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었다. 뭘 해 먹을까 하고.
계란, 프로슈토 그리고 시금치가 보인다.
세 가지 재료를 익히고 나면 노랑, 빨강, 진초록이 나오겠지. 예쁘겠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에그 베네딕트랑 에그 플로렌타인이다. 시금치를 빼면 베네딕트고 프로슈토를 빼면 플로렌타인이 되겠지만, 난 저 세 가지 색을 다 써야겠으니, 오늘의 선택은 둘을 혼합한 에그 베네딕트 플로렌타인이다.
프로슈토는 그냥 먹는 게 제일 맛있지만, 카페 브런치 같은 멋진 플레이팅을 위해 바삭하게 굽기로 한다.
시금치는 프로슈토를 익힌 팬에 기름 살짝 둘러 휘리릭 볶아 숨이 죽자마자 꺼내 둔다.
이제 수란을 만들어야지. 수란 만드는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오늘처럼 게으름병이 도진 날엔 간편한 전자렌지 방법으로 쉽게 가자.
이제 재료들을 빵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오늘은 왠지 밥이 너무 땡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사흘간 쌀밥 구경을 못했구나. 몸이 원하면 먹어줘야 한다는 게 내 건강 지론. 과감하게 빵을 밥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밥 위에 시금치, 프로슈토, 계란 순으로 올리고 소스를 끼얹을 순서가 되니, 홀랜다이즈 소스를 올리기가 영 껄끄럽다. 흰쌀밥과 버터리한 홀랜다이즈 소스의 조합이라니. 어릴 때 친구들이 밥에 마가린과 간장을 넣고 비벼먹었던 그 요상한 음식이랑 같지 않은가 말이다. 밥을 포기할 순 없으니 소스를 포기해야겠다. 홀랜다이즈 소스 대신 밥이랑 어울릴만한 소스론 고추장 소스만 한 게 없지 아마. 그런데 홀랜다이즈 소스처럼 줄줄 흘러서 계란 위에 예쁘게 뿌려져야 하니, 뻑뻑한 고추장 대신 묽은 스리라차를 써야겠다. 여기에 참기름을 첨가하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빨간 소스 탄생.
시크한 슬레이트 접시에 멋지게 플레이팅하고 사진을 찍고 보니,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조합이다. 눈으로 보나 코로 맡으나, 비빔밥이네?
시크한 사진은 건졌으니, 이제 양푼으로 옮겨 열심히 비벼야겠다. 포크와 나이프도 숟가락으로 교체.
입으로 맛보니, 역시 비빔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