때와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공부하러 들어가는 일이라 엄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상대동 집을 팔고 주약동에 있는 가게를 계약하고, 우리 식구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난생처음 가족회의 비슷한 것을 열었다. 아버지는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모두 약간 침울한 상태로 말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왜 지금이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에 아버지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되겠심니꺼.”
아버지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말이 없었다. 한참 후,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아직 나나 너희 엄마가 기운이 있을 때 뭐라도 새로 시작해야지 지금보다 더 늦으면 힘들지 않겠나.”
아버지는 이미 생각을 굳힌 듯 말했다. 이럴거면 왜 물어본 거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자면 가족의 희생이 있어야 하니까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여태까지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려서 그런 아버지가 이기적으로 보였다.
주약동으로 이사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는 동안 엄마는 가게에 매달려 있었다. 원래 수퍼마켓을 하던 곳을 인수 받는 상황이라 기존 물건에 대한 가격 흥정과 새로 들여놔야 할 것들을 챙겨야 했다. 이사를 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 아버지는 큰 가방과 작은 가방을 챙겨서 부산으로 떠났다.
주약동에 있는 집은 구조는 특이했다. 1층 같기도 하고, 2층 같기도 한 집이었다. 대문에서 보면 1층이고, 가게에서 보면 2층처럼 보였다. 대문으로 다니는 사람은 2칸짜리 방에 전세를 사는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모두 가게로 다녔다. 가게로 달린 방이 있고 그 옆에 작은 부엌이 있었다. 방으로 연결된 문으로 올라가면 거실이 나오고 큰 방과 작은 방, 화장실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옥상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방은 남동생이 사용하고 가게에 달린 방은 엄마와 할머니가, 거실 옆에 있는 큰 방은 나와 여동생이 사용했다. 가게에 있는 방과 연결된 문은 아주 높아서 내려올 때는 살짝 뛰어서 내려오고, 올라갈 때도 팔에 힘을 주고 올라가야 했다. 할머니는 혼자서 오르내리지 못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장사를 하고 싶어 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엄마는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다. 수퍼마켓을 하기 전에 점을 보러 갔더니 하면 잘 된다고 하여 기분 좋게 시작했다. 점쟁이가 하지 말라고 해도 했을 상황이었지만 잘 된다고 하니 부모님은 안심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
이사를 간 집은 큰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퍼마켓이 자리하기엔 딱 적당한 곳이었다. 가게 이름은 ‘망경슈퍼’였다. 원래 간판을 그대로 사용했다. 비용 때문이었다. 가게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주약동이라는 이름은 망경북동의 새 이름이었다. 망경동에 인구가 늘어나고 커지면서 둘로 나뉘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망경북동의 자리는 주약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망경북동은 사라지고 주약동이 생긴 것이다.
엄마는 가게에 있는 물건들에 대한 가격을 확인하고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과자나 공산품은 물건 뒤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음료수, 술, 담배의 가격은 금고 옆에 붙였다.
엄마가 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과자를 가져다 주는 차, 음료수와 술을 주는 트럭, 아이스크림 아저씨, 담배인삼공사에서 받는 담배 등. 물건을 받고 장부에 기입하고 물건 값의 일부를 주고 달아 놓는 일을 해야 했다. 엄마는 가게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야채와 과일도 팔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중앙시장에 가서 과일과 야채를 사 왔다. 야채와 과일은 가게 밖에 있는 진열대에 놓았다. 야채와 과일은 수명이 짧지만 주변에 자취를 하는 대학생들이나 직장인들, 멀리 시장까지 가기 힘든 아줌마들에겐 도움이 되었다. 엄마는 야채와 과일을 오래 두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들라고 하면 자취생들이나 동네 아줌마들에게 떨이로 저렴하게 주거나 그냥 주었다. 새벽시장에서 사 온 야채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싱싱하기도 했고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가게를 인수하고 따로 개업식이나 뭐 그런 것은 하지 않았다. 다만 떡을 해서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웃에 인사를 하며 돌았다. 우리 가게 맞은편에 있는 가게에도 떡을 주기는 했지만 아줌마의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친할 수가 없는 사이라는 걸 떡을 돌리는 순간 알았다. 원래 두 가게는 약간은 라이벌처럼 지냈다고 한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작은 슈퍼마켓이니 그럴만도 했다.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맞은편 가게와는 그렇게 마주 보면서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힘들었지만 항상 가게 문을 밤 12시가 되어서 닫고 아침 6시가 되면 열었다. 그 누구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그렇게 1988년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가게는 잘 되었지만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 엄마에서 할머니, 나, 동생 순으로 자주 바뀌었다.
