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탔다. 평상시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섰더니 버스에 빈자리가 몇 개 보였다. 내 몸은 의자에 당기듯 앉았다. 30분은 가야 하기에 빈 의자가 반가웠다. 평일 아침에 10분 이른 출발은 이런 행운을 주지만 그 시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고민이 생기면 잠이 도망가 버린다. 어젯밤도 내내 뒤척였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일어났다. 머리가 약간 아프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출근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주소가 적힌 쪽지가 내 손에 있었다. 어떻게 가야 할지 검색을 하고 또 했다. 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검색을 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머리로 그려보면서 걱정을 가라앉혔다. 혼자 갈지 누군가를 불러 함께 갈지 고민했지만 일단 혼자 가 보기로 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목적지에 내렸다. 버스가 서는 정류장 표시판을 보니 맞게 내린 것 같다. 버스가 떠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버스가 저만치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라진 꽁무니 뒤로 작은 길이 보였다. 길의 오른쪽으로는 논이고 왼쪽으로는 작은 산들이 있다. 작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니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살랑 날린다. 구월 끝자락에 부는 바람이라 시원함이 느껴진다. 이 바람을 잡고 가야 할 모양이다. 혹시 사람들이 또 오지 않을까 잠시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산길로 들어섰다.
며칠 전에 들은 설명에 의하자면 이 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 산은 겉으로 봐서는 울창하지 않다. 좁은 길을 중심으로 잡초들이 있었지만 아직 어린 잡초들이다. 성묘하러 왔던 사람들이 풀을 벤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까까머리처럼 보인다. 이 길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는 뜻이기도 하다.
휴대폰 배터리를 확인하니 80 프로이다. 충분할 것 같다. 복잡한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며 걸었다. 풀숲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놀라 고개를 들어 가만있으니 청설모가 후딱 나무로 올라간다. 다시 걸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계속 길이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긴장과 두려움과 걱정과 힘듦이 섞인 땀이다. 내가 잘못 온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냥 가는 수밖에. 예상했던 시간을 한참 지나 더 가야 하나 망설이는 마음이 들 때쯤 좁은 길이 끝나고 넓어졌다.
봉분들이 보였다. 잘못 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공동묘지인가 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서너 개의 봉분들이 질서 정연하게 있다. 누군가의 선산인 모양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오른쪽 끝을 바라봤다. 작은 봉분이 보였다. 봉분 앞에 납작하고 반듯하게 있는 작은 대리석이 있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엄마 이름이다. 이름을 보자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왜 이렇게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금방 갈 거면서 나한테 꼭 그렇게 했어야 했어? 그래야 했냐고?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 점점 높아져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한심하고 비참한 내 인생이 엄마 때문이라고, 책임지라고 하고 싶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곳을 도망친 것은 맞기 싫어서였다. 물론 배가 고픈 것도 있었지만 단장의 매질은 견디기 힘들었다. 도망치면 잡히고, 도망치면 잡혔지만 나는 기회만 생기면 도망갔다. 그러다 숨어들었던 방직공장 사람들에 의해서 경찰서로 갔다. 경찰관 아저씨들은 친절했다.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놀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단장이 날 찾으러 오고, 단장이 하는 거짓말이 들통나고, 내가 지냈던 방을 보면서 경찰은 완전히 내 편이 되었다.
함께 지냈던 언니들은 가족을 찾아 집으로 돌아갔다. 나만 남았다. 경찰은 텔레비전에 나가서 가족이 찾아오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에 나갔다.
“제 이름은 이주희입니다. 저는 현재 12살이고요,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할머니랑 살았던 기억은 있는데……. 제가 어떻게 서커스단에 들어가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네 살 때부터 단장을 따라다니며 공연을 했어요. 지하실에서 맨날 연습했어요. 밥은 하루 두 번이었고, 김치가 전부였어요. 늘 배가 고팠어요. 처음엔 공연이 많았는데 조금씩 줄어들면서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했어요. 손님들이 귀엽다며 돈을 많이 줬어요. 우리는 모두 스스로 했어요. 빨래는 기본이고 화장도 자기가 알아서 했어요. 연습 때문에 잠이 부족했고, 피곤해서 연습하다가 졸기도 했어요. 졸다가 접시를 떨어뜨리면 많이 맞았어요. 함께 지냈던 언니들은 잘해 주었어요.”
