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에 따르면 영국, 특히 북부 지역은 1년 360일 비가 내리거나 흐리다는데, 3년 정도 살아 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사실 기온은 겨울에도 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10도 안팎인데, 이 10도 안팎에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고 상상해보라. 그것도 계절에 상관없이 제멋대로.
겨울 코트는 언제나 꺼내 입을 수 있도록 상시 대기 중이다.
그런데 그 일 년 중 정말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곳이 완벽한 때가 아주 짧게 있는데, 바로 4월 말부터 6월까지이다.
4월이 되면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고, 해도 길어지고, 수개월간 하얬던 하늘이 파란 날이 더 많아지고, 공기가 뽀송뽀송해진다.
해가 쨍하게 나면 홀딱 벗고 일광욕을 하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해를 못 봐 비타민 D 부족 현상에 시달려 몸이 햇살을 마구 원하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지니, 홀딱 벗지는 못하더라도 햇살 드는 창가에 누워 반드시 일광욕은 한다. 이런 날도 기온은 20도가 채 되지 않지만, 해를 받고 있으면 땀이 날 정도로 덥다. 그리고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팔에 닭살이 돋는 그런 기후.
햇살 쨍한 날이면 수개월간 방치되어 있던 카페/바들의 야외 테이블이 어김없이 가득 찬다. 카페들이 아이스 음료를 내기 시작하는 때도 이 즈음이다.
올해는 유난히 상반기가 후다닥 빨리 지나간 기분이다. 이곳의 좋은 날씨를 마음껏 즐기지도 못했는데, 6월에 마닐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더운 날씨가 추운 날씨보다 훨씬 좋은 내겐 30도를 넘는 마닐라의 기온이 반가웠지만, 습도가 높아 끈적거리고 공기가 더러워서 출장 한 달 내내 맨체스터의 (완벽했을거라 예상되는) 날씨가 너무 그리웠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15도가 채 되지 않는 기온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 유럽에 폭염이 왔다던데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나 보다 하고 크게 실망한 채 일주일을 지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다시 폭염이 올 예정이란다. 지금 아침 온도가 21도이니 벌써 왔나 보다. 맨체스터에서 폭염이래 봤자 30도는 결코 넘지 않는데,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20도만 돼도 더워 죽겠다고 난리니, 예보대로 오늘 낮 29도까지 오르면 얼마나 덥다고 헉헉댈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나에게는 너무도 완벽한 아름다운 날에 정말 잘 어울리는 깔끔하고 건강한 아침을 먹었다. 커다란 남향 창가에 앉아 뜨거운 햇살 받으며.
무지방 요거트에 석류씨와 블루베리, 그래놀라로 만든 슈퍼푸드다.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