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력고사 새대다. 학력고사를 치를 때가 다가오면 선배들이 학교를 방문한다.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각 반에 들어와 찹살떡과 엿을 주면서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넨다. 나는 그런 선배들에게 대학생활에 대해 물었다.
“멋진 데이트를 하고 있으신가요?”
선배들은 웃으면서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했다. 그때 한 선배가 나에게 대학을 가면 뭐를 하고 싶은 지 물었다.
“저는 대학에 가면 연애를 할 겁니다. 3년 동안 공부만 열나게 했으니 실컷 놀면서 연애를 할 생각이에요.”
실제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동안 실컷 놀았다. 과에서 가는 MT, 써클에서 가는 나들이, 선배들이랑 가는 야유회 등 놀러 갈 수 있는 건수가 생기면 다 갔다. 우리과 친구들 중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생겨 수시로 술을 마시고 놀았다. 식구들과 얼굴을 보고 저녁을 먹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누군가를 사귀는 것보다 좋았다. 친구들과 소개팅을 하기도 하고 우루루 몰려가서 미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잠시 잠깐 사귄 사람도 있었지만 연애 보다는 노는 게 더 좋았다. 이렇게 놀다보니 1학년과 2학년 때의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다. 그러는 사이 3학년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과 선배와 잠시 사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내 생각과는 달리 귀찮은 일이었다. 만나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은 좋았지만 이것저것 내 행동을 간섭하는 일이 생기니 귀찮아졌다. 좋아했던 사람이 한 순간의 행동으로 싫어지기도 했다.
고3 때 내가 한 말은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객기였다. 연애보다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 게 더 맞았다.
연애를 하는 순간, 나는 여자가 되어야 했고 상대방은 내 위에 군림하려 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과 선배랑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선배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선배가 내게 말했다.
“너 내 자취방에 와서 청소 좀 해 줄래?”
‘어? 이게 무슨 말이지? 나보고 청소를 해 달라고? 내가 왜? 자기 방을 내가 왜 청소를 하냐고?’ 선배의 이 말은 나를 무시하는 말 같았다.
“선배 방을 왜 제가 청소해야 해요?”
내 대답에 선배는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버스에서 내렸다. 나중에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진짜 청소를 해 달라는 말이 아니었단다. 그럼 뭔데? 그건 선배가 너를 좋아하니까 자신의 방에 놀러 오라는 다른 표현이었단다. 나는 친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좋아하는 후배에게 고백하는 게 와서 청소를 해 달라는 것이라고? 지금도 나는 이런식의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를 위해 맛있는 거 해 주고 싶으니까 한 번 놀러올래?”
이게 맞는 말 아닌가. 남녀관계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간접적인 표현에 서툴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방에 와서 청소해 달라는 식의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내 사고방식이 이런 식이었으니 학교 다닐 때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어었지 싶다. 권위의식에 서로잡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지 않는다.
남녀 간의 멋진 데이트를 생각하여 대학에 입학하면 연애부터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선배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캠퍼스의 낭만이 살아 있었던 시절이어서 기분 좋게 회상할 수 있다. 그때의 그 선배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선배, 요즘 집 청소는 누가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