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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Feb 18. 2024

봄바람

- 아직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


 입춘이 지나면서 날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낮 기온이 올라가고 비가 잦아지고 있다. 


 떠나야 하는 겨울은 가기 싫어서 미적거리고 있는데 자기 차례인 봄이 겨울을 밀어내고 있는 듯하다. 

 바람이 불지만 그렇게 차갑진 않다. 

 그러나 바람의 기세는 제법 세다.

 

 며칠 전 일 때문에 남해에 갔었다. 

 오후 2시를 넘기면서 바람이 세지기 시작했다. 

 국도 주변에 서 있는 나무의 움직임이나 깃발들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경차인 내 차는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속도를 많이 내면 안 된다. 

 특히 다리를 지날 때는 더 그러하다. 

 다리 양쪽으로 바람이 불면 천천히 달려야 한다. 

 센 바람에 의해 차가 날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차가 약간 흔들리는 느낌이 있기에 내 무게로 차를 누르며 괜찮다고 속삭이며(차와 나에게) 천천히 달린다.

 

 남해 주변으로 펼쳐진 바다와 멋들어진 풍경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생각하면 간질거리는 추억과 가벼움을 생각할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봄바람은 그렇지 않다.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바람으로 와닿는다. 

차가운 듯 가볍게 불지만 가벼움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차가움과 날카로움으로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바람이 끝나는 자리에 뭐가 남을까. 

새싹이 움트고 파릇한 잎사귀가 돋아날 것이다. 

물론 바람에 의해 꺾이는 줄기도 있고 싹을 틔우지 못하는 새순도 있다. 

나는 어느 쪽에 해당될까. 

강한 바람을 이겨내고, 봄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 싹을 띄우고 웅장한 나무로 자라고 싶다. 

지금 당하는 시련이 나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싶다.

 

시련은 항상 힘들다. 

젊은 사람에겐 젊어서 힘들고 나이가 든 사람에겐 나이가 많아서 힘들다. 

세상에 쉬운 역경은 없다. 

가능하다면 역경이나 시련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아마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삶이 있을까. 


지금 내게 닥친 어려움이 어떻게 보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크게 느껴지는 건 그동안 안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해서 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나를 다독여야 한다. 


봄바람, 봄이 오기 위한 전초전이다. 

따뜻하고 좋은 일이 생길 전조 증상이라고 나에게 최면을 건다. 

이 정도의 바람은 지나가도록 둘 기운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신에겐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이 말을 했던 이순신 장군의 심정은 참담한 자기 위로가 아니었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신에겐 아직 건강한 가족이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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