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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미아 Jan 12. 2021

버스 단상

#미아로그 #에세이 드라이브


“이번 정류장은 후암동 종점입니다.”


202번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이 곳이 버스의 종점이자 출발점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에어팟을 뚫고 들어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인지라 기사님도 퇴근이 고팠는지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급작스러운 출발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내 다리는 휘청거렸으나 다행히 빈자리에 빠르게 착석을 해냈다.


안내음에 이어, 버스의 거친 엔진 소리와 덜컹거림이 반복적으로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나만 거슬리나 싶어 흘깃 주변을 봤지만 다들 별 어려움 없이 버스의 소음을 무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소음을 덮기 위해 귀를 혹사시키기 싫었던 나는 재생 중이던 노래를 꺼버렸다. 그리고서 집에 가는 내내 차창에 머리를 대고 풍경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서울로 처음 상경한 청년 마냥 그렇게 말이다.


9월의 밤공기는 시원했고 처음 타보는 202번 버스 창밖의 풍경도 생경했다. 그 생경함은 아마 서울시내를 다니는 버스가 보여주는 길이 익숙하지 않음에서 왔을 것이다.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경기도에서 서울로 오가기 위해 매일 같이 타던 광역버스만큼 서울버스를 탔다 면 다른 얘기였을까? 하지만 최근 서울에 내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광역버스보다는 시내버스를 타게 될 일이 더 많아진 셈이 되었다. 때문에 앞으로 이런 새로움은 점차 줄어들겠지만, 아직은 서울의 시내버스가 새로운 나에게 202번 버스는 내 귀를 쫑긋하게, 두 눈을 반짝하게 주변을 지켜보게 했다. 아마 그 버스에 탄 승객 중 안내방송에 초집중한 사람은 내가 제일이었을 거다.


그런 나를 태운 버스는 남대문을 끼고 주변을 돌았다. 예상치 못한 창 밖 풍경에 나는 자연스레 창문으로 더욱 몸을 가까이 붙여 흐르는 밖을 구경했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본 지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눈에 익은 동네를 발견했다. 을지로였다. 아는 길목이 보이자 자연스럽게 몸에 긴장이 풀렸다. 동시에 작년 겨울의 기억이 머릿속에 스쳤다.


‘여기서는 혜지가 술에 진탕 취해 바닥에 누워서 땡깡을 부렸지. 아 그날 같이 고생한 진원이가 이 근처 어디쯤 살았는데, 지금 이사한 집은 어떤 동네일까’.


뭐 이런 식의 생각들. 어언 10년을 함께 보낸 친구여서 마음을 놓고 마셨는지, 아니면 그날따라 더 힘들었던 건지, 혜지는 그날 술에 취해 되지도 않는 고집을 우리에게 부렸다. 예를 들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우기거나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것들. 하는 짓이 미워 엉덩이를 걷어 차고 길바닥에 두고 집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결국 나는 그날 두어 시간을 길거리에서 그와 함께 보내다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갔었다.


‘삐이이익-’


단상 동안 버스는 어느새 내려야 하는 중앙시장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후암동 종점에서 올라탔을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거칠었다. 초행길임에도 잘 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잠시 느낀 후, 갈아탈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내판을 올려봤다.


 ‘5분 뒤 도착’.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보는 동네였다. 나름 서울의 이곳저곳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서울을 다 알기엔 멀었구나 싶었다. 대충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다시금 혜지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손가락으로 세워보는 세월은 10에 가까운 숫자이지만, 우리가 매번 매 순간을 함께 한 것이 아니니 사실상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는 세월은 절반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함께한 시간을 숫자로 가늠할 수나 있나?


그날 밤, 을지로에 내리던 빗방울만큼이나 혜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었다. 병원에서 일하며 상처 받은 그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 주기엔, 내가 아는 것과 겪은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은 넣어 둔 채, 그냥 함께 꿀꺽꿀꺽 잔만 기울였다. 그와 내가 가 깝지 않은 관계였다면 더 쉽게 달달한 위로를 건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의 마음을 전부 모 르듯 그 또한 쉽게 위로를 하지 못한 내 마음까지 알아주긴 어려웠겠지.

얼마 기다리지 않아 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다시 흐르듯 버스에 올라탔다. 처음 탄 버스보다는 소음이 덜했다. 열어 둔 버스 창문을 통해 길거리의 꼬치 냄새가 솔솔 들어온다. 혜지가 저녁은 먹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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