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기도 외곽 쪽에 있던 신생 학원 원장은 정반대였다. 다짜고짜 "야, ㅇㅇ야.."라며 막 대하는 스타일이었다. 외모는 옛날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에서 나오는 못생긴 두꺼비 투투처럼 생겼었다. 동탁처럼 배가 튀어나오고 숨쉬기도 힘들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머릿속 CPU는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계산하는 스타일이었다. 강한 척, 센 척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강사 눈치를 보기도 하는 소심한 자였다.
대부분의 학원가 원장들은 배타적이다. 학원가 문턱이 낮아 사람이 쉽게 나가고 쉽게 들어오는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원장들도 나름의 상처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들어오는 강사에 대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으며, 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경계를 한다. 문제는 이 점이 티가 나느냐 아니냐인데, 내가 눈치가 빠른 것도 있겠지만, 이 원장은 강사에 대한 불신이 너무 티가 났다. 손자병법이던가? "사람을 쓰려거든 믿고 맡겨야 하며, 그렇지 않을 바에는 쓰지도 말라"라는 글이 있거늘, 이 원장은 그런 면에서 하수였다.
어느 날 알고 보니 데스크 실장과 애정행각을 하고 있던 원장을 목격했다. 원장 무릎에 앉아 둘이 안고 있는 정도였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실장은 원장의 아내였다. 아직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 이 말은 아이를 키우는 강사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낮음을 의미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집에 가서 수업 준비를 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회의 도중에 수업 준비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가 원장이 말을 끊으며 불같이 성을 냈다.
"야, 수업 준비는 집에 가서 해"
엄밀히 말해 수업 준비도 업무에 속하니 업무시간 내에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업무를 집에 가서 하라는 말은 무급으로 연장 근무를 하라는 말인가? 물론 프로강사라면 24시간 수업 준비를 한다. 머릿속에 수업 준비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강사가 수업에 차질이 없도록 정신적 금전적 제도적 서포트를 해야 하는 원장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학원은 2가지 종류가 있다. 신입강사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들여와, 트레이닝을 시키며 키워나가는 경우(혹은 소모품처럼 써먹고 버리는 경우)와, 베테랑 강사를 '모시는' 경우가 있다. 돌아보니, 그 학원은 전자였다. 새로운 강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원장이 택한 것은 고등부 강사를 새로 뽑는 리스크를 걸지 말고, 중등부 강사를 키워 고등부로 올리자는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예전 동네에서 고3까지 가르치었던 경력이 있었지만, 5~6년 이상의 공백기가 있었기에, 자신감이 좀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던 터라, 중등부로 들어갔었다.
서로의 니즈(needs)가 맞아떨어져 일을 시작했지만, 엇갈리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서로 발전하자는 명목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말이 발전이지 실제로는 신입 강사 길들이기였다. 원장의 학교 후배였던 부원장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트집을 잡으며, 소위 말하는 군기를 세우려고 했다. 근거 있는 합리적 지적보다는, 그저 트집을 잡아 조련하려는 '개수작'이 너무나 뻔해 보였다. 당시에도 나는 공백기는 있었지만, 나름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강사를 했던 터라, 실력에 비해 머리통만 커져있었고, 주제넘은 오만함과 패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부원장의 이력으로 보나 강의로 보나 딱 봐도 3~4년 차 강사에 불과한데, 되지도 않는 이유로 나를 조련하려 했으니 나도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조련사와 성질만 더러운 야생마가 만난 꼴이었다.
".. 그럼 부원장님이 직접 보여주세요...."
".. 평가는 애들이 하는 거지, 저희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부원장과 나 그리고 기존에 있던 강사. 이렇게 3명의 세미나에서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간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동료 강사분은 아마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다) 부원장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일어나 칠판에 다가가 내 앞에서 강의를 보여주었다. 짧은 강의 끝에 나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한마디를 뱉었다.
"별로네요. 재미도 없고요."
유치한 반격 끝에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그 후로는 세미나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원장과 부원장은 대학 선후배 사이에다가 같이 운동권에서 구르다가 왔다고 했는데, 그렇게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이 정작 학원장이 될 때는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보수가 되어 갔다. 회의를 한답시고는 사실상 답은 정해진 상황에 독단적인 태도로 결정을 했다. 민주적인 자유로운 토론은 꿈도 못 꿨다. 같은 사람이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정치적 스탠스가 달라짐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