하루 종일 가게에 매여 있는 건 애초에 엄마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손님은 항상 오기도 하고, 항상 오지 않기도 했다. 엄마는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모임이 생기면 나에게 자주 가게를 부탁했다. 할머니는 잠시 앉아 계시는 것이지 아예 가게를 맡을 수는 없었다. 물건 가격을 모르시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상으로 가져가서 나중에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그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야채와 과일은 매일 가격과 수량이 다르기 때문에 엄마가 없으면 팔기 힘들었다. 어떤 때는 대충 팔아야 했다. 모임을 좋아하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자주 자리를 비우면 할머니는 혼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엄마한테 뭐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여동생처럼 싹싹하지 못하고 낯을 조금 가렸다. 손님이 오면 인사는 했지만 필요 이상의 친절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내겐 그냥 동네 사람들이고 손님일 뿐이었다. 아줌마나 아기들은 편했다. 그중에서 유독 내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 저녁때 야채 사러 오는 아기 엄마 알재? 눈이 아주 큰 아기를 가진 아줌마.”
엄마는 내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아~ 알지. 이제 8개월 되었는데 우째 그리 통실통실한지 아주 이뻐 죽겄어.”
“맞재? 걔 진짜 예뻐. 하얀 게 외국 애 같이 피부도 얼마나 부드러워 보이는지….”
나는 사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기는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아기만 보면 안아보고 싶어서 오늘은 안 오나 하고 기다릴 정도였다. 아기 엄마도 못생긴 것은 아니지만 아기랑 별로 닮지는 않았다.
“만약 나중에 오면 나도 한 번 안아보게 엄마가 어찌 좀 해 보라고….”
나는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더니 알았다고 했다.
우리 동네는 자취하는 대학생들, 직장에 다니는 사회 초년생들, 아이가 아직 어린 부모들이 꽤 있었다. 다른 동네와는 달리 젊은 층이 많은 동네였다. 저녁 시간이 되면 두부나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는 그런 그들에게 어떤 때는 이미 만들어 둔 반찬을 주기도 했다. 엄마는 손이 커서 많이 만들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인심을 부렸다. 반장 아줌마도 손이 크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침개를 했다고 가져다 주고, 매운탕을 끓여서 나누어 주기도 했다. 반장 아줌마도 엄마처럼 음식을 잘 만들었다.
귀여운 아기의 이름을 알아냈다. 이원기. 아기 엄마가 물건을 사러 왔을 때 엄마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안았고 내게도 기회가 생겼다. 원기는 낯을 가리지 않아 내가 어설프게 안아도 울지 않았다. 귀여운 볼에 뽀뽀를 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아기가 내게 안겨 있을 때 원기 엄마랑 엄마는 얘기를 나누었다.
“저희 옆집에 사는 미호 알지예?”
“미호? 미호가 누꼬?”
“찰랑찰랑 긴 머리를 하고 있는 애 모르십니꺼?”
“아, 쪼매한 애? 걔가 미혼가? 이쁘장하게 생겼더만.”
“네. 근데 글쎄 걔 엄마가 미호 머리를 잘라 버렸다 아임니꺼.”
“잘라 버렸다고? …”
엄마는 원기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머리야 기를 수도 있고 자를 수도 있는데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잘랐다가 아니라 잘라 버렸다고 하는지…. 원기 엄마는 그런 엄마의 표정을 보더니,
“아 … 아줌마 모르셨구나. 미호 엄마, ……미호에겐 새엄마 아임니꺼. 3년 전에 미호 아버지와 재혼해서 지금 미호 동생 낳았잖아예. 미호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으면 엄청 질투하고 그런가 보대예. 아마 머리도 누가 예쁘다고 하니까 미호 끌고 가서 싹뚝 잘랐다고 카대예.”
엄마랑 나는 원기 엄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딸을 질투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아줌마의 말에 의아해 하자 아줌마는 비밀스러운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은근하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미호 새엄마가 얼마나 샘이 많은지 글쎄 저번에 제가 미호 옷이 예쁘다고 하자 미호 새엄마가 샐쭉하더니 다음 날 다른 옷을 입혔더라니까예. 애를 예뻐하는 꼴을 못 보는거 있지예.”
