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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이분당 Mar 27. 2023

제브리샹베르탱의 부자 아저씨, 제라드 퀴비

EP29 Domaine Quivy Wine Tasting

부르고뉴 와인 여행 3일차 일정

12:00 Chez Leon

14:00 Domaine Quivy

16:00 Domaine Joliet

19:00 Le Millesime

부르고뉴 3일차 일정

이틀을 보내면서 이제 제법 익숙해진 것도 같은데, 부르고뉴의 셋째 날은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일행과의 만남, 그리고 빡빡한 스케쥴. 혹여 계획이 틀어질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어제보다 오늘 하루가 더 기대되는 그런 아침이었다.




나는 정오가 조금 지나서 쉐-레옹(Chez Leon)에 도착했다. 구시가지에 있는 식당 위치 때문에 주차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30분 일찍 왔는데도 결국 늦고 말았다.


동행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음식을 주문한다. 쉐-레옹은 가성비 좋은 로컬 맛집으로 여행 서적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부담 없는 가격대에 부르고뉴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코코뱅과 샐러드, 그리고 요거트를 먹기로 한다. 개구리 요리와 같이 다소 흥미롭지만 너무 생소한 메뉴는 내 취향에 맞지 않으니까.


음식을 주문하면서 나는 직원에게 이후 일정과 상황을 설명한다. 프랑스 식당에서 1시간 동안 식사를 하고 계산까지 마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브리샹베르탱까지는 약 25분. 도멘 퀴비에 2시까지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쉐-레옹의 음식은 아주 보통의 음식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느낌의 가정식이었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렇다고 안 좋은 평점을 주고 싶은 식당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맛있는 식당은 많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브리샹베르탱의 황금빛 포도밭을 가로질러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시간은 이미 아슬아슬하다. 일행을 먼저 와이너리에 내려주고 나는 주차할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본다.


도멘 퀴비는 제법 오랜 세월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건물은 1710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여러 종류의 식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는 Gerard Quivy 제라드 퀴비씨의 안내에 따라 입구와 정원을 거쳐 약간은 어두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변호사로 일하던 퀴비씨는 아내의 가족 소유였던 이곳을 1980년에 인수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Charmes-Chambertin과 Chapelle-Chambertin 그랑크뤼를 포함해 7헥타르 규모의 제브리샹베르탱 밭을 보유하고 있고 대부분 올드바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 앞에는 4종류의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근육질 몸의 파워풀한 제브리샹베르탱에서 그는 어떤 와인을 만들고 있을까.


Domaine Quivy Tasting (10유로)

2019 Chapelle-Chambertin Grand Cru

2019 Les Corbeaux Gevrey-Chambertin 1er Cru

2019 Gevrey-Chambertin Les Journeaux

2019 Gevrey-Chambertin En Champs



우리는 빌라쥬급 2종을 먼저 마시고 1er Cru와 Grand Cru를 순차적으로 마셨다. 테이스팅만 포함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그런지 시음량은 매우 적었다. 감칠맛 난다는 표현이 딱 적절했다. 정말 맛만 볼 수 있는 양이어서 아쉬웠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는 않았다. 10유로에 Chapelle-Chambertin까지 4가지 제브리샹베르탱을 맛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도멘 퀴비의 제브리샹베르탱은 대체로 야성적이고 강건한 느낌의 피노누아였다. 2019년으로 빈티지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검은 과일, 미네랄, 먼지, 흙, 향신료 뉘앙스가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이 든 포도나무의 영향인가 싶었다. 반면 오크 뉘앙스는 크게 느끼지는 못했는데 퀴비씨는 20개월간 오크 배럴에서 숙성하고 있고 New Oak 비중이 무려 50%라고 했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간혹 떼루아와 양조 특징을 이론적으로 해석한 내용과 실제로 느껴지는 맛이 다를 때가 있다. 은근히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 또한 와인 시음의 묘미 아니겠는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본다.

모든 와인 시음을 마치고는 테이스팅 공간을 둘러본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 곳곳에 놓인 와인 양조 도구들 모두 아주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투어 비용을 계산하고 퀴비씨와 가볍게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그가 말했다.


“시간 나면 또 놀러 와! 나 무척 한가하니까 언제든지 놀러 와도 좋아.”


다음 목적지인 Fixin 픽생으로 향하는데 Lonely라는 단어와 그의 표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제브리샹베르탱의 부자 아저씨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심심하고 따분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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