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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이분당 May 10. 2023

끌로 드 라 페리에르의 마지막 손님

EP30 Domaine Joliet 도멘 졸리엣

제브리샹베르탱에서 북쪽으로 아주 조금만 더 올라가면 픽상(Fixin)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서쪽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성처럼 보이는 저택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도멘 졸리엣(Joliet)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했던 마을인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졸리엣의 포도밭과 주변 풍경에 매료되었다. 마침 따스한 가을 햇살이 비추고 있어 포도밭 위 모든 것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약속 시간인 오후 4시까지는 약 10분 남짓. 나는 가만히 멈춰서서 코트도르(Cote d’Or)를 바라보기로 한다. 눈 앞에 펼쳐진 눈부신 광경에 내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약속된 시간, 우리는 저택의 입구로 향한다. 그곳에는 한 젊은 여인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까미유(Camille), 도멘 졸리엣의 현 소유주, 베니네(Benigne)의 딸이다. 까미유는 이 도멘의 7세대로 가족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는 특유의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 도멘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은 시토 수도회가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500년이 넘는 기간을 소유하면서 관리했던 곳으로 당시 부르고뉴 최고의 포도밭 중 하나인 끌로 드 라 페리에르(Clos de la Perriere)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던 곳이다. 하지만 17세기부터 시토 수도회의 쇠퇴, 그리고 전쟁과 대공황의 시기를 거치며 이곳은 점차 세월 속에 잊혀지게 된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1853년, 나름 찬란했던 과거를 지닌 이곳에 졸리엣 가족이 정착하며 도멘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까미유를 따라 지하까브로 향했다. 크지 않은 문을 열고 몇 발짝 내려가자 제법 아담한 규모의 지하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바리크(Barrique) 크기의 오크통이 듬성듬성 쌓여있었고,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와인병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기구도 있었다. 이 기구에 대해 물어보니 그녀는 이 기구가 시토 수도회가 남기고 간 유산으로 포도를 으깨고 압착하는데 사용했던 도구라고 했다. 게다가 이제는 단 3개만이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곳에 있고 나머지 2개는 클로 드 부조에서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까미유는 곧 우리에게 잔을 건네고는 첫 번째 와인을 따라주었다. 


여기 까브 안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건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오르기도 전에 이미 와인 한 모금이 내 목을 타고 들어온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회색 먼지와 흙냄새, 그리고 지하실 특유의 습한 기운이 와인과 함께 느껴졌다. 분명 와인을 마시기에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지만, 왠지 모를 낭만이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또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이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Joliet Pere & Fils

2017 Fixin 1er Cru

2017 'Clos de la Perriere' Fixin 1er Cru Monopole

2017 'Clos de la Perriere' Fixin 1er Cru Blanc Monopole


졸리엣의 모든 와인은 단 하나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바로 끌로 드 라 페리에르(Clos de la Perriere)라는 이름의 밭으로 1er Cru 등급이며 5ha 규모의 작지 않은 모노폴이다. 제법 큰 면적이다 보니 이 포도밭에는 서로 다른 4종류의 떼루아가 존재하는데 졸리엣 가문은 이 떼루아 차이를 두 가지 이름의 레드 와인과 하나의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까지는 말이다.

현재는 떼루아로 구분하지 않고 어린 포도나무와 올드바인으로 나눠 2가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고 까미유는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방식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다고 내게 말했지만, 현재의 방식에 제법 만족하고 있는 표정이다.



준비된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는 저택 앞에서 까미유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녀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끌로 드 라 페리에르의 마지막 손님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오늘 일정의 마지막인 것으로만 이해했는데 그녀의 설명을 들어보니 정말 한동안은 외부 개방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크지 않은 도멘이라 투어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는데, 이제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시간이다. 


나는 이 도멘을 앞으로 이끌어갈 그녀의 앞날을 축복하며 언젠가 또 보자는 말을 건넸다.


안녕, 까미유.

안녕, 졸리엣.


어느덧 픽상의 언덕에는 이미 짙은 노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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