“아무리 새엄마라지만 지도 애 낳고 사는 엄만데 그라모 쓰나.”
“그러게 말입니더.”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요즘 미호의 모습을 생각해 봤다.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또래 보다 작고 항상 기운 없이 처진 어깨로 다니던 아이. 귀여운 얼굴에 밝은 표정이 없는 이유가 새엄마 때문인가. 조선시대도 아닌데 새엄마들은 여전히 못된 계모 짓을 해야 할까.
미호 엄마는 우리 가게에 자주 오지 않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맞은편 가게의 아줌마랑 친하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미호가 슈퍼에 왔다. 과자 진열대를 보면서 뭘 살지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미호가 고른 것은 새우깡이었다. 오백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잔돈을 주면서 막대사탕 한 개를 주었다. 미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미호는 동그라면서 살짝 긴 얼굴을 가졌다. 긴 머리를 자르기는 했지만 눈과 코와 입이 조화롭다. 그에 반해 미호 엄마는 차가우면서 약간 퉁퉁거리는 모습을 지녔다.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눈은 아주 작고 코는 평범하고, 입은 다른 사람보다 좀 커 보였다. 누가 봐도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게 생겼다. 원기 엄마의 속삭임은 미호네 가족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다.
내 궁금증은 며칠 후에 풀렸다. 반장 아줌마의 남편과 미호 아버지가 퇴근 후, 우리 가게 앞 작은 평상에서 술을 마셨다. 맥주와 새우깡을 놓고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그들에게 집에서 볶은 땅콩을 제공했다. 미호 아버지는 반장 남편의 회사 직원이었다. 미호가 아버지를 닮았음을 알았다. 미호 아버지는 훤칠하게 잘 생겼다. 트럭 기사라고 하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맥주 한 병에서 두 병으로 다시 네 병으로 늘어날 즈음 반장 아줌마가 나타났다. 반장 아줌마는 엄마에게 맥주잔을 받아서 아저씨 옆에 앉아 시원하게 마셨다. 아저씨는 아줌마에게 회사 얘기를 했다.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뭐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아줌마는 아저씨네 회사 일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미호 아버지 역시 아줌마와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얘기를 이어갔다. 그들은 맥주 다섯 병을 비우고 일어났다. 나는 평상을 정리하면서 미호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다. 큰 키에 넓은 어깨가 약간 앞으로 구부러진 듯 하면서 술 때문에 두 다리에 기운을 빼고 건들건들 걷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짠한 감정이 들었다. 그의 모습에 짠한 게 아니라 미호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연민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건 맞지만 딸과 아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픈 생각도 들었다.
가게는 그런대로 잘 되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 불안했다. 가게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 우리집이 잘 굴러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아버지의 부재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활기가 돌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 보였다. 눈치 보지 않고 모임에 다녀오고, 동네 사람들과 슈퍼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가게를 하면서 엄마의 집안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저녁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어 두고 있었으니 오히려 더 늘어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은 좋아 보였다. 아버지의 큰소리와 엄마를 옥죄이는 압박이 없으니 그런 건 아닐까. 아버지는 우리 집 가장이지만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사람이고 큰 소리 내는 독재자이니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항상 가게에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평상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평상시와 달리 조심스레 들어가면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으로 왜 무슨 일인데 라며 물었다. 엄마는 대답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뭐지? 나는 가게에 달린 방이 아닌 옆으로 빙 돌아서 현관문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을 헤치고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조금 있으니 할머니가 가게와 연결된 문을 열었다.
“근태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지금 응급실로 갔단다.”
“어? 근태? ……아… 반장 아줌마 남편말이가?”
“그래, 우짜든지 괜찮아야 할낀데…….”
그날 우리 가게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와서 사고에 대해 말하고, 걱정하고,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다음날 근태는 동생들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본인은 조퇴를 해서 병원에 갔다. 며칠 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가게로 나오니 반장 아줌마가 우리 가게로 오고 있었다. 엄마는 서둘러 일어나서 그녀를 맞이했다.
“아이고, 우짜노. 얼굴이 말이 아니다.”
반장 아줌마는 엄마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울었다. 엄마는 그런 아줌마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반장 아줌마의 울음은 좋지 않은 결과를 예상하게 했다.