방송에 나가고 경찰서로 전화가 왔지만 내 가족의 연락은 없었다. 경찰은 단장에게 나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단장은 날 데려다준 사람을 어렵게 기억해 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맡긴 할머니를 찾고 내 원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서원주. 호적에 있는 내 이름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재혼을 했다.
엄마의 연락은 없었지만 나를 입양하겠다는 사람들은 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고 싶지 않았다. 수녀원에서 왔다. 나를 맡아 키우면서 좋은 가정으로 입양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말에 경찰은 나를 설득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수녀원으로 갔다.
수녀원에서 한글과 기초공부를 했다. 나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에 배울 게 많았다. 공부는 어렵고 힘들었다. 오전에 공부하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청소하는 생활은 지겹고 심심했다.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수녀님들은 다정하고 친절했지만 수녀원의 생활은 갑갑했다. 오후가 되면 밖으로 나가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다녔다. 그렇게 며칠 다니다 보면 수녀원에서 나를 찾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엉망이 된 모습을 보면 혼내지는 않았지만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들에게 나는 짐이라고 느껴졌다.
수녀원에 있은 지 2년이 지날 즈음, 뭔가 배우고 싶었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하고 혼자서 살아가려면 잘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했다.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전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기술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면서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하는 학원이라 돈이 들지 않았다. 먹여주고 재여주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 수녀원을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내게 주는 동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웠다.
처음으로 한 선택이었지만 잘못된 것이었다.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나는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내가 머물던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일을 배워서 혼자서 살아가고 싶었다.
기술학원의 겉모습은 평범했다. 함께 왔던 사람이 떠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작은 바구니를 주며 저쪽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바구니에 담은 물건들을 살펴보더니 방으로 안내했다. 배정받은 방에는 세 명의 언니들이 있었고, 이층 침대가 두 개 있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냉랭하니 어두웠다. 방 안에 켜진 전등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발에 닿는 온기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그 누구도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내 자리는 남은 이층이었다.
아침 7시가 되면 요란한 소리가 났다. 놀라 일어나 멍한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 체조를 하고 식사 당번은 식당으로, 청소 당번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갔다. 다시 요란한 소리가 나면 식당으로 모여 밥을 먹었다. 반찬은 매번 비슷했다. 콩나물국, 감자볶음, 오이무침, 김치. 밥은 맛이 없었지만 남기면 날카로운 눈빛과 손에 든 몽둥이가 날아온다. 각자 배정된 교실로 들어간다. ‘요리 교실’, ‘자수 교실’, ‘미용 교실’.
이곳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그 무엇도 배우지 못했다. 정신교육이라며 이상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상태이다. 들어오기 무섭게 나가고 싶었다.
1층에 있는 공중전화기로 갔다.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단다. 사무실에 가서 전화기를 사용하고 싶다고 했더니 단칼에 거절했다. 왜 안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살벌한 분위기에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상태로 가만 서 있었더니 교실로 가란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엔 철창이 쳐져 있었고 교도소 마냥 감시하는 사람들이 보초 서듯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옆방에 있던 언니들이 우리 방으로 왔다. 뭔가 속닥거리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학원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가고 싶은 사람은 많았지만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 사람만이 나갈 수 있었다. 언니들은 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몰래 도망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하여 얻은 결론이 방에 불을 내는 것이었다. 불을 내면 화재경보기가 작동할 것이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학원 밖으로 나가면 모든 게 해결되는 원리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불을 지르고, 연기가 나고, 화재경보기가 작동했지만……우리는 나갈 수 없었다. 중간에 닫힌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학원에 있었던 사람들 절반은 다치고, 그 절반은 죽었다. 같은 방을 썼던 언니들은 죽었다. 나만 살았다. 나는 왜 살았을까.
병원에서 일정한 치료가 끝나고,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정신병원 의사는 내게 여러 가지를 권하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의 웃는 얼굴을 보면 허무했다. 나와 상관없는 웃음이었다.
“환자분, 아직 나이도 어리고 미래가 창창하잖아요. 밥을 먹으며 기운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계속 병원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
“말을 안 하면 우리가 도울 방법이 없어요. … 힘을 내 봅시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후딱 가 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불이 났었던 학원에 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던 사람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정신병원으로 옮기기 전 내 모습도 보였다. 공허한 얼굴이었다.
누군가 내게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실로 내려가니 낯선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내 어릴 적 사진 두 장을 보여 주며 울었다. 분명 내 사진이었다.
