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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Nov 13. 2022

말할 수 있는 비밀

- 그런 게 있을까.


 일요일 아침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중에 ‘나는 아직도 내가 제일 어렵다(우르술라 누버)’를 읽었다. 심리에 대한 책이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비밀 없이 솔직하게 사는 게 맞는지 질문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밀은 있어야 한다. 

 ‘우리 서로 솔직하고 거짓말하지 말고 지내자’로 약속하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생긴다. 그럴 때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야 할까? 서로 약속을 했으니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가난이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때 받는 동정이나 연민이 싫은 사람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반면 솔직하게 말해서 속이 후련해지는 쪽을 선택한 사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는 비밀이 있는가.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도 있고, 언젠가 말할 수 있는 때가 오면 할지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이 비밀 때문에 나는 괴로운가? 살아가는데 힘이 들 정도로 괴롭지는 않다. 이 비밀은 나를 위해 말하지 않는다. 이건 내 선택이다. 

 나의 배우자는 비밀이 없을까. 있다고 본다. 세상에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배우자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다.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며 지금처럼 모르는 상태로 살고 싶다.  

    

 얼마 전에 큰 아들이 2박 3일간의 여행을 간다고 했다. 친구들과 간다고 했다. 아들의 달력에 ‘서울’이라고 써 놓은 것을 봤다. 나는 모른 척하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아들은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고 아마 거제나 통영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떠났다. 


 여행을 떠난 당일, 잘 도착했고 잘 지내는지 전화를 했다. 거제로 왔으며 재미있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그러려니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하이패스 요금이 빠져나갔다. 내 카드로 신청했기 때문에 당연히 내 통장에서 나가고, 아들은 미리 하이패스 요금을 내 통장에 넣어둔다. 하이패스에 ‘수도권 서부 고속’이라는 이름으로 요금이 나갔다. 이 사실로 나는 알았다. 아들이 서울로 갔으며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나는 아들에게 지나가듯이 말했다.

 “지난번 여행, 거제 안 갔지?”

 “어?”

 “하이패스 요금이 서울이던데?”

 “아, 왜!”

 “왜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 안 했어? … 또 멀리까지 차 가져간다고 잔소리할까 봐?”

 나는 최대한 가벼우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어.”

 그게 우리 대화의 전부였다. 


 나는 아들을 다그치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냥 아들방에서 나왔다. 나를 반성했다. ‘아들의 행동에 지나치게 간섭했구나’하며 반성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아들은 친구가 많다.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이름을 아는 친구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친구들이 군대에 갈 때마다 훈련소까지 배웅했다. 해병대 가는 친구를 위해 포항에 가고, 육군으로 가는 친구를 위해 논산에 가는 일이 많았다. 입대할 때마다 새벽에 일어나 멀리 떠나는 아들이 걱정되어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만 가라고 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포항과 논산을 서너 번은 갔을 것이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내게 알리지 않고 갔다. 

 “엄마, 내일 아침에 어디 좀 갔다 올게요.”

 “어디 가는데?”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만 가라는 내 잔소리가 싫었지만 아들은 기어이 갔다. 내가 말린다고 듣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 가는지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고 떠났다. 


 나는 아들이 친구들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게 못마땅했고 멀리 가는 게 걱정되어 한 행동이었지만, 아들은 그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뒤로 가능하면 아들이 하는 행동에 이유를 달지 않는다. 그냥 안전하게 다니라고만 한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것도 아니고, 내 잔소리로 기분 나쁜 상태로 가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으니 그냥 받아들인다. 

 

 아마 아들에겐 내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 비밀을 알고 싶지 않다. 아들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서 충격받고 싶지 않다. 아들의 비밀은 아들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누구나 비밀이 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잘못된 행동도 아니다. 자신의 비밀을 통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밀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게 맞다. 그러나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가끔은 궁금함을 버려야 한다. 내 호기심으로 타인의 비밀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한다.  


 오늘은 내 행동을 반성하고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내일은 또 잘못된 행동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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