다음 날, 엄마는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엄마는 놀라운 얘기를 했다. 반장 아줌마가 근태의 새엄마란다. 새엄마? 근태가 다섯 살 때 친엄마는 병으로 죽고, 근태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재혼하여 미양이와 현태를 낳았다. 반장 아줌마가 새엄마라니, 놀라운 얘기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반장 아줌마는 근태 자랑을 많이 했었다. 근태는 모범생이었고 공부를 잘 했다. 반면에 동생들은 공부를 못 했고, 밖에서 노느라 얼굴이 까맣게 탔다.
선입견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근태 엄마가 새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근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미 근태 엄마가 어떤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지만 걱정이 되기는 했다.
상을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아 반장 아줌마는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했다. 근태가 동생들을 챙겼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들에게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근태가 저녁을 준비하는 일이 늘어났고, 가게로 반찬이며 야채며 사러 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근태가 저녁거리를 사러 오면 엄마는 뭘 만들 것인지 물어보고 필요한 것을 덤으로 주었다. 근태는 음식을 잘 만드는 것 같았다. 엄마랑 얘기하는 걸로 미루어봐서 나 보다 잘하지 싶었다. 사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엄마가 음식을 잘 하기 때문에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었고,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근태가 대단해 보였다. 나 보다 어리지만 행동은 어른스러웠다. 근태와 그의 동생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반장 아줌마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일요일 늦은 오후면 가게로 와서 엄마와 얘기를 하다가 가는 일은 있었다.
반장 아줌마가 바빠져서 더 이상 동네 반장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상회에서 추천이 오가고 손을 들어서 엄마가 반장이 되었다.
“엄마, 가게 일도 많은데 뭐하러 반장까지 맡은건데.”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별거 없어. 가끔 반상회 열고, 동사무소에서 지시하는 사항 전달하면 돼. ……많이는 아니라도 돈도 주잖아.”
그러나 엄마의 말과 달리 반장에게 주는 급여는 적었지만 자잘한 업무는 많았다. 반상회를 연다는 전단지를 집집마다 돌리고, 누구 집에서 할지 결정하고, 동사무소에서 전달하는 업무를 알려주는 일은 많았다. 결국 반장이 해야 하는 업무는 내가 거의 다 해야 했다.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놀면서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입술을 한 바가지 내밀며 투덜거리며 했다.
반장 아줌마는 몰라보게 세련되어 사장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사장님으로 변신한 아줌마는 멋있어 보였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화장을 연하게 했고, 옷을 세련되게 입었다. 아줌마도 변할 수 있음에 놀랐다. 항상 체육복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까만 맨얼굴이었는데……. 아줌마는 회사를 잘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아줌마에게 풍겼던 밝은 에너지가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해서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나는 가게를 봤다. 가게의 문이 열리고 원기와 그의 엄마가 들어오고 있었다. 원기는 엄마 등에 업혀 있었다. 엄마가 안고 다니기엔 덩치가 커졌다. 달덩이 같은 큰 얼굴 만큼 몸이 통실해지고 있었다. 원기는 엄마 등에 업혀 눈을 크게 뜨고 세상 모든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는 자세로 있었다. 나는 원기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원기는 방긋 웃었다. 덩치에 비해 말이 느리다. 원기가 말하는 걸 아직 듣지 못했다. 꺄르륵 하고 잘 웃었지만 말 다운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아줌마, 원기 몇 살이에요? 아줌마는 원기에게 관심을 쏟는 나를 보며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이제 돌이 몇 달 남지 않았지. 예? 아직 돌이 안 되었어예? 그런 것 치고는 원기가 크네요. 그렇지? 애가 먹성이 좋아. 하면서 크게 웃었다. 아줌마는 분유 한 통, 과자, 맨솔(담배 이름) 샀다. 거스름돈을 주며 원기에게 아쉬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귀여운 녀석.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어째 저리 이쁠까. 뽀얀 피부는 또 어떻고.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저 녀석이 다 가졌네.
원기 엄마가 나가고 조금 있으니 가게 밖에 있는 야채 진열대를 자세히 살피는 사람이 보였다. 미호 새엄마였다. 미호 새엄마가 야채를 사러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아줌마는 매의 눈으로 야채와 과일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 아줌마가 웬일이지 하는 마음에 맞은편 가게를 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저 집은 오늘 쉬는 모양이네. 맞은편 가게는 일요일이면 가끔 문을 닫았다. 엄마는 아직 한 번도 가게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아줌마는 오이, 호박, 겉절이용 잔배추를 조금 샀다. 아줌마가 가고 난 후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덤으로 뭐 줬어?”