“텔레비전에 네 얼굴과 이름이 나왔을 때 혹시나 했다. 전화해서 물어보고 확인하면서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현주야…”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만나면 어떤 감정일까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저 그랬다. 저 사람이 나를 자신의 딸이라고 하니 고마웠다.
그녀를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토록 찾던 엄마였으니까. 나도 이제 엄마가 있다. 소리치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저도 엄마 있어요. 있다고요. 있어요. 있어요.
엄마는 모든 걸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내 소지품을 다 가져갔다. 통장과 도장까지 챙겼다. 새아버지와 동생들이 있는 집,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의 형편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나면 엄마와 새아버지는 일하러 나가고, 동생들은 학교에 갔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집 주변을 돌아다녔다. 다세대 주택가라 골목은 좁았고 길은 구불구불했다. 작은 슈퍼, 노인정, 과일 가게, 생선 가게, 식당, 공원을 돌면서 지리를 익혔다.
동네가 익숙해질 무렵,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서빙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주변을 배회하고 다녔다. 노래연습장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공원에 가서 하염없이 멍을 때리다가 어둑해지면 들어갔다. 늦게 들어가면 뭐 하다 늦느냐며 야단이었지만 그게 편했다. 두 분은 이미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다. 나는 조용히 동생들 옆에서 잤다.
“엄마, 이제 제 통장 주세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네가 뭔데 통장을 주라 마라야. 어? 너는 아직 미성년자야. 알겠어?”
엄마가 나를 때릴 줄은 몰랐다. 내 몸은 이미 구타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뼛속까지 아팠다. 식구들의 냉대보다 엄마의 주먹질과 욕설에 나는 멍들어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처박혀 꼬꾸라지고 싶었다. 아니면 공중으로 분해되고 싶었다. 강가에 넋을 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오는 날들이 늘어났다. 모든 것을 놓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도망을 생각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일자리 정보를 뒤적거리며 재워주는 곳을 찾아야 했다. 미용실에서 보조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봤다. 집에서 1시간 거리였다. 식당 아르바이트보다 적은 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미용실에서 청소를 하고, 미용을 보조하면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미용실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청소만 하다가 어느 순간, 손님의 머리를 감기는 방법을 배우고 익혔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지만 재미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나도 뭔가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머리 자르는 가위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파마약 냄새가 달콤했다. 미용실에서는 모든 순간을 잊고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엄마가 찾아왔다. 그래도 나를 찾는 사람은 엄마뿐이구나. 마침 점심시간이라 같이 식당으로 갔다. 우리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뭔가 할 말이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오자,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번 돈 다 내놔.”
“…….”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낮은 목소리에 독기가 서렸다. 온몸이 떨렸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구나. 아무 말 없는 내 머리를 때렸다. 나는 밀쳐지듯 머리를 계속 맞았다. 때려도 반항을 하지 않으니 욕을 했다. 먹은 걸 다 토했다. 한참 토하고 나자 속이 쓰렸다. 정신을 차리니 엄마는 가고 없었다.
주변에 있는 건물에 내 모습을 비춰가며 머리를 가다듬었다. 다행히 이번엔 뺨을 맞지 않았다. 뺨을 맞으면 자국이 오래 남아 보는 사람들이 다 알아보았다. 변명을 하기 힘들었다.
돈을 가져가지 못했으니 며칠 후에 다시 올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모양이다. 이번에 일하는 곳은 여러 가지로 좋은데……, 옮기고 싶지 않았다. 이곳 미용실의 원장이나 일하는 직원들의 실력이 괜찮다. 그들이 가진 실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나 여기 계속 있으면 엄마는 또 찾아올 것이고 나중엔 그들도 엄마의 행패를 보게 될 것이다. 엄마가 부리는 행패를 원장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원장에게 직접 말해보기로 했다.
“원장님, 저희 엄마가 심한 알코올 중독자인데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제게 와서 행패를 부리고 돈을 가져갑니다. 근데 … 이번에 돈을 주지 않았어요. 오늘은 그냥 갔지만 또 며칠 후면 올 거예요. ……저는 여기서 일을 배우고 싶고 …….”
