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외곽의 한 작은 영수 동네 학원. 오랜 공백기 끝에 내가 처음으로 발 디딘 첫 학원이다. 건물 꼭대기 층에 아직 열리지도 않은 허름한 철문을 앞에 두고, 원장님께 송구스럽지만, '이게 과연 학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다. 면접 시간보다 10~20분 일찍 오는 게 매너이기에, 항상 일찍 와서 기다리다 보면, 학원 외관과 내부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면접 자리에서 바로 계약이 성사되었고, 주 3일 파트로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원장님은 상당히 젠틀한 분이셨다. 갓 대학을 졸업한 어린 여자 선생님에게도 반드시 존칭과 존댓말로 대하셨고, 나의 보수적이면서 까탈스러운 기준에 거슬리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나와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문제는 단지 학원이 잘 안되는 것뿐이었다.
첫날, 고2 3명짜리 반 수업을 마친 뒤, 잠시 원장실에 모여 그날 주요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수업 어땠냐는 질문에, 그 반의 유일한 남학생 T가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은 하는데,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했다. 반면 여학생 2명이 더 잘 이해한다고 전달했다. 그랬더니 원장님이 여학생들은 처음 듣는 수업이고, T는 그 책만 5바퀴를 돌렸다는 말에 원장님과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아마 5분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킥킥대며 어깨만 들썩인 채 웃어댔던 것 같다.
원장님은 쩌렁쩌렁 호랑이처럼 울리는 [강의에 최적화된] 목소리를 갖고 계셨다. 수학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어린이처럼 눈빛이 반짝이며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었다. 이 분을 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원장이라는 자리는 [누구보다도 수학과 강의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일생이 강사였고, 여생도 강사로 남으실 분이었다. 학원 운영이 어려워져도 아마 길거리에 칠판 하나 놓고는 강의를 하실 분이었다.
후에 일이 좀 꼬여 내가 책임을 지는 식으로 나오게 되었다. 물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 퇴근길에 문득 원장님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고, 원장님도 다행히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어 바로 그날 밤 회포를 풀었다. 얘기해 보니 원장님도 당시 서운함 감정이 있었다고 했고, 터놓고 얘기를 하면서 그 후로 줄곧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