“덤? 안 줬는데.”
“왜?”
나는 의외라 놀라서 물었다.
“특별히 줄 게 없는데.”
“뭐 언제는 줄 게 있어서 줬나? 엄마는 그냥 막 주는 거 아니었나?”
“야가 지금 뭐라카노. 시들해지는 게 있거나, 남겨 놔서 안 되는 게 있으면 줘야지. 그거 갖고 있으면 뭐할껀데.”
“그니까. 왜 저 아줌마한테는 안 줬냐고.”
“지금 야채며 과일들 봐라. 다 싱싱하잖아. 야가 지금 뭐라카노.”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안다. 미호 엄마가 맞은편 가게 아줌마랑 친하다는걸. 그니까 굳이 덤을 줄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엄마 말대로 지금 야채와 과일 상태가 좋아 보이긴 하다.
미호 새엄마를 보면 미호네 집안이 궁금했다. 집에서 새엄마의 구박이 심한 건 아닌지, 미호는 별일 없이 잘 지내는지……. 말없이 조용하기만 한 미호를 보면 자꾸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까불까불 생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미호만 보면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친한 척 굴면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을 물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우리 미호는 뭐를 제일 좋아하나? 그럴 때마다 미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한 번 보는 게 전부였다. 미호 얼굴에 보이는 표정으로 ‘저한테 왜 그러세요?’ 라는 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미호에게 다가갔다.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가게로 오면 뭐라도 하나 주었다. 사탕일 때도 있었고 과일일 때도 있었고 장난감일 때도 있었다. 미호는 고맙게도 받아 주었다. 그러나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굳게 다문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늦은 저녁, 엄마는 모임에 가고, 나는 가게를 보고 있었다.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 무료해져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보통 이 시간쯤이면 모임을 끝내고 왔는데……, 수다 삼매경에 빠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야채 진열대를 살펴봤다. 오이와 양파, 잔배추, 감자, 수박 두 덩이가 있었다. 나는 저 멀리 시선을 주면서 어디쯤 오는 건 아닌지 머리를 쭉 빼고 응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사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에 눈이 갔다. 가로등 주변에 몰려든 날파리들이 보였다. 기지개를 쭉 켜면서 더운 날씨에 바람이라도 좀 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작고 낮은데 누군가 우는 듯 했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나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가게 옆 모서리 쪽에 누군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우는 아이는 미호였다.
“미호야, … 여기서 뭐 해? …왜 울어?”
“…….”
내가 부르자 고개를 들었다. 미호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엉망이었다. 나는 미호를 일으켜 세웠다. 더 이상 묻지 않고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할머니는 미호를 보자 놀라셨다. 나는 손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혹시 몰라서 저녁 먹었는지 물었다. 미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국을 데우고 밥과 반찬을 꺼내어 주었다. 미호는 한참 보고 있더니 조용히 먹었다. 미호집에 연락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순간 화가 났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지 않고 집에서 쫓아낼 일이 뭐가 있지?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미호가 잘못할 게 뭐가 있지? 참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가게를 맡기고 미호를 데리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화장실로 가서 아이를 씻겼다. 그리고 내 방에 재웠다. 미호는 금방 잠이 들었다. 다시 가게로 내려오니 엄마가 돌아와 있었다. 미호가 내 방에서 자고 있다고 알렸다.