나는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원장은 한참 동안 내 얘기를 듣더니, 울지 말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현주야, 네 상황 알겠다. 울지 마, 네가 계속 일하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울지 마. 일단 얼마간이라도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다시 와도 되잖아. 일단 피하기는 해야겠다 그렇지? 아는 사람이 하는 가게가 있어. 거기서 얼마간 일하고 있는 건 어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바로 짐을 챙겨서 원장이 말한 곳으로 갔다. 경기도 용인이었다. 그곳은 마침 일하는 직원이 사정이 생겨 그만두는 바람에 혼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곳은 신도시의 느낌이 많이 났다. 새로운 아파트가 이제 막 완성되었고, 그 옆에는 또 짓고 있었다. 상가들도 하나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마샬 미용실’ 원장은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예쁜 옷을 입고, 투정을 부리고, 애교를 발산했다.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이 낯설고 신기했다. 해맑은 피부가 투명하여 빛이 났다. ‘나는 저 나이 때 짙은 화장을 하고, 접시를 돌리고, 물구나무를 서고, 매를 맞았는데……, 재는 엄마한테 이쁨을 받는구나.’ 유치원 차에 타기 전에 모녀의 인사를 보면서 슬픔이 밀려왔다.
원장은 일을 가르쳐 주고 친절했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게 허전하고 공허했다. 이상한 경계선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선을 넘지 못할 것 같았다.
공허한 나를 깨운 건 전화였다.
“야, 너 어딨어?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말 안 해?”
“…….”
“내가 너 못 찾을 것 같지. 딱 기다려.”
전화를 받고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쫓기는 자는 항상 긴장상태이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미어캣 마냥 밖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냥 돈을 줘 버릴까. 이곳을 찾아와 난동을 부리면 어쩌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건만 이상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화기도 조용했다. 무슨 폭풍전야인가.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원장은 괜찮을 것이라고 위로해 줬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람을 찾는 게 어디 그리 쉬운 거야. 아마 못 찾을 거야.
조용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머리를 감기며 가볍게 두피 마사지를 해 주면 손님들이 좋아했다. 파마할 때 어떤 두께로 하는지 자세히 보면서 머리가 나오는 상태를 살폈다. 파마할 때 롤을 마는 순서도 중요해 보였다. 일이 끝나고 나면 방에서 마네킹 머리를 말아보면서 그날 본 것을 연습했다. 연습하고 연습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갑자기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하는 얘기를 통해 곧 추석이 다가옴을 알았다. 들뜬 사람들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나와 별개의 사람들인가. 나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원장은 추석 전날 오전까지 하고 이틀 쉬자고 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미용실 청소를 마치고 조금 두툼한 봉투를 가방에 넣고 고민하다가 엄마 집으로 갔다. 동네 골목에서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겨우 문을 열었을 때 새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어색한 인사를 했다. 잠시 들어오라고 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한참 아무 말 없더니, 무심하듯이 말했다.
네 엄마 죽었다. 네 연락처를 몰라서 전화 못 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다가 마당에서 넘어졌는데 뇌진탕으로 갔다.
작은 종이에 주소를 적어 주었다. 무덤이 있는 곳이다. 찾아가 보려면 가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나. 새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거짓말인가? 아니다. 나를 괴롭힌 엄마가 없다고 하는데 기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정말 혼자인가. 엄마가 나를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할 때 그냥 줄 걸 그랬나? 그랬으면 살아 있을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은 뭐지?
찜질방으로 갔다. 맥주와 소주, 마른안주를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술에 잔뜩 취해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이틀이 지났다. 서둘러 씻고 미용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미용실에 도착했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해서 뭐 하나. 나는 왜 여기에 있지. 공허했다.
손님이 뜸한 오후 2시경, 점심을 먹으며 원장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 엄마가 돌아가셨대요. 어? 갑자기? 예. 술에 취해 그렇게 되었다고 하네요. 원래 술에 절어 있었어요. 그렇구나. 많이 놀랐겠네. …… 제가 놀랐을까요? 어? 놀란 거 아냐?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좀 이상해요. 맞아, 너 좀 이상해. 넋이 나갔어.
밥이 먹히지 않았다. 원장님, 저 내일 하루 쉬어도 될까요? 원장은 한참 고민하더니 그러라고 했다.
낮게 말하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발악하다가, 울다가, 웃다가 온갖 미친 짓을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가만 앉아 있으니 바람이 불었다. 그제야 가방에 있는 술이 생각났다. 무덤에 술을 한 잔 뿌렸다. 엄마, 한 잔 마셔. 딱 한 잔만. 그 이상은 안돼. 가끔 올게. 엄마, 내가 미안해. 좀만 더 살지.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산을 내려왔다.
버스는 언제 올 건가. 나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 오겠지. 오늘 안에는 오겠지. 괜찮다. 기다리면 오는 건 기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