늦잠을 자는 일요일인데 일찍 깼다. 세수를 하고 가게로 나오니 엄마는 이미 새벽시장으로 가고 없었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가게 앞을 청소했다. 그때 누군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미호 아버지였다. 어찌할까 고민했다.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나를 멀뚱히 봤다. 나는 아저씨를 알지만 아저씨는 나를 모른다. 미호 아버지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하자 아저씨는 많이 당황스러워했다. 아직 미호가 자고 있으니 나중에 일어나면 보내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알겠다고 말하며 집으로 갔다. 미호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우리는 평상시처럼 아침밥을 먹었다. 미호는 한 그릇 다 먹었다. 나는 여동생과 미호랑 같이 목욕탕에 갔다. 때를 밀고 탕 안에서 몸을 담그다가 장난을 치며 놀았다. 미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서 바나나 우유를 사서 시원하게 마셨다. 시원한 음료가 목 안으로 넘어가는 짜릿함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가게 의자에 미호 엄마가 앉아 있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미호 엄마는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듯 하더니 미호랑 집으로 갔다. 이대로 미호를 보내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골목으로 사라질 때쯤 나는 서둘러 뒤를 쫓았다. 그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대문 가까이 다가갔다. 이층 주택의 일층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벽에 붙어서 안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였다. 조용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소리가 잘 들릴 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었다. 한쪽에 작은 창문이 보였다. 그리로 갔다. 말소리가 작게 들렸다. 미호 아버지 목소리, 새엄마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싸우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냥 낮고 조용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돌아왔다. 싸움이 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조용히 넘어가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아저씨가 화를 내고 아줌마가 뭐라고 하는 상황을 예상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과거를 생각해 봤다.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던가. 놀다가 늦게 들어와서 벌을 받은 적은 있지만 쫓겨난 적은 없었다. 미호가 밤늦게 집에서 쫓겨난 적이 처음이었을까.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무일 없더나?”
“싸우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 어린 걸 밤늦게 쫓아내면 우짜자는기고. 참 나 쯔쯔쯔.”
할머니가 혀를 차면서 한마디 했다.
“별일 없것지예?”
엄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엄마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집엔 없었다.
그때 근태 엄마가 가게로 왔다. 아침 찬거리를 사러 왔다. 엄마는 새벽 시장에서 사 온 것들을 보여 주었다. 엄마는 미호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근태 엄마는 약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근태 엄마가 떠나고, 할머니와 엄마는 남의 가정일에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낮게 속삭였다.
미호가 집에서 쫓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호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뭐지?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미호를 만났다.
“미~호야. 안~녕.”
나는 다정하게 인사했다. 평상시 같으면 고개만 까딱할 미호가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놀라 아이를 쳐다봤다.
”오늘 많이 늦는데? 뭔 일이 있었던 기가?“
내 질문에 미호는,
”이번 달부터 학원 다닌다 아임니꺼.“
대답하는 미호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목소리가 경쾌하다.
”학원? 무슨 학원인데?“
”댄스 학원이라예.“
댄스학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미호가 댄스학원에 다닌다고?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미호는 웃으면서 말했다.
”언니도 배워 볼래예?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예.“
”어? 니가 원해서 다니는 거야?“
”하모예. 예전부터 다니고 싶었는데……안 된다고 하더니, 어짠일인지 이번에 아버지가 다니라고 해서… 며칠 전부터 다니고 있어예.“
그렇게 말하는 미호의 얼굴엔 예전과는 다르게 밝았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얌전하고 조용하던 미호가 춤을 좋아하다니……. 신이 난 미호를 보자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저번에 말이야. ……집에서 왜 쫓겨났는데?“
말을 하고 나서 아차, 했다.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을까. 주워 담고 싶었다. 다행히 미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지가 엄마한테 떼를 좀 썼는데……먹히지 않아서 집을 나왔지예. 아버지한테 혼날 줄 알았는데 언니 덕분에 괜찮았심니더.“
하면서 웃었다.
”뭐? 쫓겨난 게 아니라 ……니가 제발로 나온 거였어? 하 …….“
나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참에 궁금한 걸 다 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어도 괜찮을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있잖아. 미호야.“
미호는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멀뚱히 봤다.
”예전에 너 …머리 길었다 아이가. 맞재?“
”예. 허리 조금 안 닿게 길었었지예.“
”그치? ……근데 왜 자른거야?“
미호는 한참을 생각했다. 너무 상처 되는 말을 물은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잘 생각이 안 나면 말 안해도 돼.“
”아니, 생각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머리 때문에 엄마한테 야단을 많이 맞아서 …….“
”그래? 너는 안 자르고 싶었네.“
나는 짧은 머리를 한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맞아예. 지도 긴 머리가 더 좋아예.“
”언니는 머리 안 기르고 싶은거라예?“
”어? 나는 머리 긴 게 좀 귀찮아.“
”그니까, 너는 머리 자르고 싶지 않았구나.“
”예. 맞아예. 지는 긴 머리가 좋은데… 자주 감지 않으니까 머리가 엉키고 냄새난다고 엄마가 자르자고 해서… 짜증이 나서 한동안 말도 하기 싫었어예.“
미호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게 소문의 실체구나.
근태와 미호는 어느새 내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갔다. 학년이 올라 가면서 가게 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텔레비전에서는 88 올림픽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